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철학
문성훈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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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나를 돌보는 철학』은 “잘 산다”의 기준을 처음부터 다시 묻는 책이다.

돈을 많이 벌면 능력은 뛰어날 수 있지만, 그게 곧바로 좋은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옛말에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 했듯 재주가 많아도 덕이 얕으면 삶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비교와 서열이 일상처럼 굳었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돌봄”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남이 만든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대신, 나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골라 만들자는 뜻이다.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서술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이유를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을 돌보게 하려는 실천으로 풀어낸다. 공자도 평생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묻고 배웠다. 진리, 정의, 자유 같은 커다란 단어도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와 바로 이어진다는 점을 차근차근 보여 준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적어 내려간 이야기,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김형석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소박하게 다가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에게 속한 것’, ‘나의 것’, 그리고 ‘나’를 나누어 생각하는 대목이다.

재산과 지위는 나에게 속해 있을 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몸과 감정은 나의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짚는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중심, 그 핵심이 바로 ‘나’라고 설명한다.

이 구분을 떠올리며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붙잡고 애쓰던 것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사실 ‘나’ 그 자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겉모습이나 체면을 지키는 데 쓰던 힘을 줄이고,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차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데 힘을 쓰게 된다.

자기를 아는 일은 혼자서만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메시지다.

사회심리학자 미드는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주장하는 나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 자아는 이 둘을 맞춰 가는 과정에서 자란다. 공자가 “열다섯에 배우기를 뜻했고 서른에 섰다, 마흔에 미혹이 없었다…”라고 자신의 길을 정리한 문장도 오랜 시간 대화하고 부딪히며 자신을 다듬은 결과로 이해된다.

때로는 노자처럼 날카로운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말을 모욕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를 고치는 재료로 삼는 태도가 결국 성장을 만든다.

시간에 대한 태도도 새로 생각하게 한다. 푸시킨의 시처럼 힘든 날을 견디면 기쁜 날이 온다는 믿음을 간직하되, 아리스티포스의 말처럼 지금의 기쁨을 끝없이 미루지 말라고 권한다. 고진감래만 좇다 보면 현재를 즐기는 능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책은 작은 습관부터 바꾸자고 말한다. 거울 앞에서 오늘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힘든 날에는 제일 먼저 내가 나를 달래고,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 선택을 하자고 권한다. 드라마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지금의 선택과 습관을 바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애니메이션 ‘캔디’의 장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캔디는 거울 속 자신에게 미소를 건네며 어려움을 버텼고, 결국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먼저 챙기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쉽게 이해되었다.

책 후반부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거나 갇히는 네 가지 틀을 정리한다.

성공하는 삶, 도덕을 앞세운 삶, 다수의 기준에 맞춘 정상의 삶, 종교적 삶이다.

네 가지 모두 나름의 가치를 갖지만 공통으로 미리 만들어진 규칙을 전제로 한다.

이 규칙이 지나치면 개성을 잃거나, 다름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거나, 종교에서는 의식만 남고 사랑과 자비의 핵심이 흐려지는 일이 생긴다. 저자는 이 틀을 모두 버리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틀 때문에 나를 잃지 말자고 권한다. 여기에서 미셸 푸코의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작품이 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작품이라는 말은 멋을 부리자는 뜻이 아니다. 내가 고른 행동과 책임이 하루의 모양을 만든다는 뜻이다. 남이 준 정답만 따르지 말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형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자는 제안이다. 더 자유롭게 살자는 말이 아니라 더 주도적으로 살자는 말이라 이해하면 쉽다.

책을 덮고 나면 당장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아침에는 할 일 목록을 적기 전에 “오늘 지금 당장 누릴 작은 기쁨 한 가지”를 먼저 적는다. 저녁에는 노트 왼쪽에 사람들이 본 나를, 오른쪽에 내가 느낀 나를 한 줄씩 적고 둘 사이의 어긋남을 확인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선택이 잠깐의 평판이나 이익 때문인지, 단지 감정에 휩쓸린 건 아닌지, 아니면 내가 정말 원해서 고른 것인지 묻는다. 이런 질문만으로도 하루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결국 이 책이 알려 준 핵심은 간단하다. 잘 산다는 것은 남이 매긴 점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 돈과 성과는 나에게 속한 것일 뿐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은 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작은 실천을 쌓아 가다 보면, 언젠가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빚어 낸 한 편의 작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철학이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생활의 언어로 다가와, 남이 정한 성공 공식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을 찾고 가꾸는 법을 차근히 보여 준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부터 푸코까지의 생각을 일상 예시로 풀어, 지금 여기의 나를 돌보는 습관과 스스로 삶의 형식을 세우는 용기를 얻게 한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고 싶다면, 이 책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을유문화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미셸 푸코는 성공한 삶, 도덕적 삶, 정상적 삶, 종교적 삶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한다. 그는 인생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창조하는 삶을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에게 ‘나‘를 돌본다는 것은 이성적 사고와 판단의 주체인 ’나’를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과연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정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코에게 ‘나’를 돌본다는 것은 각자 자기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한다는 뜻이면, 그렇기에 자기 돌봄의 방식도 다르다.
푸코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인생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부터 들어 보자.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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