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 다음 집
상현 지음 / 고래인 / 2025년 9월
평점 :

오늘은 상현 작가의 그림책 『집, 다음 집』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건,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동안 오래전에 살았던 집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집, 크기가 작아 답답했지만 자유의 설렘이 깃들었던 첫 자취방,
잠시 머물다 간 임대 집까지.
이 책에서 특히 “아담한 방의 첫인상은 작은 큐브 같았다. 당연히 불편함 투성이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살던 작은 원룸이 눈앞에 그려졌다. 공간은 비좁았고 불편했지만, 혼자서 살아간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던 곳이라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책 속에서 알바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마이레아(Marie’s)는 집주인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자, 핀란드어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라고 한다.“사랑스러운 집이란 무엇일까? 머물던 집을 사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내게도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집이 있었다.
멋진 설계나 근사한 구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품어낸 시간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책은 집에 머물지 않고 동네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한다.
“굽이진 골목은 복도 같은, 나무 아래 벤치는 안방 같은,
조용한 서점들은 서재 같은, 곳곳 계절을 펼쳐낸 풍경은 경계가 사라진 무한한 창문 같은”이라는
표현은 주변 동네를 바라보며 머물고 싶은 집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동네 속에서 발견하는 시각이 재미있다.
또 한 구절이 오래 와닿았다.
“좋은 집이란 어쩌면 다음 집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 아닐까 싶었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현재가 아니라, 언제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발판이다.
이사라는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삶의 전환과 미래의 꿈까지 포함하는 말처럼 들렸다.
책의 제목 ‘집, 다음 집’이 더욱 깊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책 속에는 사소한 일상도 따뜻하게 포착돼 있다.
저자는 집에서 읽기 좋은 곳을 정하기 어렵다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벽에 기대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하고, 창가에 걸터앉기도 한다. 부산스럽지만 “흔들리는 문장들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는 느낌이 좋아서” 멈춰 선다고 말한다. 그 고백들이 나 또한 책을 읽다가 자리를 옮겨가며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던 장면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점이 다시 공간이 되는 것처럼, 집은 언제나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는다. “짧은 산책으로 확인한 단순한 진실은 나를 안도하게 하고, 비로소 적당한 거리 속에서 다시 일상을 움직이게 만든다”라는 문장이 그 감각을 잘 담아냈다. 세상 속에서 흔들려도 결국 집이 있기에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은 집을 치유의 공간으로도 그린다.
“마음의 회복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 집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볕이 오래도록 드는 창,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동체,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당 같은 곳에서 우리는 서서히 회복한다. 치유의 종착역은 결국 바깥이다.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힘.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햇살 좋은 날, 창문을 활짝 여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업>과 닿아 있다. 칼 할아버지가 아내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놓쳐버렸을 때, “집은 그냥 집일 뿐이야”라고 담담히 말하던 순간. 결국 중요한 건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쌓인 기억이라는 메시지였다. 저자는 집을 여러 개의 그릇에 비유한다. 금이 간 그릇도, 상처가 담긴 그릇도 결국은 사랑할 만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떤 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집 자체를 사랑하는구나. 그저 집다운 집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나온 집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
앞으로 꿈꾸는 집의 모습은 어떨까?
『집, 다음 집』은 짧고 간결한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남겨주는 여운은 길다.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집을 매개로 자기 삶을 비춰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ㅡ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고래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멋진 공간의 사진은 찰나의 장점만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현실은 불완전함을 적당히 메우며 살아가는, 임시방편의 삶일 뿐이다. 잡지 속에서든, SNS 속에서든 내가 살아보지 않으면,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빈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적당히 해결하며 살아간다. - P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