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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토지』 특별판 11권은 한마디로,
“죽음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이들의 비극만이 아니라, 그 죽음을 기억하고, 잊으려 하고,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깊게 다가오는 권이다.
이 권의 초반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상현과 명희의 재회다.
예전에 비 오는 밤, 명희가 상현의 하숙을 찾아갔다가 쫓겨나던 일을 두 사람이 다시 꺼내면서 장면이 시작된다.
명희는 예전에 빗길에 상현의 하숙을 찾아갔다가, 그가 자신을 빗속으로 내쫓았던 일을 떠올리며 그때의 상현을 아무 설명도 없이 문밖으로 밀어낸 비겁한 사내였다고 말한다. 상현은 그 말을 듣자, 그날 밤 자신이 한 행동과 지금 둘 다 이미 다른 가정을 꾸린 처지를 함께 떠올리며,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옛 감정까지 다시 건드리게 되는 건 아닐까, 또 자신의 비겁함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져 “우리가 이런 얘기 해도 되겠습니까?”라며 불안해한다. 그는 명희가 그 일을 누구보다 부끄럽게 여겼을 거라고 짐작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정면으로 그날을 꺼내드는 명희의 태도가 더욱 당혹스럽다.
그런데 명희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자신도, 상현도 이제 장래가 이미 굳어 버렸고, 앞으로 큰 변동도 없을 거라며,
그래서 오히려 두려워할 게 없다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내 인생은 이미 틀이 잡혀 버렸으니, 그 안에서만 솔직해질 수 있다”는 씁쓸한 체념과,
그 체념 위에 세운 이상한 당당함이 함께 있다.
상현은 그런 명희를 보며, 자신은 세월 속에서 찌들어 버린 사람이고,
명희는 그 사이 눈에 띄게 자란 나무처럼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한때는 자신이 더 앞서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뒤처진 사람, 초라한 사람으로 자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감정은 환국과 마주 앉는 장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상현은 길상을 꼭 빼닮은 환국을 바라보며, 예전 양반·하인의 위계가 완전히 뒤집힌 세월을 실감한다.
한때 하인이었던 사내의 아들이 이제는 어느 양반 자제보다도 당당하고 총명한 눈빛을 하고
아비를 절대적으로 믿고 숭배하는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느끼며 상현은, 길상과 명희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는 동시에,
환국이 아버지를 보지 못하는 형편과, 하동에 남겨진 자기 아들들 형편이 미묘하게 겹치는 것을 느낀다.
그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세월과 인생 전체에 대한 깊은 패배감에 가까웠다.
명희와 상현의 관계는 이별주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번 더 선을 넘는다.
임명빈은 둘을 앉혀놓고,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처지라면 이별주 한 잔쯤은 부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술을 권한다. 그는 누이와 상현 사이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더라도 서로 사랑했었다는 기억만은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 문학청년 같은 감상에 빠져 있다.
그래서 상현이 명희에게 술을 건네며 “울지 마십시오. 견디지도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주 잠시나마 애틋하게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상현과 명희, 그리고 임명빈까지 모두 간음자이거나 간음을 방조한 죄인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관계는 이미 각자의 자리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현실의 경계 밖에서만 살짝 허락된 감정에 취해 보는 것일 뿐이다.
『토지』는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보여 주면서도, 그 감정이 어떻게 현실과 부딪히는지를 끝까지 함께 보여준다.
이 권에서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복동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혼자 사는 과부 복동네는 소문과 말 한마디에 휘말려, 마을에서 미묘한 시선과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봉기 노인이 자기 딸을 감싸고 오래 묵은 앙금을 풀겠다고 입을 잘못 놀린 것이,
복동네를 향한 모욕과 의심의 말로 바뀌어 퍼져 나간다.
늙은 과부가 요망하다는 식의 구체적인 증거도, 뚜렷한 죄도 없는 말들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며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다.
야무네가 과부 설움보다 더한 게 없다고 눈물을 훔치며 말하는 대목은,
복동네의 죽음이 단지 한 사람의 자살이 아니라 이 시대에 혼자 남은 여자가 홀로 견뎌야 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걸 절실하게 보여준다. 머리 한 번 손질해도, 옷 한 벌 갈아입어도, 남자와 마주쳐도 모두 눈치를 봐야 하고, 조금만 티가 나면 “남자를 밝힌다”, “신들렸다” 같은 말이 쉽게 붙는 삶이다.
그 지독한 감시와 수군거림 속에서 결국 복동네는 양잿물을 마시고 죽음을 선택한다.
뒤늦게서야 사람들은 말이 사람을 죽였다고 깨닫는다.
석이는 봉기를 찾아가, 복동네의 죽음이 그의 혀끝에서 비롯되었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복동네 어머니의 죽음과 두리누님에 대한 소문을 함께 꺼내며,
두리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봉기가 끝까지 버티자 석이는 강가까지 데리고 가 등을 내리치며 짐승만도 못한 늙은 것이라며 쏟아낸다.
이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섬뜩하다.
이미 한 사람은 죽었고, 그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복동네의 죽음은 그래서 더 잔인하다.
죽음으로도 자기 편을 얻지 못하고, 죽은 뒤에야 겨우 몇 마디 반성 섞인 말이 오갈 뿐이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계속 겹쳐진다.
용이는 문득,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배신자,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윤보를 비롯해, 부모와 누이, 강청댁, 월선, 임이네, 최치수, 윤씨부인, 별당아씨, 수많은 노비와 마을 사람들,
이름을 다 세기도 힘든 이들 얼굴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의 눈앞에서 죽음은 마치 가을 들판에 베어 누인 볏단처럼 여기저기 무더기로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떠올릴 때, 용이가 느끼는 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왜 나만 살아남았을까” 하는 고독과 죄책감이다.
이 장면은 11권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다.
죽음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 죽음들 사이에서 홀로 버티고 서 있는 존재라는 감각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관수, 석이, 용이가 술자리를 함께하며 시대와 계급, 형평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관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난한 집 자식이라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그 말 속에는 아직 남아 있는 오래된 농민식 도덕과 양심이 있다.
석이는 옛날 종이었다가 지금 잘 산다고, 과거를 잊고 주인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비꼬며,
가난을 벗어나도 품격을 잃으면 결국 천해지는 것뿐이라고 냉소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묻는다.
예전처럼 서로 도우며 살던 인심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사람들은 장사꾼처럼 계산만 남은 것은 아닌지.
예전 촌락의 상부상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관수는 또 형평사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지 백정과 농민의 싸움, 백정 신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내부의 계급과 차별, 그리고 일제 강점기 속에서 조직된 힘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운동이다. 형평사 조직이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일본과의 정면 충돌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엔 조선인끼리의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겉으론 차분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백정 집안과 얽힌 자기 처지, 차별을 향한 분노와 자부심이 섞여 있다.
이 술자리에서 석이는 형평운동, 계급 문제와 함께 기화를 떠올린다.
옥색 치마와 분홍 저고리의 기화는 석이에게 단순한 동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랑, 말로 꺼내는 순간 모든 걸 잃게 될지도 모를 청춘 그 자체였다. 그는 기화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11권의 인물들은 이렇게 사적인 사랑과 시대적 고민이 한 사람 안에서 충돌하고 겹쳐진다.
이야기의 다른 흐름에서는 계명회 사건이 벌어진다. 서의돈, 성삼, 선우일·수신, 유인성·유인실 남매, 일본인 오가타, 그리고 길상까지 줄줄이 검거된다. 계명회는 사회과학연구를 내세운 비밀결사에 가까운 모임으로, 노동공제회나 청년회, 공산청년회 같은 여러 좌경 조직이 생겨나던 흐름 속에서 나온 집단이다. 황태수는 그들의 사상에 완전히 동의해서가 아니라, 반일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영비를 대주었다.
길상에게 계명회는 국내로 돌아오기 위한 디딤돌 같은 존재였고, 그 조직의 선은 형평운동, 부산의 관수, 그리고 다시 평사리로까지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김환의 자살 이후 느슨해진 운동의 흐름이 다른 경로로 이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임명빈의 마음은 점점 짓눌린다. 서참봉댁에서 나오는 길에 그는 보이지 않는 힘이 머리를 땅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자기 땅, 자기 나라에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눈치만 봐야 하는 처지, 은행에 다니는 영돈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형무소로 뛰어가는 초라한 모습이 그 절망을 더 키운다. 헐벗고 굶주리는 것보다, 언제 어디서 찍힐지 몰라 마음을 늘 조이고 살아야 하는 이 정신적 압박이 더 무서운 병 같다는 그의 생각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감옥에 갇혀 있거나, 목적을 향해 뛰는 사람들의 편이 더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느낀다. 가만히 썩어가는 고인 물 같은 삶에서 미쳐 가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다가 부딪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쓸쓸한 자각이다.
한편 홍이는 일본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리며 일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드러낸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은 수모, 왜헌병에게 당한 고문과 모욕, 일본 여자들의 정욕과 기모노 아래 맨살의 풍습까지 모든 것이 역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숙집 여자들이 밤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경험을 하면서도, 그는 겉으로 화를 내지 못하고 그저 웃는 시늉만 해야 했다.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살아남으려면 바보 시늉, 미친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며, 감정에 휩쓸려 힘을 허비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정리한다. 여기서 보이는 건,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몸을 낮추고 비켜 서면서도, 속으로는 끝까지 잊지 않고 있는 저항의 감각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겹쳐지며, 11권은 분명 “죽음”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단순히 누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나열하는 책은 아니다. 환이, 복동네, 기화, 이미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결국 그들이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사랑과 모멸 속에서 버티다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그리고 그 죽음들 사이에 남겨진 사람들—상현, 명희, 석이, 관수, 용이, 임명빈, 홍이, 서희—의 마음이 11권을 진짜로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 하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먹먹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서로를 붙잡으려 했던 손길, 말로라도 누명을 벗겨주려 했던 마음, 가난한 아이를 차별하지 말라는 당부, 그래도 어떻게든 조직해 보려는 몸부림 같은 작은 움직임들이 희미하게 남는다.
이 책은 죽음의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 와중에도 완전히 꺼지지 않는 인간다움의 불씨를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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