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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역사 - 과거의 세계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조민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1월
평점 :

폭우·산불·폭염 같은 이상 기후 뉴스가 매년 반복되고, 전쟁과 난민, 부의 양극화, 혐오와 가짜뉴스, 인공지능 규제 논쟁까지 이어지는 세상이다.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계, 앞으로 50년·100년 뒤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큰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실제로 쓰는 시간의 범위는 너무 짧다.
선거는 4~5년, 기업은 분기 실적, 우리 일상은 오늘·이번 달·올해 계획 정도에 머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즉 미래 세대는 말로만 언급될 뿐, 실제 정책이나 결정의 기준 안에 거의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로먼 크르즈나릭의 『내일을 위한 역사』는 지금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이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역사를 통해 지금의 위기를 다른 눈으로 보고, 내일을 위한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넓다. 노예제 폐지 운동, 중세 이슬람 왕국의 공존 실험, 에도 시대 일본의 자원 순환, 시민들이 만들어 낸 정치 제도, 소셜미디어와 여론의 흐름까지, 지난 1,000년 동안의 다양한 사례를 오늘의 문제들과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워, 폭주하는 현재의 속도를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당장 눈앞의 일만 중요하게 여기고,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정치인은 오늘 헤드라인과 여론조사에 매달리고,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시선을 지금 이 순간에만 가둔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탄소 포집·합성생물학·AI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역사는 시험 과목이나 교양 정도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역사 다큐·팟캐스트·전기를 즐겨 보고, 여행 가면 유적지를 찾고, 조상 찾기 서비스까지 이용한다.
저자는 묻는다. “그 관심과 에너지를, 앞으로 수십 년·수백 년을 준비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 끌어오는 개념이 ‘응용역사’다. 투키디데스, 이븐 할둔, 홉스가 강조해 온 것처럼,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을 넓히는 공부라는 주장이다. 역사는 과거의 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심각해졌는지 알려주고,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여러 사회의 방식들(공유지, 협동조합, 직접 민주주의 등)을 다시 살펴보게 해준다. 오늘의 불평등과 권력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드러내며,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힌트를 준다. 괴테가 “3,000년의 세월을 활용할 줄 모르면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 뿐”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에 가깝다.
이 응용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케네디와 쿠바 미사일 위기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핵전쟁 직전이던 1962년, 케네디는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으며 1차 세계대전이 조금씩 잘못된 판단이 쌓여 폭발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그래서 강경파의 압박 속에서도 즉각적인 군사 공격 대신 외교적 해법을 선택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내리는 결정의 결과를 더 멀리 보게 만드는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영국 노예제 유지 로비 조직 ‘웨스트 인디아 인터레스트’와 오늘날 화석연료 기업 셸의 논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갑자기 없애면 경제가 무너지고 모두가 피해를 본다. 교육이 부족한 노예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수십 년에 걸친 점진적 변화만을 주장한다. 200년 뒤 셸 CEO는 화석연료에서 언젠가는 벗어나겠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생산을 빠르게 줄이면 회사가 흔들리고 에너지 수요도 너무 많다며 2050년까지의 느린 전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두 사례를 겹쳐 보며, 기득권이 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쓰는 논리가 시대를 넘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변화를 실제로 밀어붙인 힘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점이다. 저자는 자메이카 노예 봉기와 영국 농촌의 ‘캡틴 스윙’ 반란을 통해, 온건한 개혁 세력과 급진적 저항 세력이 동시에 존재할 때 정치의 흐름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짚는다. 점진주의만으로는 기후위기처럼 시간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폭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이 긴장 속에서 이른바 급진적 측면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중세 이슬람 왕국 알안달루스를 다루며, 무슬림·유대인·기독교인이 한 도시에서 함께 살며 지식과 예술을 주고받던 모습을 보여 준다. 알안달루스가 완벽한 이상향은 아니었지만, 법과 관습, 도시 설계, 언어와 교육 정책 속에 함께 살기 위한 장치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처럼 된 오늘의 현실을 떠올리면, 서로 다른 집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소비주의를 다룬다. 산업화 이전 일본, 특히 에도 시대의 생활 방식을 ‘에도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분석하면서, 제한된 자원을 반복해서 써야 했던 사회의 수리·재사용·대물림 문화를 보여 준다. 끝없이 새것을 사들이고 버리는 지금의 소비 문화와 대비시키며, 단순히 검소하게 살자가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를 재생과 순환 중심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의 중/후반부에서는 물·공유지·민주주의·정보 독점·AI·문명 붕괴 같은 주제를 이어 간다. 발렌시아의 전통적인 물 관리 제도와 여러 지역의 공유지 운영 방식을 통해 공동의 자원을 경쟁과 약탈이 아니라 협력과 규칙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인도 지방자치와 시민의회, 스위스 사례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살아 있는 참여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독점하는 오늘의 상황은, 과거 토지·자본 독점의 역사와 겹쳐 보며 AI 시대의 권력 집중이 어떤 위험을 낳을지를 경고한다. 문명의 붕괴를 다룬 부분에서는 과거 여러 번의 붕괴와 재건의 역사를 되짚으며, 종말을 상상하는 능력 자체가 붕괴를 막는 데 필요한 힘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지금의 길이 원래 정해진 운명은 아니며, 인류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사례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오늘 다른 방향으로 꺾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내일을 위한 역사』는 중·고등학생에게도 좋은 책이다. 역사가 더 이상 외워야 할 연도와 인물이 아니라, 기후위기·SNS·AI·민주주의 같은 막막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내일의 세계를 어떻게 바꿔 갈지 생각하게 해 주는 도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인용되는 마오리족의 말은 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처럼 남는다.
“과거에 눈을 둔 채 미래를 향해 거꾸로 걸어라.”
과거에만 머무르라는 뜻이 아니라,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내일을 위한 역사』는 바로 그 눈을 길러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 당장의 편리함과 이익만 바라보던 좁은 시야가 조금 더 멀리 뻗어나가고, 나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사람들까지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는 힘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선택을 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연대에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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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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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런데 그 모든 것에는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역사는 손쉽게 남용되고 악용될 수 있기에 과거에서 본보기를 구하는 일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과제다.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과 마오쩌둥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는 역사책에서 자신들의 잔혹 행사를 지우는 데 능숙했다. 1990년대 발칸전쟁 때 세르비아 지도자들은 과거를 조작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고대 세르비아 제국의 일부였으므로 당연히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고, 이에 크로아티아도 비슷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포퓰리즘에 추한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을 문 앞에 묶어두려고 국가적 순수성을 운운하며 가공의 역사를 퍼뜨린다. 이처럼 정치권력을 대중의 없던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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