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 - 명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
김민영 지음 / 온초록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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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의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은 “색을 칠한다”는 가장 단순한 동작으로, 앙리 마티스의 예술을 몸으로 익히게 해 주는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서는 마티스의 삶을 치유와 자유의 여정으로 소개한다. 젊은 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머니가 건넨 물감 상자를 그는 ‘인생의 계시’라고 불렀다. 전쟁과 병, 상실을 겪으면서도 그는 색과 형태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말년에는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손에서 도구를 놓지 않았다. 구아슈 데쿠파주—구아슈 물감으로 칠한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법—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페이지를 넘기면, 컬러링이 단지 밑그림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해 주는 과정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잘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선을 따라가고, 어울리는 색을 고르고, 가볍게 덧칠해 농도를 쌓아 가는 반복이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 준다. 저자는 이를 위해 실전 팁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다. 첫째, 세게 누르지 말고 얇게 여러 번 겹쳐 칠하기. 둘째,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칠하기. 셋째, 블렌더나 면봉으로 경계를 살짝 풀어 주기. 이 세 가지만 지켜도 색이 탁해지지 않고 종이의 결이 살아나 마티스 특유의 선명함이 잘 드러난다. 초보자는 넓은 면부터 채우며 빠르게 ‘성공 경험’을 얻고, 익숙한 독자는 명암과 대비, 흐름의 변화를 더 섬세하게 실험할 수 있다.

수록 작품은 총 24점. 한 권 안에서 다양한 시기와 분위기의 마티스를 차례로 만나며 직접 색을 올려 볼 수 있다.

먼저 〈붉은 방(The Red Room), 1908〉. 테이블과 벽지, 사물이 붉은 색면 속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공간이 색으로 새로 짜여지는 장면을 보여 준다. 색연필이라면 밝은 레드를 넓게 깔고, 접히는 자리나 모서리 쪽에 따뜻한 레드를 여러 번 덧칠해 깊이를 만들면 좋다. 선을 칠한다는 느낌보다 넓은 면의 흐름을 만든다는 감각으로 접근해보면 좋을 것 같다.

〈금붕어, 1912〉는 마티스의 ‘고요히 바라봄’이 잘 보이는 그림이다.

물속의 주황빛 금붕어와 주변의 녹색·파란색이 강하게 대비된다.

잎사귀의 녹색을 먼저 얇게 깔고, 물 표면의 반짝임은 남겨 둔 뒤 마지막에 유리 가장자리와 물결을 한 톤만 살짝 올리면 투명한 느낌이 살아난다. “밝은 색 → 어두운 색” 순서를 손으로 이해하기에 딱 좋은 페이지다.

전쟁 이후 마티스가 표현을 더 단순하게 바꾸어 가는 변화는 <폴리네시아, 바다, 1946〉와 〈이카로스, 1947〉에서 뚜렷하다. ‘폴리네시아’는 파란 바탕 위에 흰 모양이 떠 있는 듯한 구성으로, 칠하지 않고 남겨 둔 빈 공간이 그림에 여유를 준다. ‘이카로스’는 검은 몸의 실루엣과 가슴의 붉은 점(심장을 표현), 주변의 노란 별들이 상징처럼 놓여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중요한 건 정교한 묘사보다 배치와 간격이다.

그 흐름이 〈파란 누드 I, 1951〉와 〈달팽이, 1953〉에서 더 또렷해진다.

‘파란 누드’는 우리가 자주 마시는 와인이나 편의점 술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마티스의 대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인체를 큰 면과 굽은 선으로 단순하게 잡아낸 그림이다. 배경을 남기고 인체의 윤곽만 색으로 채워도 멋이 살아난다. 코발트 계열 블루를 얇게 여러 번 겹치면 그 깊이가 느껴진다.

‘달팽이’는 색종이 조각을 소용돌이처럼 배치한 작품으로, 이 페이지의 포인트는 순서와 대비다.

따뜻한 색(오렌지·레드)과 차가운 색(퍼플·그린)을 마주 보게 놓고,

만나는 자리에는 중간 톤을 살짝 깔아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 주면 화면이 경쾌해진다.

이 책의 페이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티스가 예술을 “마음을 달래는 좋은 약”에 비유한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컬러링은 결과를 자랑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색을 칠하다가 잠시 멈추고, 마음이 끌리는 색을 다시 올리고, 어울리지 않으면 한 겹 더 얹는 동안 나만의 색을 만들어간다. 완성보다 과정, 잘하는 것보다 참여의 과정이다.

종이 두께나 제본 같은 만듦새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도입의 설명, 바로 따라 해 볼 수 있는 도구 가이드, 난이도를 달리한 24점 구성까지 균형 있게 갖췄다. 하루에 한 장씩 색칠해도 좋고, 주말에 몰아서 해도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구아슈 데쿠파주의 정신—정답을 정해 두지 않고 즐기는 창작—을 색연필이라는 쉬운 도구로 안전하게 연습하게 해 준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티스의 표현 방식, 즉 선·면·색·리듬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컬러링북이 전하고 싶은 핵심은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오늘의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색을 고르고 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잦아들고, 흐트러졌던 균형이 서서히 돌아온다. 책은 이를 돕기 위해 “얇게 여러 번, 밝은 색부터, 경계는 부드럽게”라는 간단한 원칙을 안내하고, 1908년의 색면 실험부터 1950년대 구아슈 데쿠파주에 이르는 작품들을 배열해 손끝으로 마티스의 변화를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명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작은 루틴이 된다.

이 컬러리북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마티스의 색과 리듬을 손으로 체득하고 싶은 미술 애호가

- 업무·육아로 마음이 산만해져 ‘집중 루틴’이 필요한 분

- 그림 실력보다 색감 놀이와 몰입의 기쁨을 찾는 초보 컬러리스트

- 색칠하기 좋아하는 어린이와 성인


'온초록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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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말토’s 꿈꾸는 집 - 게임 배경 콘셉트 아티스트 이소말토의 첫 아트북!
이소말토(손혜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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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흐름과 학습 포인트가 분명한 배경 콘셉트”아트북"

이소말토는 게임 업계에서 배경 콘셉트와 환경 원화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아티스트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시각디자인을 부전공했으며,

넥슨·넷마블·라인·컴투스·님블뉴런 등과 협업해 온 이력이 알려져 있다.

참여작으로는 ‘BTS Universe Story’, ‘나이츠 크로니클’,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 등이 대표적이라 한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강의도 병행한다. 이 기본 정보는 작가의 공개 프로필과 유통사 소개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라 신뢰해도 되겠다.

작업 방식은 하이브리드 파이프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러프 스케치에서 콘셉트 키워드를 잡고,

3D 도구로 형태와 구도, 동선을 먼저 확인한 다음,

최종 단계에서 2D 페인팅으로 질감과 색, 감정선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여기서 3D는 구조 검증용 가이드로 쓰이는 편이다.

이 때문에 카메라 높이, 시선 유도, 주요 동선 같은 장면의 논리가 먼저 정리되고,

이후 텍스처·색 온도·재질 대비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설명은 작가가 공개해 온 작업 예시와 이번 책의 지면 구성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번 책 『이소말토’s 꿈꾸는 집』은 작가의 첫 아트북이다. 표지 일러스트만 보아도 책의 방향이 명확하다.

곡선형 지붕과 장식 타일, 기둥 상단의 오브제 모티프가 강조된 판타지 건물을 전면에 배치해 건축적 형태와 색채 설계가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상단 카피는 ‘첫 아트북’임을, 띠지 문구는 ‘집 20점’, ‘세계관 설정’, ‘러프–채색–후반부 과정’, ‘디테일 포인트’, ‘작가 Q&A·인터뷰’ 수록을 명시한다.

청록 배경과 노란 제목의 고대비 조합은 서가 진열 시 식별성과 가독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책의 구성은 콘셉트 단위의 집 20점을 중심으로 한다.

각 장은 외관–실내–소품이 하나의 콘셉트로 묶여 있고, 왜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단계별로 보여 준다. 러프 아이디어→3D로 구조 점검→라이트/구도 테스트→2D 페인팅의 흐름이 과정 캡처와 설명으로 정리되어 있어, 결과만 나열한 작품집과는 결이 다르다. “3D를 구조 검증용으로 쓴다”는 표현이 책 속 문장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3D 활용 과정이 단계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지면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이소말토의 강점은 ‘사용 맥락을 고려한 설계’다. 건물·실내·소품을 예쁜 장식으로 그치지 않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까지 반영한다. 손잡이의 마모, 문지방의 긁힘, 케이블의 동선 같은 사용 흔적이 기능을 증명해 주기 때문에, 화면이 ‘그럴듯함’이 아니라 개연성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흔히 나오는 “멋은 있는데 왜 이렇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피하게 해 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학습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포인트가 분명하다.

첫째, 포트폴리오 패키징을 배울 수 있다.

콘셉트–구조–최종의 3장 세트로 정리하는 방식이 반복되어, 제출물 구성이 깔끔해진다.

둘째, 리뷰 체크리스트가 잡힌다.

카메라 높이·주 동선·시선 유도·덩어리 값 분배를 먼저 보고, 이후 재질·색·엣지로 넘어가는 순서를 책이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셋째, 3D–2D 핸드오프 기준을 익힐 수 있다.

3D는 가이드, 2D는 감정과 질감의 마무리라는 역할 분담이 명확해 협업 기대치를 맞추기 쉽다.

넷째, 소품 설계 항목이 응용 가능하다.

쓰임새, 보관 위치, 접근성, 유지보수 흔적, 전원/배수/배기의 연결성 같은 질문을 적용하면, 설명 없이도 기능이 읽히는 화면을 만들 수 있다.

부록 형태의 Q&A/인터뷰디테일 포인트 요약도 유용하다. 작업 시간 안배, 중간 점검 방법(값 분배, 형태 우선순위, 리드 라인), 3D–2D 전환 시 주의점 같은 항목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 스튜디오 공용 가이드로 전환하기도 쉽다. 이 파트만 발췌해 팀 온보딩 자료로 쓰더라도 손색이 없다.

정리하면, 이소말토는 환경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는 콘셉트 아티스트이고,

이번 책은 그 강점을 과정과 기준까지 포함해 보여 주는 첫 아트북이다.

결과물 감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작업과 포트폴리오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현실형 레퍼런스를 원하는 독자에게 적합하다. 환경·배경 실무자, 콘셉트 지망생, 웹툰/일러스트 작가, 팀 리드·AD 모두에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흐름을 제공한다.

'한스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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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철학
문성훈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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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나를 돌보는 철학』은 “잘 산다”의 기준을 처음부터 다시 묻는 책이다.

돈을 많이 벌면 능력은 뛰어날 수 있지만, 그게 곧바로 좋은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옛말에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 했듯 재주가 많아도 덕이 얕으면 삶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비교와 서열이 일상처럼 굳었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돌봄”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남이 만든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대신, 나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골라 만들자는 뜻이다.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서술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이유를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을 돌보게 하려는 실천으로 풀어낸다. 공자도 평생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묻고 배웠다. 진리, 정의, 자유 같은 커다란 단어도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와 바로 이어진다는 점을 차근차근 보여 준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적어 내려간 이야기,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김형석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소박하게 다가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에게 속한 것’, ‘나의 것’, 그리고 ‘나’를 나누어 생각하는 대목이다.

재산과 지위는 나에게 속해 있을 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몸과 감정은 나의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짚는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중심, 그 핵심이 바로 ‘나’라고 설명한다.

이 구분을 떠올리며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붙잡고 애쓰던 것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사실 ‘나’ 그 자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겉모습이나 체면을 지키는 데 쓰던 힘을 줄이고,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차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데 힘을 쓰게 된다.

자기를 아는 일은 혼자서만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메시지다.

사회심리학자 미드는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주장하는 나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 자아는 이 둘을 맞춰 가는 과정에서 자란다. 공자가 “열다섯에 배우기를 뜻했고 서른에 섰다, 마흔에 미혹이 없었다…”라고 자신의 길을 정리한 문장도 오랜 시간 대화하고 부딪히며 자신을 다듬은 결과로 이해된다.

때로는 노자처럼 날카로운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말을 모욕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를 고치는 재료로 삼는 태도가 결국 성장을 만든다.

시간에 대한 태도도 새로 생각하게 한다. 푸시킨의 시처럼 힘든 날을 견디면 기쁜 날이 온다는 믿음을 간직하되, 아리스티포스의 말처럼 지금의 기쁨을 끝없이 미루지 말라고 권한다. 고진감래만 좇다 보면 현재를 즐기는 능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책은 작은 습관부터 바꾸자고 말한다. 거울 앞에서 오늘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힘든 날에는 제일 먼저 내가 나를 달래고,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 선택을 하자고 권한다. 드라마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지금의 선택과 습관을 바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애니메이션 ‘캔디’의 장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캔디는 거울 속 자신에게 미소를 건네며 어려움을 버텼고, 결국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먼저 챙기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쉽게 이해되었다.

책 후반부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거나 갇히는 네 가지 틀을 정리한다.

성공하는 삶, 도덕을 앞세운 삶, 다수의 기준에 맞춘 정상의 삶, 종교적 삶이다.

네 가지 모두 나름의 가치를 갖지만 공통으로 미리 만들어진 규칙을 전제로 한다.

이 규칙이 지나치면 개성을 잃거나, 다름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거나, 종교에서는 의식만 남고 사랑과 자비의 핵심이 흐려지는 일이 생긴다. 저자는 이 틀을 모두 버리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틀 때문에 나를 잃지 말자고 권한다. 여기에서 미셸 푸코의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작품이 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작품이라는 말은 멋을 부리자는 뜻이 아니다. 내가 고른 행동과 책임이 하루의 모양을 만든다는 뜻이다. 남이 준 정답만 따르지 말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형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자는 제안이다. 더 자유롭게 살자는 말이 아니라 더 주도적으로 살자는 말이라 이해하면 쉽다.

책을 덮고 나면 당장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아침에는 할 일 목록을 적기 전에 “오늘 지금 당장 누릴 작은 기쁨 한 가지”를 먼저 적는다. 저녁에는 노트 왼쪽에 사람들이 본 나를, 오른쪽에 내가 느낀 나를 한 줄씩 적고 둘 사이의 어긋남을 확인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선택이 잠깐의 평판이나 이익 때문인지, 단지 감정에 휩쓸린 건 아닌지, 아니면 내가 정말 원해서 고른 것인지 묻는다. 이런 질문만으로도 하루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결국 이 책이 알려 준 핵심은 간단하다. 잘 산다는 것은 남이 매긴 점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 돈과 성과는 나에게 속한 것일 뿐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은 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작은 실천을 쌓아 가다 보면, 언젠가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빚어 낸 한 편의 작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철학이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생활의 언어로 다가와, 남이 정한 성공 공식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을 찾고 가꾸는 법을 차근히 보여 준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부터 푸코까지의 생각을 일상 예시로 풀어, 지금 여기의 나를 돌보는 습관과 스스로 삶의 형식을 세우는 용기를 얻게 한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고 싶다면, 이 책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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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성공한 삶, 도덕적 삶, 정상적 삶, 종교적 삶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한다. 그는 인생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창조하는 삶을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에게 ‘나‘를 돌본다는 것은 이성적 사고와 판단의 주체인 ’나’를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과연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정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코에게 ‘나’를 돌본다는 것은 각자 자기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한다는 뜻이면, 그렇기에 자기 돌봄의 방식도 다르다.
푸코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인생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부터 들어 보자.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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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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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떠나기 전 파리 출장을 갔을 때 센 강변의 영문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서점 입구 칠판의 글귀를 읽다가 울었다. 사라질 뻔한 이 가게를 인수해 키워 딸에게 물려준 조지 휘트먼의 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라탱 지구의 돈키호테라 부른다…” 이웃보다 책 속 인물을 더 가깝게 느꼈다는 그의 고백을 사람들은 괴상하다고 여겼지만,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이웃보다 책 속 인물이 더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고 주인공 나스타시야를 현실에서 찾아 헤맸다는 휘트먼의 이야기를 전하며 같은 마음을 확인한다. 이 지점에서 곧장 『나와 그녀들의 도시』로 이어진다. 문학과 현실의 경계에 선 독자에게, 왜 자신이 그 경계에 서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해 주는 기록처럼 읽힌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랑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도시를 직접 찾아가 쓴 여행기다. 문학과 현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에 가깝다. 여주인공들에 초점을 맞추어 쓰였지만 여성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함께 읽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2018년에 나온 『바람과 함께, 스칼렛』을 넓히고 다듬은 개정증보판이라 구성은 더 단단해졌다. 작품의 원문을 인용한 이유도 분명하다. 번역을 넘어 원문 한 줄을 직접 맛보는 순간, 문장의 결이 손끝에서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가 마음을 붙잡았다. 저자는 6월의 섬을 “새잎의 초록, 민들레의 노랑, 흙의 빨강” 세 가지 빛깔로 기억할 것 같다고 쓴다. 우리나라에서 ‘빨강 머리 앤’이 공중파로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덕분에 널리 알려졌지만, 막상 북미에서는 관심 있는 사람만 아는 작품이라는 사실도 새삼 흥미로웠다. 동행은 재미 교포 2세 ‘제이미’였다. 사촌언니의 이종사촌 여동생인 제이미와는 지난 겨울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디저트를 먹다가 둘 다 ‘빨강 머리 앤’ 광팬이라는 걸 알고 의기투합해 여행을 약속했다. 둘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그린 게이블스’로 향했다. 19세기에 지어진 집은 외관을 옛 모습대로 보존했고, 내부는 소설의 묘사를 따라 충실히 꾸며 놓았다. 원래는 입장료가 있지만, 방문 당시가 캐나다 건국 150주년이라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2층에 마련된 앤의 방은 소설처럼 다락방은 아니었지만, 초록 커튼과 방문에 걸린 퍼프 소매의 갈색 드레스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매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퍼프 소매 드레스를 사 주는 장면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누구나 거기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된다. 그린 게이블스를 돌아본 뒤에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외가 ‘캐번디시 홈’, 뉴런던의 생가로 발을 옮겼다. ‘빨강 머리 앤’의 앤은 퀸즈 학교로 가서 교사 자격증을 따고, 레드먼드 칼리지에 진학한다. 앤은 몽고메리의 자화상에 가깝다. 몽고메리는 서른네 살에 이 소설을 썼고, 지금 그가 살던 집은 사라져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사과나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앤 투어’는 ‘그린 게이블스—앤 박물관’이었다. 몽고메리가 ‘은빛 수풀’이라 이름 붙인 그곳은 삼촌의 집으로, 몽고메리가 실제로 결혼식을 올린 장소다. 거실 벽난로 앞에 서자 소설 속 청혼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길버트가 병으로 깊이 앓을 때 혹여 잃을까 마음 졸이던 앤이, 마침내 길버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 겹쳐졌다. 책은 이런 식으로 ‘문장—현장—감상’을 번갈아 보여 준다. 원문 인용과 현장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 장면을 다시 재구성하는 재미가 크다. 책을 또 한 번 읽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콩코드에서는 『작은 아씨들』의 기운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집 ‘오차드 하우스’에서 오래 머문다. 거기에는 메이 올컷이 벽에 남긴 스케치, 루이자가 글을 쓰던 작은 책상, 바느질과 읽기가 함께 쌓인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앞에서 ‘마치 자매’의 성격이 왜 그렇게 결이 다른지, 가족의 생활감이 어떻게 한 권의 소설로 바뀌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콩코드의 공원과 묘지, 강가를 건너며,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읽던 내가 지금의 나와 다시 마주 앉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책 속에서만 보던 세계가 일상 가까이 다가오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어른이 된 뒤에도 읽기는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를 따라 롱아일랜드를 읽는 대목에서는 해안도로의 넓은 잔디와 담장, 만에 비친 불빛이 곧바로 장면을 불러낸다. 웨스트 에그와 이스트 에그의 실제 배경이 된 곳들이 서로 마주 보는 지형이라는 설명을 읽으면, 왜 녹색 불빛이 그렇게 멀고도 가까운 표식이었는지 이해된다. 물결이 잔잔히 흔들릴 때 개츠비가 손을 뻗던 그 마지막 동작이 눈앞에 선해진다. 이처럼 책은 ‘지형—상징—장면’을 차분히 연결해 준다. 뉴욕에서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며 그리니치빌리지를 걷는다. 벽돌 담벼락에 붙은 담쟁이, 좁은 골목의 바람, 늦은 오후 창문에 비친 빛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잎사귀 하나가 어떻게 삶을 붙잡는 믿음이 되는지 체감한다.

뉴올리언스에서는 포크너의 그림자를 좇는다. 프렌치쿼터의 오래된 골목, 습하고 달큰한 공기, 느리게 흐르는 재즈 소리 속에서 문장은 자연스레 속도를 늦춘다. 작가는 소설이 태어난 도시의 기운을 먼저 보여 준 뒤, 왜 그 문장이 그곳에서 나왔는지 설명한다. 그래서 ‘성지순례’로 사진만 남기는 여행기가 아니라, 문장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이해하는 산문이 된다. 이어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는 헤밍웨이를 만난다. 키웨스트의 집에서는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여섯 발가락 고양이와 2층 집필실, 창 너머로 보이는 등대를 함께 본다. 아바나 외곽의 ‘핀카 비히아’에서는 그의 타자기와 책장, 낚싯배 ‘필라르’의 흔적을 따라가며 『노인과 바다』의 문장들이 물과 바람의 결을 얻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 연쇄가 이어질수록 질문 하나가 또렷해진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이야기일까, 길일까. 결론은 단순하다. 둘이 번갈아 서로를 움직인다. 읽은 이야기가 내 발걸음을 바꾸고, 내가 직접 걸어 본 길이 다시 내 읽기의 방향을 바꾼다.

각 장을 이어갈 마다 다시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늘어났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골목 그늘과 겹쳐 읽고 싶어졌고,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을 바다 물결과 함께 떠올리고 싶어졌다. 언젠가 키웨스트에 가게 된다면 『노인과 바다』를 들고 갈 것이다. 이건 단순한 추억놀이가 아니다. 읽기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저자가 오래 사랑한 문학의 한 장면이 현실 속에서 다시 숨 쉬는 순간을 담은 책이다. 저자의 기록은 그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책과 삶 사이의 거리를 좁혀, 우리가 사랑한 문장과 우리가 서 있는 장소가 겹치면 오늘 무엇을 먼저 할지가 분명해진다. 다음에 펼칠 책, 걸어볼 거리, 붙잡을 일과 내려놓을 일이 스스로 갈라지고, 망설임 대신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 책은 어릴 적에 읽었거나, 저자가 언급한 책을 찾아서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저자가 언급했던 책을 리스트로 정리해서 하나씩 읽어 보고 싶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문학 속에 등장했던 가보고 싶은 장소를 버킷리스트에 담아, 저자처럼 언젠가 그 장소를 찾아가보고 싶다.

'아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빨강 머리앤‘의 배경인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는 내가 가장 오래도록 마음속에 그려온 곳이었다.
나는 애니메이션보다 책을 먼저 접했다. 열한 살 앤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친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빨리 열한 살이 되기를 바랐던 그 아홉 살 무렵부터 나는 앤이 있는 그곳, 애번리, 그린케이블즈, 그러니까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에 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앤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앤은 상상력의 결정체 같은 인물이었다. 어린 날 내게는 현실의 고난을 상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두 친구가 있었으니 하나는 빨강 머리 앤이었고, 또하나는 ’소공녀‘의 새라였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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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기고 자주 집니다만 - 중환자실 간호사가 전하는 속깊은 고백
김혜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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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기고, 자주 집니다만.”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는 그저 지금의 삶에서 흔히 겪는 소소한 일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은 사뭇 달랐다.

우울과 불안, 공황과 ADHD, 심지어 자해와 자살 충동까지—그 모든 것이 일상의 어떤 틈에서 드러나는지를, 저자의 치열한 일상의 기록으로 담담히 보여준다.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오는 생각을 어떻게 버텨내는지 과장 없이 전한다.

게다가 세밀한 정신과 상담 기록이 촘촘히 실려 있어,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실제로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책 초반을 넘겼을 때 저자가 쓴 글에 사실 적잖이 놀랐다.

어린 시절, 화가 난 엄마가 하얀 알약을 입에 쓸어 넣고, 몸싸움 끝에 언니가 칼을 들고 위협했던 장면이 그려진다. 특히 엄마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알약을 삼키려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장면에선 충격적이면서도, 그녀의 정신 상태가 이미 무너진 상태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죽고 싶다”는 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작은 공백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소망에 가까웠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던 아이에게 삶이 얼마나 힘겹고 버거웠을까 싶어, 책을 읽는 초반부터 허무함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울감’과 ‘우울증’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며 분리한다.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상실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비로소 진단을 고려한다는 기본선을 세우고,

스스로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매일 지속되는 비관, 식욕과 무관한 체중 변화, 얕고 자주 깨는 잠, 무기력과 피로, 반복되는 자살 사고와 같은 것들이다. 이 간단한 체크는 현재의 상태에 이름을 붙여주고, 도움을 청할 타이밍을 알려 주기 위한 안내에 가깝다.

저자는 첫 장에서 ‘사라지고 싶은 욕구’를 정면으로 다루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용기”, “간호사, 환자가 되다”, “공황 발작이 대체 뭐길래” 같은 항목으로 우울과 불안의 얼굴을 하나씩 불러낸다.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독자가 자신의 상태를 짚어볼 수 있게 한 구성 덕분에, 읽는 내내 ‘이건 나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저자는 중환자실(ICU) 간호사로 일하며, 아픔이 응축된 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먼저 닳아버리는 경험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 고백이 무겁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끝내 살아내려는 의지가 문장마다 작게나마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쌓인 감정의 잔여물, 업무 뒤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기력과 자책 등, 이 책이 다루는 장면들은 병동의 문을 열어 본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공황 발작을 다루는 부분은 현실적이다. 저자는 그것을 “죽을 것 같은 공포”라는 표현으로, 숨이 막히고 시야가 좁아지며 바닥에 주저앉아 심호흡을 해야만 다음 행동이 가능해지는 구체적인 순간을 묘사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실천이다. 조용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옮기고, 과호흡이 올 땐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고 천천히 숨을 쉬어 이산화탄소를 재흡수하게 해야 한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서 이런 증상을 보았을 때도 즉각적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정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혼자 버티지 말라는 것이다.

자살 사고·계획·시도 여부를 직접, 구체적으로 묻고 말하는 대화가 오히려 위험을 낮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말하기는 예방이고, 대화는 지연이며, 그 지연이 생존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ADHD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시간 약속을 자주 놓치고, 체계가 필요한 일을 시작·마무리하기가 어렵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현실이 나열된다. 저자는 약을 통해 우울과 자살 사고가 누그러져도 실수가 계속되자 병원을 옮기고 자신에게 맞는 치료자를 찾는다.

길고 느린 상담을 원했다는 고백은, 내 이야기를 간절히 들어줄 사람을 간절히 찾길 바랬다는 마음처럼 들렸다.

책의 전반적인 문체는 지나치게 감정 과잉으로만 흐르지 않고, 오히려 저자는 우울을 이기는 다정을 말하고 싶어 한다. “약 잘 챙겨 먹고, 안 좋은 생각이 들면 한 발 미루기” 같은 생활 문장이 책 전체의 호흡을 이끈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당장 실행 가능한 작은 문장들이라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스스로를 꾸짖는 대신, ‘잘 버텨 준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걸게 만드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감정 에세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뒤편에는 우울 관련 자가 점검, 공황 대처 팁, 자살 고위험군을 위한 기본 간호 정보 등 실질적 안내사항을 이야기 해준다. 자기 주변에 같은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같은 정보를 알아 두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그런 마음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언급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밤을 지새운 사람들을 향해 ‘새벽을 지나는 법’을 천천히 적어 둔 구성도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지는 법’을 배우는 대목이다.

저자는 밤 근무가 끝난 새벽, 침대 모서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을 한 발 미루기로 버텼다고 한다. 그 한 발이 다음 하루를 여는 문이 되었고, 그 작은 승리가 쌓여 가끔 이기는 사람이 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자주 져도 괜찮다, 다만 끝까지 살아남자’고 말한다.

중반부의 자가평가 장면들도 기억에 남는다. 권태와 무기력이 숫자로 확인될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고백과, 예민성은 외롭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높게 나온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런 사실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증상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자책 대신 실천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 전환을 돕는 데 있다.

그리고 특히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문장은 “기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나는 저자가 이세상에 티끌하나 없이 사라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켠으로는 나를 제대로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나를 기억해달라는 의미처럼도 느껴졌다.

사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떠올랐는데, 이 책은 주어진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그 상황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 완성해야 할 작업, 전하고 싶은 메시지 같은 ‘의미의 좌표’가 사람을 살아야겠다고 이끌었듯이, 그녀도 ‘의지를 향한 의지’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갈망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위로는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내 몸이 오늘 해낸 사소한 생존의 리듬에서 온다.

흔들려도 괜찮다. 다만 놓지는 말자.

우리가 가는 길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어, 무섭고 외롭더라도 길은 항상 열려 있다.

그 길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묵묵히 걸어 나가보자.

그러면 밝은 빛을 맞이할 수도 있고, 그 길 위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내 곁에 누군가가 머물며 진정한 사랑의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면,

내가 또 살아가야 할 순간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닐까.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법이다. 그러니 끝까지 한 번 살아보자.


'미다스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질문,
이를테면 자살 사고, 계획, 시도 경험, 자살 위험 요인 등에 대한 사전이 자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는 대상자가 솔직한 말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격려해 고통을 경감하고, 자살 위험성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대상자가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운 경우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자살 사고에 대해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등 혼자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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