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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수업
이상윤 지음 / 모티브 / 2025년 8월
평점 :

우연히 펼친 《노자의 도덕경 수업》 첫 문장은 강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네가 그것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답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알쏭달쏭하고 모호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이 났다. 며칠을 곱씹다 보니, 내가 옳고 그름으로만 잘라 버리던 사이에 수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틈이야말로 내가 숨 쉴 수 있는 여지였고, 이 책은 그 틈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성급히 결론부터 내리려는 습관 대신, 불완전한 흔들림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외발자전거가 좌우로 흔들리며 결국 전진하듯이 말이다.
저자는 《도덕경》을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대신, 자신이 삶에서 얻은 울림과 공부의 흔적을 바탕으로 노자의 말을 오늘의 언어로 옮긴다.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길’이자 ‘삶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여행이 목적지에 닿는 과정만이 아니라, 그 사이의 수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모두 포함하듯이, 우리의 삶도 시작과 끝 사이를 채우는 수많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설명은 깊은 공감을 불러왔다.
무명과 유명, 무와 유의 순환에 대한 해석 또한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겨울과 봄, 생과 사, 별의 탄생과 소멸처럼 눈앞의 자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호함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세계가 유지되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배움은 ‘중간에 머무는 용기’다. 어릴 적 나는 늘 좋고 싫음을 빨리 구분해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노자는 침묵하고 관찰하라고 말한다. 빛과 그림자, 높음과 낮음, 앞과 뒤가 서로를 완성하는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멈추어 보면, 내가 옳다고 믿던 것의 반대편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저자는 이 태도를 ‘무위’라고 설명한다. 간섭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공을 세워도 머무르지 않는 삶.
과거의 성취를 붙들고 자랑하며 제자리만 맴도는 사람과, 필요 없다면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의 차이를 읽다 보면, 지금 내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순함’의 가치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지식의 저주와 권위 편향을 지적하며, 어려운 말로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태도에 경고를 보낸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얼마나 자주 복잡하고 화려한 것에 끌려 본질을 놓쳤던가. 우리는 쉽고 단순한 것을 얕보고, 어렵고 난해해야 깊이가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노자의 말처럼, 삶의 지혜는 대개 자연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래서 저자는 동화책을 다시 읽어 보자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권한다. 단순함은 미숙함이 아니라 본질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SNS에 빗댄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귀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덜 귀히 여길수록, 탐낼 것을 덜 보여줄수록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는다.”
노자의 말은 오늘날 피드 속 풍경과 겹쳐진다.
문제는 정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내 기준과 주체성의 부족이다.
사회가 정한 ‘훌륭함’의 잣대에 맞추려 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잃는다.
남의 화려한 한 장면을 내 삶 전체와 비교하며 초조해하는 대신, 나만의 소소한 만족과 고유한 매력을 지켜내야 한다. 애쓰지 않을 때 드러나는 본연의 모습이 진짜 매력이라는 말은 상선약수(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 물)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었다. 노자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라는 요구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공자의 “말은 신중히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는 가르침, 성경의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는 구절과도 닮아 있다. 결국 신뢰는 화려한 말이 아니라 일관된 행동에서 나온다. 성인들이 존경받는 이유 역시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말한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되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문장은, 선의가 욕심과 계산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경계하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다.
소크라테스, 노자, 공자 같은 현인들이 반복해서 무지를 이야기한 이유는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체하며 스스로를 과신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끊임없이 겸손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지식이 조금 늘어나면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 쉽다. 반대로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터닝-크루거 곡선은 이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어떤 주제를 막 접했을 때는 금세 전부를 이해한 것처럼 느껴져 ‘무지의 봉우리’에 선다. 그러나 곧 깊이 알수록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절망의 계곡’에 이른다. 이 과정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진짜 이해가 쌓이기 시작하고,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그리고 꾸준히 배움을 이어가면 어느 순간 안정된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도달하게 된다.
이 흐름을 읽으며 나 자신도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혹은 어느 길목을 지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저자의 독서 경험도 깊은 울림을 줬다.
그는 모든 일을 멈추고 3년간 책에만 몰입했던 시기를 회고하며,
우주의 이치를 제대로 읽어야 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자는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책이 꼭 세상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도구임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내 일상과 관계, 욕망과 불안을 더 차분하게 바라보게 됐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지, 언제 말을 아끼고 언제 침묵해야 할지, 조금 더 또렷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불러오면서도 노자의 유연한 태도와 함께 놓아 설명하는 부분이다.
니체는 고난을 삶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말했고,
노자는 지나친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라고 했다.
얼핏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두 사상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완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이어 가는 작은 실천이다.
말은 줄이고 행동을 조금 더 늘리는 것, 남과 비교하기 전에 내 마음이 왜 흔들리는지 알아차리는 것,
타인의 잣대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
이처럼 작은 걸음들이 쌓여 결국 우리가 걷는 ‘도’가 된다는 사실을 책은 일깨워 준다.
결국 《노자의 도덕경 수업》은 고전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책이다.
정답을 바로 알려 주는 지도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불안해하는 사람, 완벽주의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사람, 관계 속에서 지쳐 답을 찾지 못한 사람, 그리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당장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말을 조금 줄이고, 세상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며, 정답 대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삶은 한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노자가 말했듯, 완벽한 중심은 없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흔들림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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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엄마과 단단한맘의 서평모집>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조화‘라고 생각하는데, <도덕경>을 통해 상대와 나 사이에 고정된 자아를 내려놓고, 상황에 자연스럽게 맞춰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 결과,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깊어졌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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