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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평점 :

“오직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인생록을 쓰는 법”
메리 카의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내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와 기술을 요구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인생록 쓰기를 “어떤 면에서 자기 주먹으로 자기를 자빠뜨리는 것”이라 말하고, 특히 제대로 잘 썼을 때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그만큼 쓰는 과정은 고되고 고약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수십 년 동안 그리워했던 시간과 장소가 눈앞에 뚜렷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며, 결국 인생록을 써낸 사람은 깊은 심리적 변화를 겪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런 변화가 그저 드러내기 위한 고백으로 끝나지 않게 길을 안내한다.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 사실을 점검하며 자기 목소리를 찾게 도와 결국 글이 성찰과 품위로 이어지도록 이끈다.
메리 카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기억에 대한 경계심이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강렬한 사건일수록 감정만 또렷하게 남기 쉽다. 그래서 회고록의 첫 기술은 멋지게 쓰기가 아니라 틀리지 않으려 애쓰는 일이다. 날짜와 장소, 인물을 가능한 자료로 교차 확인하고, 불확실한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는 정직함이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집필 중인 원고를 실제 등장인물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개인 기억만으로는 진실에 닿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자격을 묻는다. 요즘 유행하는 내가 느낀 대로가 진실이라는 분위기에 기대어, 기억이 흐릿한 부분을 마음대로 채우거나 멋을 내려고 사건을 보태면 독자와의 신뢰가 무너진다. 회고록의 감동은 모든 걸 다 아는 척할 때가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며 진실에 성실히 다가갈 때 생긴다. 오히려 작가가 자기 한계를 드러내며 진실에 접근하려 애쓰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기억이 흐릿한 대목을 흐릿하게 쓴다고 해서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정직함이 독자의 신뢰를 부르고, 그 신뢰가 곧 감동이 된다. 무엇보다 글을 수십 번 고쳐서야 겨우 드러나는 깊은 진실은 지어낸 장면 위에선 결코 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사실만 적나라하게 적어라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불행을 억지로 욱여넣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회고록은 자극적인 고백을 줄줄이 잇는 글이 아니다. 지난날의 아픔이 돋보이려면 ‘채찍질과 채찍질 사이의 다른 삶’을 반드시 함께 그려야 한다. 희망의 순간을 빼면 고통만 반복되는 이야기라, 잠깐은 자극적이어도 금방 질려 다시 읽지 않게 된다. 쓰는 일 자체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벅찰 수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쓰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힌 뒤, 냄새·촉감·소리 같은 오감으로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초고를 쓰면 잠시 덮어두었다가, “내가 빠뜨린 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이 장면을 어떻게 봤을까?”를 스스로 묻으며 다시 고친다.
복수심으로 쓰려 한다면 멈추고, 치유가 목적이라면 글 대신 상담을 먼저 찾으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회고록은 누군가를 겨냥한 도구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목소리다. 여기서 목소리는 말투나 단어 고르기를 넘어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나의 약점과 허영까지 드러내는 길이다. 잘 쓴 회고록은 현실의 나와 글 속의 내가 닮아 있다.
장점만 보여 주면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진다. 다정함 속의 분노, 자신감 뒤의 불안, 밝음과 함께 있는 절망까지 함께 드러날 때 독자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저자는 명랑하게 미화하는 글은 진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불리한 모습까지 인정하는 솔직함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에 내 기억을 제대로 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인생록 쓰기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우선 장면을 떠올리고 기록한 뒤, 그 장면이 사실인지 하나씩 확인하고,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흔들릴 수 있으니 오감으로 장면을 되살리고, 날짜·사람·장소를 대조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라고 한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존중하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핵심이다. 초고는 잠시 덮어 두었다가 다시 읽으며 내가 빠뜨린 것과 과장한 것을 찾아 바로잡는다. 이렇게 반복하면 과장은 줄고, 신뢰가 생기며,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저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을 쓰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평범하지만 숨기고 싶어 피하던 장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회고록은 특별한 인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억을 의심하고, 거짓을 경계하며, 불행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로 장면을 세울 때, 누구의 삶도 이미 한 편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와 정확, 용기와 품위의 언어로 끝까지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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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집단이 옳다고 결정한 그림은 어김없이 실제 기억을 지워버린다. 원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기억 천재들만 빼고, 가족 관계와 정치적 선동의 바탕에 깔린 집단 사고의 힘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집단 사고보다 더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있다. 눈앞의 광경을 잘못 판단하는 경향이다. 시인과 음악가 들은 놀랍게도 대화를 그대로 외워버리는 재주가 있지만, 그들조차도 말투를 오해하거나 누가 한 말인지를 잘못 짚는 실수를 한다. 언쟁 중에 "대화로 해결해봐요"라고 말한 것은 크리스가 아니라 나였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크리스의 팔을 홱 뿌리쳤다고 기억한다. 내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며 "대화로 해결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학생도 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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