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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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쓸 수 없는 글.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신효원의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은 한 번에 읽어치울 책이 아니다. 책장에 꽂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다. 글을 쓰다 표현이 막힐 때,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가슴속에서 ‘사물거리다’ 할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적확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이 책을 찾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단어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를 몸으로 느끼게 한다.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펼치며 단어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입안에서 굴려 보며 ‘이 단어는 이런 맛이었구나’ 하고 맛을 보는 식으로 읽으면 더 좋다.

읽을 때는 먼저 순우리말이 주는 느낌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뒤에 뜻을 찾아보면 좋다. 내가 느낀 감정과 사전적 의미가 맞닿을 때의 기분이 오래 남아 그 단어도 오래 남는다. 이를테면 ‘그느르다’를 생각해보면 마음 어딘가가 포근히 덮이는 기분이 들고,

‘다사롭다’를 낮게 중얼거리면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리고 호흡이 깊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미소를 보며 ‘상그레하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느낌에 덩달아 웃게 된다.

이유 없이 뒤숭숭한 날에는 ‘사물거리다’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정서를 안전하게 붙잡아 둘 수 있다. 단어 하나가 표정이 되고, 걸음이 되고, 하루의 태도가 되는 경험이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과거의 순간을 기억나게 했던 문장은 ‘찬란한 내 밑줄의 역사’였다.

“오랜만에 불려 나온 밑줄 친 문장들에는 오래전 내 모습이 묻어 있다.

나는 그때 왜 이런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까.

그 시간의 나는 조용했고 말이 없었고 힘들었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오래전 나를 고요하게 만난다.”

오래전에 밑줄을 그어 둔 문장들을 다시 불러내며 그 순간의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는 글이었다.

나는 왜 그때 그 문장에 줄을 그었을까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시간의 나는 조용했고 말이 없었고 조금은 힘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멋있어 보여서 긋던 줄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를 지탱해 줄 말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었다.

막막함 속에서 손을 잡아 줄 문장, 혹은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둔 문장.

밑줄은 결국 내 감정의 연대기였고, 그 밑줄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의 나를 덜 냉혹하게 이해하는 일이었다.

이 책은 단어의 사전식 풀이가 아니라, 일상의 장면과 몸의 기억을 통해 단어를 되살리는 글들로 이루어진다. 단어 하나와 그에 얽힌 개인적 사연, 그리고 그 장면을 응축한 짧은 시구와 이미지가 한 편의 시화전처럼 이어진다. 덕분에 독자는 단어를 알게 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실제로 겪게 된다. 이는 저자가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그 안에 순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심어 둔다. 덕분에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단어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단어는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사전에서 뜻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 속에서 단어가 어떻게 제자리를 찾는지를 몸소 보여주기 때문에 순우리말이 어렵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감성적인 언어로 다가온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은 예쁜 말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다르다. 말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말을 쓰고 싶게 만든다.

저자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가 단어의 쓰임을 가장 정확한 온도로 전달하고,

그래서 독자는 “좋은 단어를 알게 되었다”가 아니라 “나도 오늘 이 말을 한 번 써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된다.

후반부에 가면 저자가 아끼는 말들을 접할 수 있다.

‘마음새’와 ‘마음자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를 묻는 말처럼 다가온다.

마음새를 감사의 일들로 다듬고, 마음자리엔 쉽게 상처 내는 칼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보짱’은 낙관이 아니라 지속의 언어다. 흔들려도 버티게 하는 침묵의 힘이 그 말 안에 있다.

‘돋되다’는 하루의 작은 상승을 기꺼이 인정하게 만들고, ‘도두보다’의 시선을 더하면 무엇이든 한 번 더 좋게 기울여 보고 싶어진다. ‘내풀로’는 타인의 기대를 과하게 짊어지지 않고 내 호흡과 속도를 회복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또바기’는 사랑과 신뢰의 기준을 마련해 주고, ‘소롯이’와 ‘오롯하다’는 간직과 충만의 언어로 나란히 선다. 마지막으로 ‘아람’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준다.

성급한 성취 대신 익음의 시간을 통과하겠다는 약속, 그래서 떨어져도 품위 있는 무게를 얻겠다는 약속이 그 한 단어에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 갈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마다, 혹은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헤맬 때 참고하기 좋은 책이라서,

책장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아야 할 책이라고 느낀다.

오늘의 마음에 맞는 단어를 하나 고르고, 그 말을 입안에서 조용히 굴려 보다가,

그 단어가 이끄는 방향으로 하루를 조금 기울이면 충분하다.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리에게 순우리말을 알려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자신을 돌보는 메세지까지 함께 전하는 것 아닐까.

오늘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한 문장, 한 낱말이 마음에 담기면,

그 언어는 태도가 되고, 하루의 질감을 바꿀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이 가르쳐 주는 것은 말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함으로써 더 다정하게 살아가는 법인 것 같다.


'생각지도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오랜만에 불려 나온 밑줄 친 문장들에는 오래전 내 모습이 묻어 있다.
나는 그때 왜 이런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까.
그 시간의 나는 조용했고 말이 없었고 힘들었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오래전 나를 고요하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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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회화 100일의 기적 - 개정판 100일의 기적
민 킴 지음 / 넥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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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회화 잘하는 비결 – 100일의 작은 성취로 만드는 변화


끝없이 이어진 길을 두 사람이 걷는다.

앞만 보고 속도만 내는 사람과 길가의 꽃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즐기는 사람,

누가 목적지에 도달할까?

언어 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언제쯤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까 조바심만 내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만,

오늘 하루의 작은 성취에 집중하는 사람은 꾸준히 나아가 결국 목적지에 닿는다.


스페인어 학습은 긴 여행과도 같다. 매일 짧게라도 “오늘도 해냈다”라는 성취를 느끼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습관은 어느 순간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 매번 꼬이던 발음이 자연스럽게 풀리며, 듣기 실력이 점차 향상되어 마침내 스페인어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쌓인 경험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삶의 태도까지 바꾸게 된다.

스페인 속담에 Lo que fácil viene, fácil se va—“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라는 말이 있다.

언어 습득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값지고 오래 남는다. 오늘 해야 할 것 하나를 정하고, 끝냈다면 스스로에게 체크하며 격려해 주자. 이 작은 체크들이 100일 뒤 분명히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사실 영어는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고, 중국어는 성조와 한자가 부담스럽다.

그에 비해 스페인어는 발음 규칙이 단순해 긴 문장도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언어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철학이나 역사, 예술처럼 책으로만 접해서는 한계가 있고, 직접 보고, 외우고, 말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소통하며 그들의 문화를 깊이 느끼고 싶다면,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정열과 열정의 나라 스페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스페인어가 바로 그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제 부담스럽지 않게 한 걸음 내디뎌 보자.

100일 동안 매일 한 장씩, 혹은 그보다 더 느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마스터했을 때, 학습 전과 후의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분명히 체감하게 될 것이다.


📌 100일 공부 루틴

- 하루 1개 핵심 강의 듣고 정리하기

- 본문 대화문 큰 소리로 3회 읽기

- 전날 학습 복습 및 복기하기


🎧 학습 도구 활용법

- 각 파트에는 mp3 듣기 / 저자 강의 / 복습하기 표시가 있다.

저자 해설 강의를 먼저 들으면 표현의 뉘앙스와 쓰임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 원어민 mp3 파일은 책 속 QR 코드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며, 여러 번 듣고 따라 말하는 연습이 효과적이다.

저자 강의는 QR 코드나 오디오클립(audio clip.naver.com)에서 ‘스페인어회화 100일’을 검색해도 볼 수 있다.

『스페인어 회화 100일의 기적』은 부담 없이 시작해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여정을 돕는 책이다. 오늘의 한 장, 한 문장, 한 번의 소리 내어 읽기가 쌓이면 반드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게 된다.

¡Muy bien! 이제 출발하자.

+

마지막에 ¡Muy bien! 문장 앞에 ¡가 있는 걸 궁금했던 사람 또 있으려나?

처음에는 난 이게 오타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래. 이유를 알려줄게.


❗ 스페인어의 느낌표와 물음표 사용법

스페인어 문장은 느낌표(!) 나 물음표(?) 를 쓸 때 앞과 뒤에 각각 한 번씩 써야 한다.

문장 앞에는 거꾸로(¡, ¿) 를 쓰고, 문장 뒤에는 정상(!, ?) 을 쓴다.


📖 예시 문장

- ¡Hola! → “안녕!”

- ¿Cómo estás? → “잘 지내?”

- ¡Muy bien! → “아주 좋아!”


💡 왜 이렇게 쓸까?

문장 시작부터 감탄문인지, 의문문인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알고 있으면 스페인어 문장을 읽고 쓸 때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넥서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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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수업
이상윤 지음 / 모티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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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펼친 《노자의 도덕경 수업》 첫 문장은 강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네가 그것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답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알쏭달쏭하고 모호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이 났다. 며칠을 곱씹다 보니, 내가 옳고 그름으로만 잘라 버리던 사이에 수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틈이야말로 내가 숨 쉴 수 있는 여지였고, 이 책은 그 틈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성급히 결론부터 내리려는 습관 대신, 불완전한 흔들림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외발자전거가 좌우로 흔들리며 결국 전진하듯이 말이다.


저자는 《도덕경》을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대신, 자신이 삶에서 얻은 울림과 공부의 흔적을 바탕으로 노자의 말을 오늘의 언어로 옮긴다.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길’이자 ‘삶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여행이 목적지에 닿는 과정만이 아니라, 그 사이의 수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모두 포함하듯이, 우리의 삶도 시작과 끝 사이를 채우는 수많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설명은 깊은 공감을 불러왔다.

무명과 유명, 무와 유의 순환에 대한 해석 또한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겨울과 봄, 생과 사, 별의 탄생과 소멸처럼 눈앞의 자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호함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세계가 유지되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배움은 ‘중간에 머무는 용기’다. 어릴 적 나는 늘 좋고 싫음을 빨리 구분해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노자는 침묵하고 관찰하라고 말한다. 빛과 그림자, 높음과 낮음, 앞과 뒤가 서로를 완성하는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멈추어 보면, 내가 옳다고 믿던 것의 반대편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저자는 이 태도를 ‘무위’라고 설명한다. 간섭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공을 세워도 머무르지 않는 삶.

과거의 성취를 붙들고 자랑하며 제자리만 맴도는 사람과, 필요 없다면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의 차이를 읽다 보면, 지금 내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순함’의 가치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지식의 저주와 권위 편향을 지적하며, 어려운 말로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태도에 경고를 보낸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얼마나 자주 복잡하고 화려한 것에 끌려 본질을 놓쳤던가. 우리는 쉽고 단순한 것을 얕보고, 어렵고 난해해야 깊이가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노자의 말처럼, 삶의 지혜는 대개 자연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래서 저자는 동화책을 다시 읽어 보자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권한다. 단순함은 미숙함이 아니라 본질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SNS에 빗댄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귀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덜 귀히 여길수록, 탐낼 것을 덜 보여줄수록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는다.”

노자의 말은 오늘날 피드 속 풍경과 겹쳐진다.

문제는 정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내 기준과 주체성의 부족이다.

사회가 정한 ‘훌륭함’의 잣대에 맞추려 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잃는다.

남의 화려한 한 장면을 내 삶 전체와 비교하며 초조해하는 대신, 나만의 소소한 만족과 고유한 매력을 지켜내야 한다. 애쓰지 않을 때 드러나는 본연의 모습이 진짜 매력이라는 말은 상선약수(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 물)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었다. 노자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라는 요구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공자의 “말은 신중히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는 가르침, 성경의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는 구절과도 닮아 있다. 결국 신뢰는 화려한 말이 아니라 일관된 행동에서 나온다. 성인들이 존경받는 이유 역시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말한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되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문장은, 선의가 욕심과 계산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경계하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다.

소크라테스, 노자, 공자 같은 현인들이 반복해서 무지를 이야기한 이유는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체하며 스스로를 과신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끊임없이 겸손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지식이 조금 늘어나면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 쉽다. 반대로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터닝-크루거 곡선은 이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어떤 주제를 막 접했을 때는 금세 전부를 이해한 것처럼 느껴져 ‘무지의 봉우리’에 선다. 그러나 곧 깊이 알수록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절망의 계곡’에 이른다. 이 과정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진짜 이해가 쌓이기 시작하고,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그리고 꾸준히 배움을 이어가면 어느 순간 안정된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도달하게 된다.

이 흐름을 읽으며 나 자신도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혹은 어느 길목을 지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저자의 독서 경험도 깊은 울림을 줬다.

그는 모든 일을 멈추고 3년간 책에만 몰입했던 시기를 회고하며,

우주의 이치를 제대로 읽어야 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자는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책이 꼭 세상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도구임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내 일상과 관계, 욕망과 불안을 더 차분하게 바라보게 됐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지, 언제 말을 아끼고 언제 침묵해야 할지, 조금 더 또렷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불러오면서도 노자의 유연한 태도와 함께 놓아 설명하는 부분이다.

니체는 고난을 삶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말했고,

노자는 지나친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라고 했다.

얼핏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두 사상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완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이어 가는 작은 실천이다.

말은 줄이고 행동을 조금 더 늘리는 것, 남과 비교하기 전에 내 마음이 왜 흔들리는지 알아차리는 것,

타인의 잣대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

이처럼 작은 걸음들이 쌓여 결국 우리가 걷는 ‘도’가 된다는 사실을 책은 일깨워 준다.


결국 《노자의 도덕경 수업》은 고전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책이다.

정답을 바로 알려 주는 지도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불안해하는 사람, 완벽주의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사람, 관계 속에서 지쳐 답을 찾지 못한 사람, 그리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당장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말을 조금 줄이고, 세상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며, 정답 대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삶은 한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노자가 말했듯, 완벽한 중심은 없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흔들림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강한엄마과 단단한맘의 서평모집>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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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조화‘라고 생각하는데,
<도덕경>을 통해 상대와 나 사이에 고정된 자아를 내려놓고, 상황에 자연스럽게 맞춰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 결과,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깊어졌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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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 (라티움어 원전 완역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남우 외 옮김 / 까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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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대화(라티움어 원전 완역판)』를 읽었는데, 책 속 몇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세네카는 선한 사람과 신의 관계를 덕에 기초한 우정이라고 표현했지만, 곧 그것보다는 오히려 친족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신은 선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고 더 많은 길을 걷게 하고, 더 험한 길을 오르게 한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더 단단하게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내가 불운이라고 불렀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보였다. 고난을 언제나 적으로만 여겼는데, 어쩌면 그것은 나를 키워주려는 훈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네카는 나아가 “선한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뜻은 분명했다. 나쁜 일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여 다른 성질로 바꾸어내기 때문에 나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풍이 바다의 맛을 바꾸지 못하듯, 역경도 굳센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는 운동선수의 비유를 들며, 더 강해지려면 강한 상대와 맞서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그 구절을 읽다가, 일이 꼬일 때마다 “이번만 조용히 넘어가자” 하며 피하던 내 습관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내느냐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또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 시험대에 올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운명은 가장 용감한 자를 찾아 힘을 시험하며, 그 과정에서 무키우스는 불로, 파브리키우스는 가난으로, 루틸리우스는 추방으로, 레굴루스는 고문으로, 소크라테스는 독약으로, 카토는 죽음으로 시험을 받았다. 위대한 본보기는 불운 속에서만 드러난다는 그의 말은, 시련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분노에 관하여」에서는 화가 어떻게 싹트고 자라나는지를 차근차근 짚는다. 화는 작은 자극에서 시작해 점점 커지다 결국 파괴를 불러온다. 순간의 분노는 달콤하지만, 그때 이미 패배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화를 못 참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짧은 쾌감을 놓지 못하고 내가 키워온 것이었다. 세네카는 화를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화가 커지는 과정을 늦추어 끊어내라고 한다. 목소리를 낮추고, 판단을 미루며, 장면을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 실제로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그의 말대로 해 보았다. 그러자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단계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중 하나만 멈춰도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자라나지 않게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는 읽는 내내 내 일상을 비춰주었다. 세네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낭비하기 때문에 짧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 구절을 보는 순간 습관처럼 켜는 휴대폰 화면과 ‘잠깐’이라며 빠져드는 무의미한 시간이 떠올랐다. 똑같은 하루라도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된다. 그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추상적인 결심이 아니라,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나는 퇴근 전 30분을 일부러 비워 밑줄 친 문장만 다시 읽어 보았다. 그 작은 선택 하나로 하루의 인상이 바뀌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면 하루가 달라진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후반부의 「은둔에 관하여」와 「평상심에 관하여」는 삶의 균형에 대해 말한다. 나는 물러서는 것을 늘 패배라 여겼지만, 세네카는 은둔을 삶의 리듬, 다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휴식으로 보았다. 시끄러운 바깥세상을 내려놓고 마음속 창고를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세상 속으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평정에 대해서도 그는 거창한 비법을 내놓지 않았다. 잠시 멈추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작은 습관 속에서 평정은 자란다. 그래서 평정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언제든 맞설 준비가 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책 속에서는 레굴루스와 마에케나스의 대비도 흥미로웠다. 레굴루스는 고귀한 목표를 위해 고난을 견디며 고통보다 그 이유에 집중했지만, 부와 쾌락 속에 살던 마에케나스는 오히려 작은 고통에도 크게 괴로워했다. 시련이 없는 삶이야말로 영혼을 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세네카는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자연의 절반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며, 시련이 없었다면 덕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고 강조한다. 덕은 위험을 열망하고, 고생조차 영광의 일부로 여긴다. 운명은 사랑하는 이들을 단련하며, 방치된 사람들은 결국 불행 앞에 더 유약해진다. 그래서 시련은 오히려 존엄의 증표이자 덕을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죽음에 관한 구절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죽음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부풀려 두려워한다고 했다. 잠깐 사이에 지나갈 일을 오래 두려워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행복에 관한 짧은 글에서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본성에 맞는 삶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 했다. 필요한 만큼의 재화, 절제된 욕망, 과하지 않은 칭찬, 그리고 이성에 따른 삶. 이것들은 특별한 성취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세네카의 대화』는 짧지만 밀도 있는 사색으로 이루어진 글들이라, 읽고 난 뒤에도 구절들이 오래 마음에 남아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어떤 날은 ‘분노’를 다룬 문장이, 또 어떤 날은 ‘평상심’을 이야기한 구절이 크게 다가온다. 언젠가 큰 어려움이 닥칠 때, 오늘 밑줄 그은 문장들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세심하게 밑줄을 긋고, 더 진솔하게 메모를 남겨 두려 한다. 시련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내느냐는 분명히 훈련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네카가 따랐던 스토아 철학의 핵심과도 이어진다. 외부의 운명은 내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내 마음과 태도는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가르침. 결국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기 삶을 단단히 붙드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라는 사실이었다.

'까치글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늘 행복하며 마음의 고통없이 살아가는 것은 실로 자연의 절반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만, 운명이 당신에게 덕을 보여줄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제가 당신의 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당신은 올림피아 경기에 참가했습니다만, 당신 말고 다른 참가자가 없다면, 월계관을 썼어도 당신이 승리자는 아닙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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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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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9권(3부 1)』은 3·1운동 이후의 거친 시대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무엇을 고르는지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처음에 나오는 “뿌리 없는 나무도 없고, 열매 없는 나무도 없다”는 말이 이 권 전체를 이끈다. 뿌리는 우리 각자의 과거와 가족, 고향이고, 열매는 오늘 해야 할 선택과 책임이다. 나는 뿌리를 없애야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인정하고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무대는 간도와 용정, 하얼빈, 그리고 평사리로 이어진다. 만세의 함성은 잦아들었지만 체포와 감시, 흩어진 가족,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남는다. 자연은 먼저 봄을 보여 준다. 얼음이 녹아 강물이 흐르고, 까치는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고, 번데기가 몸을 흔들어 나비가 되려 한다(9권 p247). 추운 겨울을 버틴 다음에야 따뜻한 계절이 오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버틴다.

서희는 오래 준비한 끝에 조준구와 마주선다. 집을 넘기는 자리에서 서희는 두 가지를 딱 잘라 말한다. 양심을 가져갈 것인지, 오천 원을 가져갈 것인지 고르라고 한다. 조준구는 돈을 고른다. 그 순간 서희가 크게 웃는다. 그 웃음은 단순히 “이겼다”가 아니다. 오래 의심하던 조준구의 속마음을 스스로 드러내게 만들었다는 시원함, 길게 끌던 싸움이 끝났다는 가벼움, 그리고 상대의 낮은 선택을 바라보는 차가움이 섞인 웃음이다. 나는 이 장면이 통쾌한 응징이라기보다 “판단을 끝낸 순간”처럼 느껴졌다. 말싸움으로 누르지 않고, 선택의 자리로 끌어내어 스스로 답하게 만든 점이 서희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쥔 승리와 마음의 평안은 다르다. 아이들을 얻고 집을 되찾아도 서희의 가슴에는 바람이 분다. 긴 세월의 결핍이 남긴 허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길상과의 사이는 가깝지만 멀고, 환국과 윤국을 향한 애틋함은 때로 불안과 집착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상처가 채워지는 동안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채운 뒤에도 모습을 바꿔 계속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홍이는 이 권에서 유난히 마음을 끈다. 월선의 죽음 뒤에 그는 흔들리고, 생모 임이네를 받아들이지 못해 거칠게 굴기도 한다. 그래도 끝내 아버지 용이를 찾아 산으로 들어가 섣달 그믐에 함께 내려온다. 홍이는 그 길에서 어른의 문턱에 선다. 용이는 예전의 호기와 기세가 사라지고 병든 몸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서성인다. 말은 줄었지만, 지나온 날들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부자의 화해가 큰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겨울바람을 함께 맞는 조용한 시간에서 시작된다고 느꼈다.

한복이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낙인 때문에 언제나 문턱 앞에서 멈춰야 했던 사람이다. 함께 노래하고 외치고 싶어도 스스로를 묶어 두어야 했다. 그러다 드디어 역할을 맡고, 길상이 한복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그때 한복이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확인한다.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보다 자리를 내어 주고 일을 맡기는 행동이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했다.

김두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처음에는 흔한 악한처럼 보였지만, 권력에 기대고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끝내 금녀를 망가뜨리는 지점까지 간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밟는 모습이 되풀이된다. 이런 흐름을 보면 한 사람의 타락을 성격 탓만으로 말하기 어렵다. 나는 분노가 필요하지만, 분노만으로는 길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구조를 알아야 분노가 정확해지고, 그래야 바꿀 힘이 생긴다.

평사리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떠난다. 한때 마을의 중심이던 사내들은 이제 탕숫국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고, 아기였던 아이들은 거칠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청년이 된다. 이 교대의 풍경은 앞서 본 봄의 풍경과 겹친다. 강물이 흐르고 둥우리가 쌓이고 번데기가 깨어나는 것처럼, 사람의 삶도 그렇게 변한다. 봄은 달콤하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 아프게 몸을 일으키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문턱에서 백정들이 쫓겨나는 장면은 이 권의 중심에 놓인 문제다. “신 앞의 평등”이라는 말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받아 주는 곳으로 향한다. 이것은 교리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맞아 주느냐 밀어내느냐의 문제다. 나는 정의가 정답을 말하는 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맞아들이는 손에서 시작된다고 느꼈다.

상현 같은 청년은 방황한다. 배운 것은 많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여성”을 둘러싼 시선도 흔들린다. 만세 이후의 허탈, 윌슨의 민족자결, 러시아의 혁명, 최재형의 죽음 같은 시대의 사건들은 인물들의 마음을 흔드는 바람이 된다. 이 소설은 사건을 장식처럼 세우지 않고, 사건이 사람의 속으로 들어와 체면, 두려움, 의기, 허무를 건드리는 모습을 따라간다. 그래서 이 권에서 감동은 크고 화려한 장면보다, 장터의 소음, 집안의 언쟁, 식탁의 한숨, 아이들이 잠든 뒤의 정적 같은 아주 구체적인 순간에서 온다고 느꼈다.

마지막에 다시 서희로 돌아온다. 조준구와의 매듭이 지어져도 서희의 길은 끝나지 않는다. 복수는 마음을 가볍게 해 주지 않고, 사랑은 마음을 완전히 붙들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서희는 더 이상 과거에만 묶여 있지 않다. 아이들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서희가 내게 남긴 표정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책임의 미소”였다. 크지 않지만 단단해서 오래 남는 표정이었다.

결국 9권은 각자 자기 뿌리를 안고 오늘의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서희는 판단을 끝내고 다음 걸음을 뗀다. 홍이는 상실을 지나 어른이 되는 길에 선다. 용이는 약해진 몸으로도 기억의 무게를 견딘다. 한복이는 일을 맡아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온다. 김두수는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가며 우리가 고쳐야 할 문제를 드러낸다. 이들 곁에서 계절과 역사, 문턱과 환대, 체면과 행동의 갈등이 한 줄로 이어진다. 나는 이 책이 큰 구호 대신 작은 결심을 남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오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시작하라고,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해 주는 이야기였다.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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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究竟)열반한들 그것이 무엇이랴. 석가여래께서 입멸하셨을 적에 많은 성문들은 어찌하여 울었더란 말이냐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며,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 것이며… 형체가 있고서야 마음을 보지 아니하겠는가.
마음 없는 형체는 물건이요. 형체 없는 마음은 실재가 아니지 아니한가.
목숨이 오고 가고, 오고 갔을 뿐인데 육도윤회라 하는가. 윤회는 무엇이냐.
내가 모르는 윤회는 없는 것이며 내 목숨 간 곳을 모른다면 그것은 내 목숨이 아니지 아니한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아아 ㅡ 어느 곳에도 실성은 없으니, 사멸전변, 내가 없도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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