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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 (라티움어 원전 완역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남우 외 옮김 / 까치 / 2016년 10월
평점 :

『세네카의 대화(라티움어 원전 완역판)』를 읽었는데, 책 속 몇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세네카는 선한 사람과 신의 관계를 덕에 기초한 우정이라고 표현했지만, 곧 그것보다는 오히려 친족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신은 선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고 더 많은 길을 걷게 하고, 더 험한 길을 오르게 한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더 단단하게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내가 불운이라고 불렀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보였다. 고난을 언제나 적으로만 여겼는데, 어쩌면 그것은 나를 키워주려는 훈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네카는 나아가 “선한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뜻은 분명했다. 나쁜 일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여 다른 성질로 바꾸어내기 때문에 나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풍이 바다의 맛을 바꾸지 못하듯, 역경도 굳센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는 운동선수의 비유를 들며, 더 강해지려면 강한 상대와 맞서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그 구절을 읽다가, 일이 꼬일 때마다 “이번만 조용히 넘어가자” 하며 피하던 내 습관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내느냐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또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 시험대에 올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운명은 가장 용감한 자를 찾아 힘을 시험하며, 그 과정에서 무키우스는 불로, 파브리키우스는 가난으로, 루틸리우스는 추방으로, 레굴루스는 고문으로, 소크라테스는 독약으로, 카토는 죽음으로 시험을 받았다. 위대한 본보기는 불운 속에서만 드러난다는 그의 말은, 시련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분노에 관하여」에서는 화가 어떻게 싹트고 자라나는지를 차근차근 짚는다. 화는 작은 자극에서 시작해 점점 커지다 결국 파괴를 불러온다. 순간의 분노는 달콤하지만, 그때 이미 패배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화를 못 참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짧은 쾌감을 놓지 못하고 내가 키워온 것이었다. 세네카는 화를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화가 커지는 과정을 늦추어 끊어내라고 한다. 목소리를 낮추고, 판단을 미루며, 장면을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 실제로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그의 말대로 해 보았다. 그러자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단계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중 하나만 멈춰도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자라나지 않게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는 읽는 내내 내 일상을 비춰주었다. 세네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낭비하기 때문에 짧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 구절을 보는 순간 습관처럼 켜는 휴대폰 화면과 ‘잠깐’이라며 빠져드는 무의미한 시간이 떠올랐다. 똑같은 하루라도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된다. 그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추상적인 결심이 아니라,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나는 퇴근 전 30분을 일부러 비워 밑줄 친 문장만 다시 읽어 보았다. 그 작은 선택 하나로 하루의 인상이 바뀌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면 하루가 달라진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후반부의 「은둔에 관하여」와 「평상심에 관하여」는 삶의 균형에 대해 말한다. 나는 물러서는 것을 늘 패배라 여겼지만, 세네카는 은둔을 삶의 리듬, 다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휴식으로 보았다. 시끄러운 바깥세상을 내려놓고 마음속 창고를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세상 속으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평정에 대해서도 그는 거창한 비법을 내놓지 않았다. 잠시 멈추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작은 습관 속에서 평정은 자란다. 그래서 평정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언제든 맞설 준비가 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책 속에서는 레굴루스와 마에케나스의 대비도 흥미로웠다. 레굴루스는 고귀한 목표를 위해 고난을 견디며 고통보다 그 이유에 집중했지만, 부와 쾌락 속에 살던 마에케나스는 오히려 작은 고통에도 크게 괴로워했다. 시련이 없는 삶이야말로 영혼을 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세네카는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자연의 절반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며, 시련이 없었다면 덕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고 강조한다. 덕은 위험을 열망하고, 고생조차 영광의 일부로 여긴다. 운명은 사랑하는 이들을 단련하며, 방치된 사람들은 결국 불행 앞에 더 유약해진다. 그래서 시련은 오히려 존엄의 증표이자 덕을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죽음에 관한 구절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죽음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부풀려 두려워한다고 했다. 잠깐 사이에 지나갈 일을 오래 두려워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행복에 관한 짧은 글에서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본성에 맞는 삶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 했다. 필요한 만큼의 재화, 절제된 욕망, 과하지 않은 칭찬, 그리고 이성에 따른 삶. 이것들은 특별한 성취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세네카의 대화』는 짧지만 밀도 있는 사색으로 이루어진 글들이라, 읽고 난 뒤에도 구절들이 오래 마음에 남아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어떤 날은 ‘분노’를 다룬 문장이, 또 어떤 날은 ‘평상심’을 이야기한 구절이 크게 다가온다. 언젠가 큰 어려움이 닥칠 때, 오늘 밑줄 그은 문장들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세심하게 밑줄을 긋고, 더 진솔하게 메모를 남겨 두려 한다. 시련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내느냐는 분명히 훈련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네카가 따랐던 스토아 철학의 핵심과도 이어진다. 외부의 운명은 내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내 마음과 태도는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가르침. 결국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기 삶을 단단히 붙드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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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늘 행복하며 마음의 고통없이 살아가는 것은 실로 자연의 절반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만, 운명이 당신에게 덕을 보여줄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제가 당신의 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당신은 올림피아 경기에 참가했습니다만, 당신 말고 다른 참가자가 없다면, 월계관을 썼어도 당신이 승리자는 아닙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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