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 - 김익한 교수의 읽고 쓰는 실천 인문학
김익한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서문에 적힌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어른이 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면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규범과 책임, 끝없는 경쟁과 성과의 굴레가 나를 가뒀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착하게 살아가며 스스로를 억누르는 어른들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이 더 진하게 와닿았다.

책은 ‘탐색–변화–성장’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색의 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규율과 통제를 가르쳤고, 사회는 성과와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왜?”라는 질문은 문제적 태도로 간주되고, “다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묵살당했다. 개성보다 조화, 비판보다 순응을 배워온 우리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유는 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삶에서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변화의 장에서는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 구조와 권력의 실체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저자가 인용한 미셸 푸코의 이론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푸코는 현대 사회를 ‘규율사회’라 불렀다. 과거의 권력이 법과 강제력으로 사람을 통제했다면, 근대 이후의 권력은 제도와 규칙 속에 스며들어 우리를 훈련하고 조율했다. 감시와 비교,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규제하며 내면화된 복종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철학자 한병철의 분석이 이어진다. 푸코가 규율사회의 권력과 통제를 말했다면, 한병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을 ‘성과사회’로 진단한다. 더 이상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감독하고 채찍질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구호 아래 자발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듯 보이는 자기 동기는 결국 피로와 번아웃을 낳는다. 한병철이 말했듯,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착취”일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옭아매는 감옥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성과사회의 문제를 넘어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철학자도 책 속에 등장한다.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소득이나 실력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역량(capability)이 진정한 자유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빵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과, 빵이 있음에도 금식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자유’다.” 이 비유는 자유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단순히 돈이나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역량이라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다.

마사 누스바움이 이를 확장해 제시한 ‘10가지 인간의 필수 역량’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경제적 풍요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무기력감은 자기결정감의 상실에서 비롯된다”는 구절이었다. 자유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나의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파묻혀 자기 목소리를 잊고 살아간다. 결국 삶의 주인이 아닌 손님처럼, 외부의 요구에 반응만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나는 지금 누구의 선택에 따라 살고 있는가?”라는 문장이었다. 이 물음은 책장을 덮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성장의 장에서는 이 모든 사유가 ‘기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을 옭아매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기록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주 사소한 메모 하나, 선언 하나가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많은 SNS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나도 읽으며 줄을 긋고 짧은 문장을 메모하는 과정 자체가 자유를 연습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유는 거창한 투쟁이나 혁명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은 실천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저자는 기록을 통해 파편적인 경험과 상처가 다시 하나로 묶이고, 무력감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지나간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오늘의 선택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막연했던 감정과 사건은 기록 속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구체화되고, 축적된 기록은 곧 삶의 숨은 규칙과 의미를 드러내는 의식의 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 개념이 소환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선형적으로 작동한다.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렇게 재해석된 과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연다. 어린 시절 실패가 무력감으로 남았더라도, 성인이 되어 그것을 배움으로 재구성한다면 상처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뀐다. 기록은 바로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또한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그는 방황과 갈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며 내면의 질서를 다시 세웠다. 글쓰기는 상처를 객관화하고 재해석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되었고, 이는 ‘자기 서사화(self-narration)’라는 이름으로 자아를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였다. 저자 역시 두 차례 자기 역사 쓰기를 경험했고, 매년 한 해를 정리하는 ‘연사(年史)’를 적으며 잊고 있던 감사와 진짜 바람을 되살려냈다고 한다. 기록은 결국 “누가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내가 내 삶의 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책 『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은, 자유는 먼 곳에 있는 이상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권력과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나 자신을 억누르는 내적 감옥을 깨며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기록하는 작은 실천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란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힘, 곧 역량을 키워가는 여정이다.

📚 이 책을 읽으면 좋을 사람들

- 바쁘게 살아가지만 문득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어른

- 성과와 경쟁에 지쳐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은 직장인

- 철학이 멀게만 느껴졌지만 삶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은 사람

- 기록과 글쓰기를 통해 자기 성찰을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


'김영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유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며, 행복한 삶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길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더 미루다 보면, 내 인생은 타인의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삶, 의미 없이 휘둘리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본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누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책임도 불안도 커지겠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자유의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다. 나를 가두는 감옥은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감옥을 깨기 위한 첫걸음은 아주 사소하다. 메모 하나, 생각 하나, 선언 하나,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이 한 문장이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