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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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프로이트의 의자』는 심리학은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 준다.

그만큼 이해하기 쉬운 예시가 가득하고,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 해주 듯, 꾸밈 없고 편안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라는 도구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일상적인 말로 설명한다.

정신분석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만든 학문이자 치료 방법이다. 정신분석은 우리가 평소 숨기거나 잘 몰랐던 생각을 말로 꺼내 보게 하고, 그 말을 통해 마음의 구조와 문제를 살피도록 돕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해답을 주입받는 느낌보다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정신분석의 출발은 자유연상이다. 카우치(누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긴 소파)에 누워, 떠오르는 것을 가리지 않고 말한다. 중요한 말만 골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모두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흐름을 해석하여 알려 준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려면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해도 될까?” 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만, 그 망설임을 넘어 뱉은 모든 말들이 분석의 영양분이 된다. 이 지점에서 정신분석은 보통의 상담과 다르다. 단순히 이렇게 해 보라는 조언보다는, 내 말 속에 숨어 있던 마음의 신호를 드러내서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왜 이런 방식이 필요할까?

우리는 생각처럼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마음도 몸처럼 아플 수 있고, 아프면 먼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들여다봐야 치료가 시작된다. 정신분석은 그때 마음을 가까이서 확대해 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이 돋보기로 보면, 프로이트가 말한 마음의 세 층, 의식·전의식·무의식이 보인다.

특히 무의식은 큰 지하창고와 같다. 말하기 어려운 욕망, 공격성, 부끄러운 기억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평소에는 단단한 문이 그 내용을 막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술기운 같은 틈이 생기면 문이 잠시 열리며 그 내용이 불쑥 위로 올라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말로 풀어내는 정신분석의 방식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또 마음을 움직이는 세 힘인 이드·자아·초자아로 설명했다.

이드는 “지금 당장 원해!”라고 말하는 충동, 초자아는 양심과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목소리, 자아는 그 사이에서 현실을 보며 타협을 찾아 주는 중재자다. 자아가 단단할수록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선택할 힘이 생긴다. 책이 계속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자아의 근력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생각보다 감정에 가깝다. 먼저 소속감이 그렇다. 우리가 메시지를 보내고, 모임에 나가고, SNS로 안부를 묻는 이유에는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다는 마음, 그 속에서 안전함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음으로 자존심이 연료가 된다. 건강한 자존심은 나를 지키게 하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게 만든다. 반대로 자존심이 약하면 다른 사람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관계가 흔들리기 쉽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동력은 자기실현이다. 결과만 조급하게 쫓기보다,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잠재력을 펼치려는 태도가 진짜 성장을 만든다. 이때 부족함과 불만은 반드시 나쁜 감정이 아니다. 잘 사용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 된다. 다만 불만을 동력으로 삼았다면, 작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으로 끝까지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소속감·자존심·자기실현이 차례로 맞물릴 때, 우리는 감정에 끌려다니는 대신 감정을 에너지로 바꾸어 삶을 움직일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욕동은 우리를 움직이는 기본 에너지다. 그는 욕동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리비도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배우고 만들고 싶게 하는 끌림의 힘이다.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로, 경계를 세우고 부당함에 맞서 밀어붙이게 하는 밀어내는 힘, 즉 공격성을 포함한 에너지다. 여기서 공격성은 곧바로 폭력이라는 뜻이 아니다. 잘못 쓰이면 타인을 상하게 하지만, 제대로 쓰이면 “여긴 내 선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함이 되고,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이 된다.

이 두 에너지는 일상에서 늘 섞여 나타난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게 만드는 의욕은 리비도의 얼굴이고, 마감이 다가올 때 끝까지 버티며 완성하도록 밀어주는 힘은 타나토스의 건강한 사용이다. 친구가 선을 넘었을 때 그건 불편해라고 말하는 것도 공격성을 좋은 방향으로 쓴 예다.

이렇게 보면, 욕동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연료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먼저 유머가 도움이 된다.

팽팽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농담 한마디는 답답한 에너지를 말로 풀어 긴장을 낮춘다.

단, 상대를 비꼬거나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농담은 오히려 상처를 남기니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승화가 있다. 화나 초조함처럼 거친 에너지를 운동, 그림, 글쓰기, 공부 같은 건설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경계 세우기가 필요하다. 말하기의 순서를 “사실 → 느낌 → 요청”으로 잡으면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도 할 말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제 자료가 수정되지 않았더라(사실). 그래서 부담이 컸어(느낌). 오늘 저녁 7시까지 초안만이라도 공유해 줄래?(요청)”처럼 말하는 것이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마음의 자동 기능이다.

— 억압: 불편한 욕망을 무의식에 꾹 눌러 담기

— 합리화/지적화: 감정을 직접 보지 않으려고 그럴듯한 이유나 지적 활동으로 덮기

— 동일화/이상화: 누군가를 과하게 따르고 떠받들다가, 시간이 지나 실망하는 흐름

— 승화: 거친 충동을 바람직한 행동으로 바꾸기(예: 운동, 예술, 공부로 에너지 쓰기)

청소년기에 자주 보이는 행동화, 부정, 전치 같은 미성숙한 방어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어른이 될수록 유머·승화 같은 성숙한 방식으로 바꿔 가야 한다.

이것도 결국 자아의 힘과 연결된다.

이제 이 렌즈를 들고 감정들을 보자.

이 책은 불안, 공황, 공포, 우울, 분노, 좌절, 망설임/열등감, 시기/질투를 차례로 다룬다.

- 불안/공황/공포: 불안은 “위험할지도 몰라”라는 경보음이다. 피하면 잠깐 편하지만 더 커진다.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 없이 적거나 말해 보면, 불안을 키우는 무의식의 장면이 드러난다. 공황은 과도한 불안의 폭발이므로, 우선 호흡을 가다듬고, 두려운 상황에 아주 작은 단위로 가까이 가는 연습이 도움 된다. 공포도 마찬가지다. 아예 안 가기가 아니라 조금씩 가까이 가기가 해답이다. 이렇게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 자아의 근력이 붙는다.

- 우울: 우울은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억지로 금방 괜찮아져야 해라고 밀어붙이기보다,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너무 엄격한 초자아가 나를 때리고 있는지 점검한다.

과한 자기비난을 현실적인 자기이해로 바꾸면, 작은 행동(짧은 산책, 한 끼 식사, 한 줄 기록)을 시작할 힘이 생긴다.

- 분노: 분노는 내 경계가 침해됐다는 신호다. 그대로 터뜨리면 관계가 무너진다.

이 책은 말하기의 간단한 순서를 알려 준다. 사실 → 느낌 → 요청.

“그때 약속 시간이 지났어(사실). 그래서 속상하고 화가 났어(느낌). 다음엔 늦으면 미리 알려 줘(요청).”

이렇게 하면 공격성의 에너지를 관계 회복에 쓰게 된다. 유머·승화를 곁들이면 더 좋다.

- 좌절: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막막함이다. 좌절을 자아를 키우는 체력훈련으로 보면 버틸 힘이 생긴다. 목표를 잘게 나누고, 과정 중심으로 가면 결과가 늦어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핵심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다음 행동이다.

- 망설임/열등감: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는 왜곡된 기준이 키운다. 완벽 대신 현실적인 기준을 세우고, 롤모델을 좋아하되 결점까지 함께 보자. 그러면 남의 성공이 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나의 학습 계획이 된다.

- 시기/질투: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신호다. 이 에너지를 승화로 돌려 학습·연습·작은 실천으로 연결하면, 비교의 독이 동력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연상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면,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가 보이고, 내가 매일 쓰는 방어기제와 어린 시절의 애착이 지금의 감정과 행동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가 쌓이면 자아가 힘을 얻고, 과하게 엄격한 초자아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낮아지며, 충동적인 이드의 에너지는 유머와 승화로 건강하게 돌릴 수 있다. 그래서 불안·우울·분노 같은 감정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신호가 된다.

핵심은 순서다. 이해가 먼저, 변화는 그다음. 변화가 작아 보여도 오늘의 선택을 바꿀 만큼 충분하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의자』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의 삶에서 더 오래 작동하는 책이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입니다. 자아는 중재자입니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입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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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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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인생록을 쓰는 법”

메리 카의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내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와 기술을 요구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인생록 쓰기를 “어떤 면에서 자기 주먹으로 자기를 자빠뜨리는 것”이라 말하고, 특히 제대로 잘 썼을 때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그만큼 쓰는 과정은 고되고 고약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수십 년 동안 그리워했던 시간과 장소가 눈앞에 뚜렷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며, 결국 인생록을 써낸 사람은 깊은 심리적 변화를 겪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런 변화가 그저 드러내기 위한 고백으로 끝나지 않게 길을 안내한다.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 사실을 점검하며 자기 목소리를 찾게 도와 결국 글이 성찰과 품위로 이어지도록 이끈다.

메리 카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기억에 대한 경계심이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강렬한 사건일수록 감정만 또렷하게 남기 쉽다. 그래서 회고록의 첫 기술은 멋지게 쓰기가 아니라 틀리지 않으려 애쓰는 일이다. 날짜와 장소, 인물을 가능한 자료로 교차 확인하고, 불확실한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는 정직함이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집필 중인 원고를 실제 등장인물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개인 기억만으로는 진실에 닿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자격을 묻는다. 요즘 유행하는 내가 느낀 대로가 진실이라는 분위기에 기대어, 기억이 흐릿한 부분을 마음대로 채우거나 멋을 내려고 사건을 보태면 독자와의 신뢰가 무너진다. 회고록의 감동은 모든 걸 다 아는 척할 때가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며 진실에 성실히 다가갈 때 생긴다. 오히려 작가가 자기 한계를 드러내며 진실에 접근하려 애쓰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기억이 흐릿한 대목을 흐릿하게 쓴다고 해서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정직함이 독자의 신뢰를 부르고, 그 신뢰가 곧 감동이 된다. 무엇보다 글을 수십 번 고쳐서야 겨우 드러나는 깊은 진실은 지어낸 장면 위에선 결코 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사실만 적나라하게 적어라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불행을 억지로 욱여넣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회고록은 자극적인 고백을 줄줄이 잇는 글이 아니다. 지난날의 아픔이 돋보이려면 ‘채찍질과 채찍질 사이의 다른 삶’을 반드시 함께 그려야 한다. 희망의 순간을 빼면 고통만 반복되는 이야기라, 잠깐은 자극적이어도 금방 질려 다시 읽지 않게 된다. 쓰는 일 자체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벅찰 수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쓰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힌 뒤, 냄새·촉감·소리 같은 오감으로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초고를 쓰면 잠시 덮어두었다가, “내가 빠뜨린 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이 장면을 어떻게 봤을까?”를 스스로 묻으며 다시 고친다.

복수심으로 쓰려 한다면 멈추고, 치유가 목적이라면 글 대신 상담을 먼저 찾으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회고록은 누군가를 겨냥한 도구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목소리다. 여기서 목소리는 말투나 단어 고르기를 넘어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나의 약점과 허영까지 드러내는 길이다. 잘 쓴 회고록은 현실의 나와 글 속의 내가 닮아 있다.

장점만 보여 주면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진다. 다정함 속의 분노, 자신감 뒤의 불안, 밝음과 함께 있는 절망까지 함께 드러날 때 독자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저자는 명랑하게 미화하는 글은 진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불리한 모습까지 인정하는 솔직함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에 내 기억을 제대로 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인생록 쓰기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우선 장면을 떠올리고 기록한 뒤, 그 장면이 사실인지 하나씩 확인하고,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흔들릴 수 있으니 오감으로 장면을 되살리고, 날짜·사람·장소를 대조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라고 한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존중하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핵심이다. 초고는 잠시 덮어 두었다가 다시 읽으며 내가 빠뜨린 것과 과장한 것을 찾아 바로잡는다. 이렇게 반복하면 과장은 줄고, 신뢰가 생기며,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저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을 쓰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평범하지만 숨기고 싶어 피하던 장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회고록은 특별한 인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억을 의심하고, 거짓을 경계하며, 불행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로 장면을 세울 때, 누구의 삶도 이미 한 편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와 정확, 용기와 품위의 언어로 끝까지 동행한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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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 옳다고 결정한 그림은 어김없이 실제 기억을 지워버린다. 원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기억 천재들만 빼고, 가족 관계와 정치적 선동의 바탕에 깔린 집단 사고의 힘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집단 사고보다 더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있다. 눈앞의 광경을 잘못 판단하는 경향이다. 시인과 음악가 들은 놀랍게도 대화를 그대로 외워버리는 재주가 있지만, 그들조차도 말투를 오해하거나 누가 한 말인지를 잘못 짚는 실수를 한다. 언쟁 중에 "대화로 해결해봐요"라고 말한 것은 크리스가 아니라 나였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크리스의 팔을 홱 뿌리쳤다고 기억한다. 내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며 "대화로 해결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학생도 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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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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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몸이 보내는 신호가 잦아졌다. 큰 군중은 물론, 네댓 명만 모여 앉아 있어도 숨이 가빠지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억지로 붙들며 자리를 버틴 적도 많다. 이런 일이 몇 번 겹치니 비슷한 상황만 떠올라도 불안이 먼저 앞섰다. ‘이번에도 쓰러지면 어쩌지, 내 상태가 다 티 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사람 있는 곳을 피하면 잠시 안정되지만, 혼자 있을 때 덮치는 갑작스러운 불안은 더 무서웠다. 그렇게 회사에서 공황 증상을 두 차례 겪은 끝에,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그때는 이 병이 과연 나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다 키렌 슈나크의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를 읽게 되었는데, 책의 첫머리부터 불안은 고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황장애을 겪던 그때 이 문장을 먼저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실할 때 필요한 건 고칠 수 있다는 근거가 확실한 말이기에. 저자의 제안도 현실적이다. 일상에서 곧바로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와 임상 경험에 기대어 차근차근 제시한다. 낫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구성이라 믿음이 간다.

저자 키렌 슈나크는 영국의 임상심리학자다. 병원과 클리닉에서 불안 환자를 오래 다뤄 왔고, CBT·ACT·ERP 같은 근거 기반 기법을 현장에서 검증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말‘을 해주기 보다 ‘효과가 확인된 방법’을 제안한다. 불안은 적이 아니라 신호라는 관점, 그리고 그 신호를 읽고 다루는 구체적인 절차가 이 책의 힘이다. 오늘부터 한 가지씩 해보면, 불안의 크기는 분명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먼저 몸의 리듬을 바로잡게 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숫자를 거꾸로 세거나 편안한 장소를 냄새와 온도까지 떠올리라고 한다. 30분 넘게 뒤척이면 침대에서 나와 독서를 하는 등 조용한 활동을 하다가 졸리면 다시 눕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밤에 시계를 보는 습관은 불안을 키우니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식사는 완벽보다 지속을 택하게 한다. 매 끼니 과일이나 채소 한 조각을 보태고 통곡물과 단백질, 오메가3/6을 챙기게 한다. 이런 선택이 비타민과 섬유질을 늘리고 기분과 집중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은 비싼 장비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걷기나 가벼운 자전거, 유튜브 홈트, 정원 가꾸기, 춤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을 규칙적으로 하게 한다. 녹지에서 움직이면 더 빠르게 마음이 평온해지고, 좋아하는 여가는 코르티솔을 낮추고 세로토닌을 올려 사고력과 기억력을 회복시킨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불안은 고립을 부르고 고립은 불안을 키운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불안을 이해하려면 먼저 뇌가 위험을 어떻게 알아채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봐야 한다. 우리 뇌에는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상과 그 정보가 위험한지 판단하는 편도체가 있다. 눈과 귀, 피부에서 올라온 신호가 시상에 모이면, 편도체가 그중 일부에 ‘위험’ 딱지를 붙인다. 꼭 실제 위협이 없어도 그럴 수 있다. 무서운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편도체가 먼저 반응하고, 그러면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근육이 긴장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투쟁–도피–경직 반응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공포 영화를 볼 때 손에 땀이 차는 이유도 이 원리와 같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생존 시스템이다. 다만 문제는 경보가 켜진 뒤에 금방 꺼지지 않는 경우다. 불안이 오래 쌓이면, 실제로는 안전한데도 경보가 길게 울린다. 저자는 이 상태를 물이 새는 수도꼭지에 비유한다. 콸콸 쏟아지진 않지만, 하루 종일 한 방울씩 새면 결국 바닥이 젖듯 우리 에너지도 꾸준히 빠져나간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먼저 몸의 스위치를 내려 이완 반응을 켜는 일이다. 길게 내쉬는 호흡을 몇 번 반복하고, 굳은 어깨와 턱을 느슨하게 풀고,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는 감각에 잠깐 집중하면 몸이 “지금은 안전하다”라는 신호를 다시 받는다. 몸이 가라앉아야 머리도 말을 듣는다.

다음은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로 바꾸는 일이다. 종이나 휴대폰 메모에 네 줄만 적으면 된다.

언제·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어떤 감각과 생각이 올라왔고, 그때 내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는지를 짧게 쓰면 된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쓴다. “월요일 3시, 회의실에서 발표 순서 기다림 → 심장이 두근두근, ‘쓰러지면 어쩌지’ 생각 함 → 물 한 컵 들고 자리로 돌아와 숨을 참음” 이런식의 기록을 몇 번 반복하면 내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정 장소(회의실, 엘리베이터, 병원)나 특정 단어(심장마비, 암, 쓰러짐)에 유독 민감한지도 알 수 있게 된다. 혹은 ‘심장 박동 ↑ → 큰일 났다로 해석 → 피하기’로 이어지는 고정 루트가 있는지 눈에 들어오게 된다.

패턴이 보이면 어디서 끊어야 할지도 함께 보인다. 먼저 받아들이는 의미를 바꾼다. “심장이 뛴다=큰일”이 아니라 “심장이 뛴다=몸이 놀란 것”이라고 속으로 짧게 말한다. 이어서 의자를 살짝 밀고 일어나 어깨를 한 번 돌리고, 4초 숨 들이마시고 6초 내쉬는 호흡을 몇 번 반복한다. 손에 잡힌 컵의 차가움,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단단함 같은 지금의 느낌을 짧은 단어로 세어 본다. 필요하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몸을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이 방법을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것이다. 한 번에 큰 변화가 없어도 괜찮다. 매번 1%씩만 누그러뜨리면, 불안이 치솟는 속도도 머무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사고의 버그도 하나씩 이름 붙여 다룬다. <파국화, 흑백사고, 과잉 일반화, 예언자적 사고, 독심술, 정신적 여과, 낙인 찍기, 개인화, 과장, 그리고 불안을 붙들어야 안전하다는 징크스형 믿음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때는 말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직접 해보면서 확인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고 안전한 상황에서 평소라면 피했을 행동을 아주 짧게 해 보게 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한 층만 타 본다, 발표 전에 바로 도망치지 말고 1분만 자리에 남아 본다 같은 식이다. 이렇게 시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확인하면서, 불안이 스스로 내려가는 경험을 쌓게 한다. 한 번 어긋나도 괜찮다. 그 실패마저도 다음에 어떻게 바꿀지 알려 주는 힌트가 된다.

주의도 연습하면 강해지는 근육처럼 다룬다. 특정 자극에만 꽂히거나, 나에게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부정적인 신호만 골라 보는 습관을 줄이기 위해서다. 방법은 단순하다. 흐트러진 걸 눈치채면, 지금 하는 일로 조용히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하루에 몇 번, 몇 분만 반복해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구구단을 천천히 외워 본다. 음식을 먹을 때 맛·냄새·온도·질감을 하나씩 느껴 본다. 샤워할 때 물줄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을 잠깐 따라가 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창밖 풍경과 소리를 한두 가지씩 골라서 살핀다. 이런 간단한 활동이 지금 이 자리로 마음을 다시 데려오도록 만든다.

허밍이나 콧노래도 좋다. 짧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호흡에 리듬이 생겨 과호흡이 가라앉고, 몸과 마음이 함께 풀린다. 어렵게 할 필요 없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위의 행동을 하나만 골라서 해 본다. 이렇게 작은 실험을 반복하면, 불안은 점점 짧게 지나간다.

저자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Jalaluddin Rumi)의 시 「여인숙」을 소개해, 떠오르는 생각을 손님처럼 맞이하라고 말한다. 억지로 밀어내려 할수록 생각은 더 크게 두드린다. 대신 ‘왔구나‘하고 받아들이면 그 안에서 배울 점이 보인다. 이것이 수용전념치료(불안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심리치료 방법, ACT)에서 말하는 수용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이다.

책의 끝부분에는 불안장애 유형 정리와 취미 100선이 실려 있어서, 지금 당장 무엇부터 시작할지 망설여 질 때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실행 목록이 되어 줄 수 있다.

결국 이 책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안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읽고 다룰 수 있는 신호로 다시 보게 만드는 실전 안내서다. 임상심리학자 키렌 슈나크가 CBT(인지행동치료), ACT(수용전념치료), ERP(노출 및 반응방지법) 등 근거 기반 기법을 일상 언어로 풀어,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제시한다. 수면·식단·운동·여가·관계 같은 기본 생활부터, 호흡·주의 훈련·기록법·점진적 노출까지 한 호흡으로 연결해 준다.


'오픈도어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 책의 프로그램은 불안 극복에 도움이 되는 10가지 필수 요소로 구성된 일련의 치료 과정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전략은 범불안장애, 질병불안장애,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등 불안장애의 유형과 관계없이 불안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을 통해 당신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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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의 공식 - 주식, 부동산, 코인 너머의 전략
코디 산체스 지음, 이민희 옮김 / 윌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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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산체스의 『마지막 부의 공식』이 말하는 부의 전환은 소유로의 전환이다. 월급은 시간을 판 대가일 뿐이고, 시간이란 한계가 있는 자원이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경제적 자유는 ‘지분(ownership)’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좋은 직장=안정’이라는 믿음,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평생 일해야 한다”는 버핏의 말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소모적인 노동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하는 소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거리의 사업(Main Street Business)이다. 고도기술이나 화려한 IP 없이도 동네 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사업들—세차장, 빨래방, 자판기, 공유창고, 이사업/포장·배송 대행, 이동식 화장실 대여, 조경, 전기/배관 시공, 카펫 청소, 줄눈/타일, 반려동물 미용, 냉난방 설치업 등. 표지에 오를 일은 드물지만, 매달 돈이 흐르고 고객 충성도가 높으며 운영이 단순한, 이른바 “지루한 사업”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이 지루함을 약점이 아니라 자산으로 본다. 소음 대신 현금흐름, 주목 대신 지속 가능성. 삶의 질을 방해하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장해 주는 구조—그게 좋은 사업이라는 정의가 분명하다.

지속 가능성의 근거로 저자가 소환하는 개념이 ‘린디 효과’다. 오래 버틴 것은 앞으로도 오래 버틸 가능성이 크다는 통찰이다. 유행을 탔다가 고꾸라지는 산업보다, 십 년 넘게 구역을 지켜 온 배관/전기/청소 같은 생활 인프라 업종이 위기에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저자가 인수·투자해 온 곳들 대부분은 이런 평범하지만 오래된 사업이며, 경제위기에도 견고하게 살아남아 왔다. 창업 생태계가 빠른 성장에만 중독돼 실패를 무용담처럼 소비하는 사이,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조용히 자본이 쌓인다. 저자의 요지는 단순하다. 안정적 현금흐름은 화려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우리 동네의 소규모 사업에서 나온다.

이 철학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4단계 공식 R.I.C.H.로 구조화된다.

R(Research): 자신에게 맞는 업을 찾는다. 강점·선호·감당 가능한 리스크·수익 목표를 먼저 정의하고, 매도 의사가 있는 사업주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대화하며, 무엇으로 가치를 평가할지 ‘체크리스트’로 배운다.

I(Invest): 적은 자본과 창의적 자금조달로 인수한다. 비공식 제안–실사–협상–계약–체결까지의 전 과정을 절차로 보여 주며, 저자가 수년간 절약해 온 협상 노하우를 공개한다.

C(Command): 사서 고생하지 않기 위한 운영·팀 빌딩·인수 후 90일 실행 계획·성과문화·단순/효과적 마케팅 자동화를 제시한다.

H(Harness): 정신 건강을 지키며 사업을 ‘시스템’으로 굴리는 단계. 성과 관리 도구, 신규 수익원, 다음 인수/매각 준비까지를 다룬다.

이 프레임은 ‘무엇이 좋다’보다 ‘무엇을 피하라’에서 더 선명해진다. 저자는 무조건 피해야 할 7가지 사업을 구체적 이유와 함께 꼽는다. 외식업(높은 폐업률·고강도 운영), 호텔(부동산이 사업인 척하는 구조·24시간 응대·감가상각), 소매점(재고 리스크·높은 고정비·유통환경 불리), 컨설팅(핵심인력 의존), 개인브랜드 사업(당사자 의존), 아마존 FBA/드랍십(플랫폼 리스크·과열 경쟁·가격 통제권 부재), 드라이클리닝(규제·유해물질·숙련 인력 문제). 이 리스트의 핵심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현금이 안정적으로 남는가, 리스크 대비 보상이 구조적으로 확실한가. 결국 “내 돈이 더 많은 돈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는가?”로 귀결된다.

이 책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나온 과정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다. 저자는 첫 거래로 빨래방을 인수했던 경험을 숨기지 않는다. 낡은 천장 타일과 곰팡내, 형광등 소음 앞에서 엄습했던 불안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자책까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첫해엔 회사를 그만둘 만큼의 수익이 아니었지만, 그 지루한 빨래방이 10년 안에 20여 개 사업으로 확장되고, 더 큰 투자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 준다. 직원·고객·외주·공급망·행정·마케팅·영업을 통으로 감당해야 했고, 거짓말·조롱·비방·소송 리스크도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얘기한다. 쉽게 포기할 것 같다면 책을 덮어라. 이 길은 해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누리는 판타지가 아니라, 의미와 성취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일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개인의 자유를 넘어 사회적 과제로 시야를 넓힌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이어지는 승계 공백(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돈이 되는 사업들이 후계자 부족으로 문을 닫는 현실)을 숫자로 보여 준다. 수익성 좋은 수십만 개의 사업이 소멸하면서 고용과 지역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문제를 알려준다. 저자는 이것을 개인에게 인생의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지역사회에게는 지켜야 할 기반으로 제시한다. 즉, 이 책의 행동 촉구는 단지 ‘당신도 부자가 되라’가 아니라, 동네 경제를 되살리는 주인이 되라는 제안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고를까? 책은 세 가지 필터로 ‘나에게 맞는 사업’을 찾는 연습을 시킨다.

1. 강점 시트(열정·기술·네트워크): 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고(열정),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하며(기술), 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연결망(네트워크)이 있는가? 세 원의 교집합에 떠오르는 업종이 ‘첫 가설’이 된다.

2. 사업 비전 보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지역, 개입 강도, 매출/마진 기대, 극복해야 할 리스크, 단일/다각화 여부 등을 문장으로 그린다. “느낌 좋은 분 환영”식의 모호함은 피한다.

3. 거래 상자(Deal Box): 매도가·연 매출/이익 범위·마진·규모·지역·운영 방식·희망 수익배수·계약금 등 정량 기준을 표로 고정한다. 이 장치가 감정 과몰입을 막고 ‘체크리스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실행 단계에서는 100–50–10–1 법칙을 권한다. 100개를 훑고, 50개를 재검토하고, 10개를 실사하고, 1개를 산다. 비교 없이 좋은/나쁨을 말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주와의 첫 통화·미팅에서 무엇을 묻고, 어떤 톤으로 신뢰를 쌓아야 하는지 대화 예시를 보여 준다. 이 과정 전반을 관통하는 안전장치는 워런 버핏의 두개의 규칙 “돈을 버는 첫 번째 규칙은 돈을 잃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첫 번째 규칙을 잊지 않는 것이다.“를 사업 인수 맥락으로 번역한 레드 플래그 체크리스트다. 적자·과도한 부채·마진 박함·설비 과잉·비협조적 매도자·현금 쿠션 부족·직접 운영 없인 성립되지 않는 모델(=새 직장)·불투명한 장부·성급한 매도 압박·출구전략 부재 등. 감정이 올라갈수록 계약 전 제3자 검토로 자신을 보호하라는 충고가 따라붙는다.

저자가 선호하는 카테고리 역시 지루하지만 강한 속성을 공유한다. 디지털 비즈니스(재고·고정비가 낮고 규모의 경제가 크다), 소비자 서비스(정기고객 기반이 형성되면 견고하다.), 전문가 서비스(자격/전문성이 진입장벽), 부동산 연계 사업(거점 자산 위에 현금흐름을 얹고, 주변 보완업으로 확장). 여기에서도 핵심은 스타트업의 서사를 좇지 말고, 증명된 수익 구조+간단한 운영을 사라는 것이다. 첫 인수는 특히 그렇다.

결국 『마지막 부의 공식』은 부는 500미터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검토–실사–협상–운영–자동화–확장으로 이어지는 실무 동선을 통해 알려준다. 한국 독자 입장에서 제도·세무·노무 환경은 미국과 다르지만, 판단의 언어는 그대로 쓸 수 있다. 마진을 보고, 반복 매출을 보고, 고객 이탈과 운영 난도를 보고, 무엇보다 나의 강점과 삶의 비전과의 적합도를 본다. 이제 눈을 다른 데로 돌리자. 거대한 광고전이 벌어지는 D2C 대신, 입소문만으로 단골이 쌓이는 동네 B2B/B2C를 보자. 반짝 트렌드 그래프가 아니라 10년을 버틴 간판을 보자. 화려한 아이템보다 중요한 건,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돈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독자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직장도 어렵고, 창업도 어렵다. 어느 어려움을 택할 것인가. 저자는 “나는 언제나 자유로 가는 길을 택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고, 제대로만 하면 충분히 안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사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현금흐름이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내 지분으로 소유하는 순간, 월급의 덫은 느슨해진다. 이 책을 덮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라. 당신이 매일 스쳐 지나가는 그 평범한 가게가, 사실은 누군가에게 자유를 만들어 주는 ‘돈이 계속 도는 작은 사업’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월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업의 성패는 업종, 지식, 재능이 각각 10퍼센트를 결정하고, 의지가 70퍼센트를 결정한다.
끈기가 전부를 가능케한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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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 - 명화 한 점, 글 한 편, 그리고 나를 위한 필사의 시간
박은선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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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는 “한 점의 그림 + 한 편의 문장”을 1:1로 짝지어,

보는 즐거움과 쓰는 몰입을 동시에 건네는 예쁜 책이다.

총 100점의 고전 명화에 100편의 명문장을 맞물리게 구성했고(기쁨·관계·사회·자연·창조·지혜·고독·시간·꿈·나의 10가지 테마), 하루 한 장 그림을 보고 문장을 베껴 쓰는 루틴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고전 문학부터 동서양 명작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깊이 있는 인용 덕분에 특별하다.

『빨강 머리 앤』 문장과 알폰스 무하의 〈봄〉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제임스 앙소르의 자화상을 보며 자의식을 성찰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이카로스 신화로 욕망과 절제를 고민하고,

박지원의 글과 브뢰헬의 풍속화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책은 소설·고전 산문·철학·신화에서 고른 좋은 문장들을 명화와 짝지어 보여 준다.

흐름은 단순하다. 그림을 보고 → 문장을 읽고 → 내 손으로 따라 쓴다.

페이지마다 짧고 명료한 그림 설명이 곁들여져 전문 지식 없이도 펜을 들기 쉽고,

100개의 문장을 하루에 1개씩 필사할 때, 100일 코스로 활용하기 좋게 편성되어 있다.

읽고–보고–쓰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디자인과 사용성도 강점이다.

전면에 배치한 명화 컷, 여백을 살린 필사 페이지,

안정적인 제본 덕분에 쓰기 편하고, 책상 위에 두고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정갈하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미덕은 미술 감상·문학 읽기·손글씨 필사를 한 권에서 만나게 한다는 데 있다.

소설의 한 문장은 그림과 나란히 놓이면 다른 빛을 얻고,

철학·고전·신화의 문장도 따라 쓰는 동안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말로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길지 않은 문장으로 천천히 필사하며 곱씹을 시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명화를 함께 감상하는 기쁨까지 더한,

‘눈과 손과 마음’을 동시에 쓰게 하는 단단한 필사 책이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요즘 마음이 자꾸 지치고 흔들린다

✔ 명화를 좋아하지만 어렵지 않게 감상하고 싶다

✔ 글쓰기, 필사, 기록을 통해 위로받고 싶다

✔ 잠들기 전, 아침 루틴으로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

✔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책을 찾는 중이다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아이리스 필사단 3기>에서 함께 읽고 필사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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