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다운 퀄리티 투자 - 세상의 변화를 미리 읽고 1%에 집중하는 힘
FundEasy 지음 / 지음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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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다운 퀄리티 투자』는 변동성에 휩쓸리는 단기 매매에서 벗어나,

평생 가져갈 수 있는 투자 철학과 시스템을 세우고 싶은 사람에게 단단한 기준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겪어 온 시행착오를 숨기지 않는다.

시장 분위기에 취해 FOMO에 이끌려 테마주에 올라탔다가 손절로 끝난 경험,

하루 종일 시세창을 붙들고 단타를 반복하다가 수익보다 피로감과 수수료만 남았던 날들,

잠깐 수익이 나도 “이게 계속될까?”라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솔직하게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이렇게는 평생 투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수많은 공부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답이 바로 퀄리티 투자다.

저자가 말하는 퀄리티 투자는 단순히 좋은 기업을 사서 묻어두는 것이 아니다.

그는 퀄리티 투자를 뛰어난 기업의 동업자가 되는 투자라고 정의한다.

주가 등락에 베팅하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좋은 재무, 좋은 비즈니스 모델, 좋은 경영진을 가진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성장의 과실을 장기적으로 함께 나누는 주주이자 파트너가 되자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누군가와 동업을 할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실과 재무 상태, 지금의 사업 수완, 앞으로의 비전과 정직성을 꼼꼼히 따져 보듯, 기업을 보는 관점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 철학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저자가 퀄리티 투자가 마음은 편하지만 수익률은 낮은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여 준 전략 중 하나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인용하는 대표적인 예가 MSCI World Quality Index다. ROE가 높고 부채비율이 낮으며 이익 변동성이 작은 기업들로 구성된 이 지수는, 1998년 12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약 25년 동안 세계 주식 시장 평균을 나타내는 MSCI World Index가 약 6.4배 오르는 동안 무려 9.3배 이상 상승했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상승장보다 하락장에서의 차이다.

닷컴버블 붕괴기(2000~2002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처럼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위기 국면에서조차 퀄리티 지수의 하락 폭은 시장 평균 대비 훨씬 작았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과 튼튼한 재무 구조를 가진 기업은 시장이 좋을 때 꾸준히 성장하고,

나쁠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평범한 기업과의 격차를 벌려 나간다.

저자는 이 데이터를 통해 투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잃느냐라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성장성과 가격을 함께 고려한 퀄리티 GARP 전략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준다.

재무적으로 우량하면서 성장성이 높고, 현재 주가가 합리적인 수준에 있는 기업들로 구성된

MSCI USA Quality GARP Select Index는 2002년 12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세계 증시 평균이 약 8.7배 오르는 사이 13.9배 이상 상승했다. 저자는 이러한 장기 데이터를 지켜보면서, “마음 편한 투자가 곧 수익률 높은 투자일 수 있다”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퀄리티 기업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저자는 좋은 재무, 좋은 비즈니스 모델, 좋은 경영진이라는 세 가지 기둥을 제시하며,

그중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을 지탱하는 경제적 해자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책에서 정리하는 경제적 해자는 7가지다.

첫째는 규모의 경제다. 클수록 비용이 낮아지는 구조로, 코스트코나 쿠팡처럼 매출과 물량이 커질수록 단가가 내려가고, 그 힘으로 다시 가격 경쟁력을 높여 시장 지위를 강화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는 네트워크 효과다. 쓸수록,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커지는 구조로, 비자나 메르카도리브레 같은 결제·마켓플레이스 기업은 사용자와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경쟁자가 끼어들 틈이 줄어든다.

셋째는 전환비용이다. 바꾸기 어렵고 귀찮다는 사실 자체가 해자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제품군이나 인튜이트의 회계·세무 소프트웨어처럼, 한 번 도입하면 다른 서비스로 갈아타는 데 드는 교육·전환·리스크 비용이 너무 커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는 브랜드다. 비싸도 기꺼이 사게 만드는 힘이다. 에르메스나 질레트처럼 이름만으로 신뢰와 욕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는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떠나지 않는 구조적 우위를 갖는다.

다섯째는 핵심 자원이다. “우리는 이 자원을 우리만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들, 예를 들면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한 ASML이나 특정 치료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데이터를 가진 노보 노디스크 같은 기업은 자원 그 자체가 해자다.

여섯째는 프로세스 파워다. “우리만 이렇게 할 수 있다”라는 운영 능력으로, TSMC의 반도체 제조 공정이나 유니클로의 공급망·재고 관리 시스템처럼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조직 문화가 쉽게 복제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 일곱째는 역 포지셔닝이다. 기존 강자가 따라 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시장을 재정의하는 전략이다. 에어비앤비나 넷플릭스는 호텔 체인이나 케이블 TV 사업자가 가지고 있던 사업 구조와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비껴가는 모델을 통해, 기존 강자들이 쉽게 쫓아올 수 없는 위치를 선점했다.

저자는 이 일곱 가지 해자 중 어떤 요소를 얼마나,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퀄리티 기업을 찾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해자의 크기보다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지속 기간이다. 몇 년 반짝 성장하다 경쟁업체에 따라잡히는 기업보다, 성장 속도는 조금 느리더라도 10년 이상 해자를 지키며 복리를 쌓을 수 있는 기업이 장기 투자자에게 훨씬 큰 부를 안겨 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 위에서 저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탑다운·바텀업 결합 전략을 설명한다.

먼저 탑다운 분석으로 “어떤 운동장에서 뛸 것인가”를 결정한다.

거시경제의 변화와 글로벌 트렌드를 보며 앞으로 순풍이 불어올 산업을 고르고,

그다음 그 운동장 안에서 바텀업·퀄리티 분석을 통해 누구와 함께 뛸 것인가,

즉 일곱 가지 해자를 가장 견고하게 갖춘 기업을 추려낸다.

다만 이 원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압도적인 퀄리티 기업을 발견했을 때는 탑다운과 상관없이 순수 바텀업으로 오랜 기간 동행하기도 한다. 원칙을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저자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자신만의 방식이다.

이 철학은 포트폴리오 구축과 운용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투자 무대를 대한민국에 한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기술 기업, 유럽의 명품 소비재,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처럼 각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해자를 가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전 세계에 눈을 돌린다. 그러면서도 분산과 집중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종목 수는 약 20개 내외로 가져가며 특정 기업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하지만,

산업 관점에서는 자신이 확신하는 7개 안팎의 섹터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라는 아이디어에 확신이 있다면 미국의 엔비디아, 한국의 하이닉스, 대만의 TSMC에 나누어 투자하되, 큰 틀에서는 반도체 산업에 집중 투자한 셈이 된다.

종목은 분산하되 아이디어는 집중하는 방식이다.

비중 조절과 리밸런싱에 대해서도 책은 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는 모든 종목을 똑같은 비율로 담지 않고, 각 기업에 대한 확신 수준과 안전마진을 기준으로 비중을 달리한다. 단일 종목의 비중은 원칙적으로 2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아주 예외적인 기회라고 판단될 때에만 30%까지 허용한다. 리밸런싱 역시 기계적으로 하지 않는다. 비중이 자신이 정한 원칙을 넘어섰을 때, 투자 아이디어의 핵심이 훼손되었을 때, 혹은 그 돈을 옮길 만큼 더 좋은 기업을 발견했을 때라는 세 경우에만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특히 이미 큰 수익을 준 ‘위너’ 종목의 비중이 커졌을 때는, 단순히 비중이 많으니 판다가 아니라, 기업의 해자가 예전보다 더 깊어졌는지, 밸류에이션이 비이성적인 수준까지 치솟았는지, 그 자본을 옮길 만한 더 매력적인 기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함께 묻는 과정을 거친다.

이 책이 특별한 지점을 하나 더 꼽자면,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까지 다뤘던 모든 과정을 하나로 합쳐 ‘실전 투자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하나의 투자 아이디어가 어떤 관찰에서 시작되어(탑다운),

어떤 과정을 통해 기업을 분석하고(바텀업), 어떤 고민과 가치평가를 거쳐 실제 매수·매도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특정 회사를 지목해 왜 그 회사를 선택했는지, 어떤 해자를 어떻게 해석했고,

어떤 리스크를 어디까지 감내하기로 했는지 구체적인 사례 네 가지를 통해 보여 준다.

이 과정을 따라가며, 앞에서 배운 개념들이 실제 투자 현장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작동하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책의 뒷부분에는 여덟 가지 부록이 실려 있어,

이론과 사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1. FundEasy의 일상 루틴과 공부 습관

2.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핵심 사이트 정리

3. AI를 나만의 투자 비서로 활용하는 방법

4. 바쁜 직장인을 위한 퀄리티 기업 스크리닝 실전 가이드

5. 나만의 투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7단계 로드맵

6. 추천 도서 목록

7. 참고할 만한 웹사이트와 자료

8. 주요 용어 설명

총 8가지 구성으로 꽤 알찬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부록들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단순한 ‘좋은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실제 내 투자 일상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실천 도구 상자 역할을 한다.

결국 『탑다운 퀄리티 투자』는 시장의 단기 소음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 투자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책이다. 투자란 남들보다 빨리, 더 많이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큰 그림을 읽고, 해자가 깊은 좋은 기업과 오래 동행하며 적게 잃고 꾸준히 이기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경제적 해자의 7가지 틀, 탑다운과 바텀업을 엮는 방법, 실전 포트폴리오 운용 원칙,

구체적인 투자 사례와 부록까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단기 수익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평생 가져갈 수 있는 투자 철학을 설계할 수 있는 재료들을 한 손에 쥐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주식을 당장의 수익 수단이 아니라 오래 함께할 파트너십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투자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론과 사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1. FundEasy의 일상 루틴과 공부 습관
2.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핵심 사이트 정리
3. AI를 나만의 투자 비서로 활용하는 방법
4. 바쁜 직장인을 위한 퀄리티 기업 스크리닝 실전 가이드
5. 나만의 투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7단계 로드맵
6. 추천 도서 목록
7. 참고할 만한 웹사이트와 자료
8. 주요 용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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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마음 공부 - 소란과 번뇌를 다스려줄 2500년 도덕경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윌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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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에 적힌 “물은 애쓰지 않아도 결국 바다에 이른다.” 이 한 문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래도 강하게 쥐면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더 빨리 흘러내리기 마련인데,

오히려 힘을 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간다면 해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오래 머릿속에 남는 문장이었다.

예쁜 표지도 눈길을 끌었는데, 공중에서 정지 비행을 하는 듯한 작은 새가 보인다.

녹색, 파랑, 붉은빛이 섞인 새는 벌새처럼 보인다. 그 옆의 꽃은 난초를 닮았다.

난초와 벌새라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초는 과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향으로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존재다.

벌새는 아주 작지만 한곳에 머물며 쉼 없이 날갯짓해 균형을 잃지 않는 새다.

노자가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하며,

물처럼 낮은 자리에서 억지로 힘을 쓰지 않고도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난초와 벌새의 모습은 이 책이 말하는 태도와 잘 포개진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법,

힘을 앞세우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흐름과 하나가 되는 법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것 같다.

『노자의 마음 공부』를 읽기 직전까지, 나는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된다며,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뒤처지지 않아야 된다며 강하게 스스로를 압박했다. 관계에서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사실 그게 성실하게 사는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노자의 말과 그것을 풀어내는 문장을 읽다 보니 그게 성장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방식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소사과욕(少私寡欲)”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노자는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효성과 자애가 돌아오고, 교묘함을 끊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진다”고 말한 뒤, “가공되지 않은 본디의 소박함을 지키며,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이 대목을 무위의 맥락에서 풀어낸다. 인과 의는 사람이 만들어낸 도덕 원리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움에서 멀어진다고 말한다. 어짊과 의로움조차도 배워서 익힌 지혜일 뿐, 자연 그대로의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고 권했다.

여기서 말하는 ‘소(少)’는 물들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박(樸)’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가리킨다.

겉으로 보기에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깎이지 않은 가능성과 힘이 남아 있다.

무위는 바로 그 꾸미지 않은 있음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 안의 욕심은 언제나 자연의 그러함을 조금씩 초과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고 싶고, 실제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어짊과 의로움조차 자연의 소박함에 견주면 보잘것없다는 말이 이 대목에서 더 실감 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쌓아 올린 것들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덧댄 말들, 성실해 보이기 위해 만든 과한 일정, 인정받고 싶어서 붙여 온 각종 타이틀들.

그게 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이었고, 그 욕심이 커질수록 내 안의 소박함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사과욕은 욕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자연스러운 나를 초과하는 순간을 조심하라는 경계처럼 보인다. 이 말은 좋아 보이는 나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 조금 더 가까워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도 이 책에서 새로 배웠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약지승강(弱之勝强)”, “대직약굴(大直若屈)” 같은 말들이 책 속에서 여러 번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며, 큰 곧음은 오히려 굽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멋있는 문장 정도로 읽고 넘어갔는데, 이 말을 다시 접하니 내가 믿어 온 강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주었다.

그동안 강하다는 건 악착같이 끝까지 버티고, 절대 꺾이지 않는 태도가 강함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물은 단단하게 굳어 있지 않아서 부딪히면 깨지는 법이 없고, 닿는 대로 모양을 바꾸면서도 결국 자기 갈 길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약하다는 말이 더 이상 무기력 하거나 패배의 의미가 아니라, 굳이 맞서 싸우지 않고도 버텨낼 수 있는 유연함을 뜻한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물처럼 산다는 건 그저 되는 대로 살자는 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꾸면서도 속으로는 흐름을 이어가는 상태에 가깝다.

누가 봐도 반듯하고 흠 잡을 데 없는 ‘곧음’이 아니라, 겉으로는 조금 굽어 보이고 남들보다 느려 보여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삶이다. 예전에는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이제는 조금 굽어도 괜찮고,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이 문장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 대목을 곱씹다 보니, 눈에 띄게 강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처럼, 필요할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그러나 자기가 흘러갈 바다만은 잊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닮고 싶은 ‘강함’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다.

“행어대도(行於大道)”라는 말처럼, 굳이 특별한 길만 찾지 않고 큰길을 걷듯 단순하게 살아도 된다는 구절도 마음에 남았다. 내 인생만은 뭔가 거창하고 드라마틱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으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던 평범한 하루가 예전만큼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진 삶이 아니라, 그저 나다운 속도로 걸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책 속에는 “도법자연(道法自然)”, “도상무명(道常無名)”, “무명지박(無名之樸)”, “복귀어박(復歸於樸)” 같은 말들이 나온다. 도는 자연을 본받고, 도는 늘 이름이 없으며, 이름 붙지 않은 통나무 같은 질박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구절들을 따라 읽으면서 괜히 뭐든 설명하고 포장하려 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잘 보이고 싶어서 덧붙였던 말들,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붙인 수식들, 나를 과하게 정의하려 했던 습관들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 정의와 수식들 속에서 나는 점점 또렷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흐릿해지고 있었다. 무엇이 나인지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잠시 그 모든 이름과 설명을 걷어 낸 자리에서 남는 것을 지켜보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노자가 말하는 ‘소박함으로 돌아간다’는 건, 새로운 이름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필요 없던 이름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나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天下皆知美之為美 斯惡已)”라는 문장도 오래 남았다.

노자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순간, 이미 추한 것도 함께 생긴다고 말한다.

선한 것을 가리키는 순간, 선하지 않은 것도 함께 생긴다고 말한다.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앞과 뒤, 어렵고 쉬움도 모두 서로를 기준 삼을 때 비로소 나뉜다.

우리가 이름 붙이고 비교하는 순간, 둘은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도를 따르는 사람은 굳이 앞장서서 모든 것을 재고 나누고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남을 도와도 내가 했다는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이 오래 간다고 노자는 말한다.

이 말을 곱씹다보니, 남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나를 재던 시간이 떠올렸다.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잣대를 그대로 가져와 나를 비교하느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습과 내가 편안한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구절이 내게 남긴 것은, 세상이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름 사이에 나를 세워 두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삶에서 조금씩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과 기준에 매달리기보다, 비교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애자승의(愛者勝之)”, “자지자명(自知者明)”, “자고능용(自固能用)”, “기자불립(其者不立)” 같은 구절들은 관계와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뜻,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밝다는 뜻,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 자기만 세우려 하면 오래 서 있지 못한다는 뜻. 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관계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잃어버렸는지, 또 언제 나만 앞세웠는지 하나둘 떠올랐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은 이 책에서 특히 다르게 다가온 말이다. 그동안은 ‘늦게 성공해도 괜찮다’는 위로 문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장석주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그 속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큰 그릇은 빨리 만들 수 없다. 천천히 두드리고, 깎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해야 겨우 형태를 갖춘다. 돌이켜 보면, 내가 나를 조급하게 몰아세웠던 시간 대부분은, 그릇이 아직 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아주 천천히 허락해 보려고 한다.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疏而不失)”도 잊기 어려운 문장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 보여도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지금 내 인생이 조금 엉킨 것 같고 빗나간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이 완전히 틀어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나를 완전히 놓아버린 게 아니라면, 나는 아직 그물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절망하지 말고, 조금은 삶을 믿어봐도 좋겠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듭 느낀 건, 말이 많을수록 오히려 진실에서 멀어질 때가 많다는 점이다.

“희언자연(希言自然)”이라는 말처럼, 말이 적을수록 더 자연스럽다.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도 마음에 남았다. 작은 생선을 굽듯이 삶을 다루라는 뜻.

너무 세게 뒤집거나, 너무 자주 건드리면 금세 부서진다는 말이다.

내 하루와 관계, 마음도 그런 것 같다. 필요 이상으로 흔들어대기보다, 살피며 천천히 익혀야 비로소 제 맛이 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한 줄은 결국 이것이었다.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

노자의 말과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을 주며 살고 있나?”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 보려고 하다 보니, 내려놓아도 되는 것, 다시 붙잡아야 하는 것, 아직 잘 모르겠는 것들이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내게 가르쳐 준 건 욕심과 힘을 통째로 버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나를 소모시키는 욕심과 나를 지켜 주는 욕심을 가려 보라는 것, 억지로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가며 버티게 하는 힘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무수히 많은 순간에 흔들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굳이 악착같이 버티지 않아도 된다고, 부러지지 않기 위해 세게 버티기보다 휘면서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쪽이 더 오래 간다고. 애쓰지 않아도 바다에 이르는 물처럼, 조금 힘을 빼고 흘러가도 결국 도착할 곳에는 도착한다고 말이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믿고 싶다.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는 대신, 도법자연(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최선의 움직임을 찾는 것)의 마음으로 내 흐름을 믿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도(道)에, 지금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보일러서평단 @boramchan.everyday'을 통해,

'윌마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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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소사과욕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백성이 효성과 자애를 되찾고,
교묘함을 끊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진다.
이 세 가지로는 무위를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라야 할 말을 덧붙인다.
가공되지 않은 본디의 소박함을 지키며,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
- <도덕경> 19장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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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 온그림책 26
윤민용 지음, 샤샤미우 그림 / 봄볕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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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조선 시대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1702년의 제주를 마치 여행하듯 따라가게 만드는 따뜻한 역사 그림책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옛 건물과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주 소년 개똥과 이형상이 영천에서 키우던 개 삽사리가 등장해

아이들 눈높이로 조선 시대 제주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안내해 준다는 점이다.

이형상이 제주 목사로 임명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양에 들어 임금께 인사를 올리고,

강진항까지 말을 타고 내려가 다시 배를 타는 여정,

풍랑 때문에 보길도에 오래 머물렀다가 마침내 제주 조천항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1702년이라는 시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섬이라는 이유로 멀고 낯설었던 제주로 향하는 길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제주에 도착한 뒤, 이형상은 제주목 관아 곳곳을 살핀다.

관덕정, 망경루, 연희각, 홍화각, 영주협당 같은 건물들은 단순한 행정 건물이 아니라

당시 제주 사람들이 살아가던 풍경이 스며 있는 장소로 그려진다.

귤밭이 있는 관아의 분위기, 작은 정자 귤림당,

연못가에서 제주 목사들이 쉬고 연회를 열던 우련당의 모습까지 묘사되면서

옛 제주 관아의 일상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이야기 속 개똥과 삽사리의 짧은 대화는 딱딱할 수 있는 역사 내용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대신 질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삽사리가 묻는다.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군사 자원이라 보내는 건 알겠어.

그런데 검정소는 왜 보내는 거야?”

개똥이는 말한다.

“검정소는 제주에서만 키우거든.

서울에서 제사를 지낼 때 꼭 필요한 귀한 재료라서 그래.”

이 짧은 질문과 답만으로도 제주가 조선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는지,

제주의 자연과 자원이 어떻게 국가 제도와 연결되었는지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형상이 한라산에 올라 탐라 전체를 내려다보는 장면도 인상 깊다.

초여름에도 눈이 남아 있는 정상, 그 아래로 펼쳐진 들판과 바다, 오름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뱃길로 닿지 않는 나라가 없다.”

라는 말은 당시 제주가 생각보다 훨씬 열린 세계였음을 깨닫게 한다.

표류와 교류가 잦았던 섬, 외국과의 만남이 일상이었던 제주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그림과 지도들은,

실제 역사 기록물인 《탐라순력도》에서 비롯된 생생한 자료들이다.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에서 보고 들은 풍물과 행정, 백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화공 김남길에게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게 했다.

또한 명필 오시복이 서문과 그림 제목, 글씨를 맡아 완성한 화첩이 바로 《탐라순력도》다.

43면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에는

제주의 자연과 풍속, 관아의 모습, 순력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날짜순 배열이 아니라 이형상이 중요하게 여긴 업무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당시 제주에서 벌어진 여러 행사와 행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록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크다.

이 책은 바로 그 《탐라순력도》를

아이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따뜻한 이야기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300년 전 제주를 함께 걸어보고 듣는 것에 더 가깝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 형상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담겨 있고,

그가 제주에서 어떤 순서로 순력 활동을 했는지

진성(鎭城)과 현성(縣城)을 지도로 정리해 한눈에 보여준다.

이 순력 동선에는, 화북진성, 조천진성, 별방진성, 수산진성, 정의현성, 서귀진성, 대정현성, 모슬진성, 차귀진성, 명월진성, 애월진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 진성과 현성은 당시 제주 해안 방어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형상이 제주를 어떻게 관리하고 돌보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지도를 통해 독자는 ‘탐라를 어떻게 돌아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시각적으로 명확한 이해를 얻게 된다.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고,

역사를 처음 배우는 어린 독자에게는 재미와 배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따뜻한 역사 그림책이다.

읽고 나면 300년 전의 제주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의 장면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다.


'봄볕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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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뱃길로 닿지 않는 나라가 없다. 제주목 서북쪽으로 배를 타고 가면 청나라의 등주, 항주가 나오고 남서쪽으로 가면 안남국과 섬라국, 남동쪽으로 가면 여인국이, 정남쪽으로 가면 대유구, 동쪽으로 가면 일본에 닿는다. 거센 풍랑이 치면 제주도 사람들이 이들 나라에 표류하기도 하고, 외국의 뱃사람들이 제주도에 표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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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능성에 대하여 - 인생의 위기와 기회를 바라보는 12가지 창조적 사고법
벤저민 잰더.로저먼드 잰더 지음, 강정선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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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하루를 보내는 내내 비교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사이 내 글에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 확인하고,

출근해서는 매출 그래프와 실적표를 보며 나를 평가한다.

점심시간에는 또래의 연봉이나 부동산 집값 이야기, 투자 수익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퇴근 후에는 인스타그램 속 남들의 새 집·새 차·여행 사진을 보며 내 삶을 견줘 본다.

아이가 있으면 성적과 등수에, 없으면 결혼·출산·커리어 타임라인에 나를 대입하며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를 계산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숫자’와 ‘남들’에 비춰 자신을 재다 보면 삶은 어느 순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것이 되고, 내가 무엇을 느끼며 사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런 시대에 『당신의 가능성에 대하여』는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숨 가쁘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세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차분히 되묻는 책이다.

저자 벤저민 잰더와 로저먼드 잰더는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신경과학이 보여주듯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일부 정보 위에 뇌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도와 해석을 덧씌워 이게 현실이야라고 받아들인다. 개구리가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패턴만 보듯, 인간 역시 생존과 익숙한 범주에 유리한 정보만 또렷하게 본다. 리처드 그레고리, 도널드 헤브, 아인슈타인의 통찰을 인용하며 저자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뇌가 만든 하나의 관점에 가깝다고 말하고, 이를 “모든 것은 만들어졌다(It’s all invented)”라는 문장으로 압축한다.

이 인식 위에서 우리가 사는 기본 모드를 “측정의 세계”라 부른다.

이 세계에서 삶은 부족함과 위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로 전제된다.

연봉, 성적, 성과, 순위가 삶의 기준이 되고, 자연스럽게 생존 지향 사고와 결핍 지향 사고가 자리 잡는다.

실제로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언제나 모자랄 것이라는 전제 아래 남을 경쟁자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고정된 실체로 보고, 사람과 상황을 숫자로 재단하고 구획해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 틀 안에서, 성공과 실패·안과 밖·소속과 배제가 삶의 거의 전부처럼 여겨진다.

이에 맞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가능성의 우주(Universe of Possibility)”다.

여기서 세상은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곳이 아니라, 나누고 나눌수록 다시 커질 수 있는 장으로 상상된다. 언어와 이야기가 현실을 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이름을 붙이기 시작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아이를 기쁨 그 자체라고 부르고, 작은 회사를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의 행동과 상상을 바꿀 수 있다. 이 우주에서 행동은 누군가와 경쟁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기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감사·경외·연민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이 ‘가능성의 우주’에 발을 들이는 일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제안하는 첫 연습은, 지금 이 순간 내 생각과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것이 얼마나 측정의 세계를 닮아 있는지 알아차려 보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쫓기는 마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는 마음을 없애려 하기보다, 먼저 “아, 지금도 또 성과로 나를 재고 있구나”, “또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네” 하고 눈치채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들은 이어서 측정의 세계와 가능성의 우주의 차이를 무엇을 먼저 세우느냐의 문제로 풀어낸다.

측정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목표가 먼저다. 연봉, 집, 직급, 성과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목표를 제일 앞에 세워 두고, 그 기준에 맞춰 계획을 짜고 하루를 움직인다. 반대로 가능성의 우주에서는 목표보다 ‘배경’이 먼저다. ‘나는 어떤 이야기 위에서 내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큰 틀을 먼저 정해 두고, 그 위에 구체적인 목표와 선택을 하나씩 올려놓는 방식이다.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어떤 배경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일이 중요해진다. “세상은 위험하고 모든 것이 부족해서 나는 간신히 버텨야 하는 존재다”라는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나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존재이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기여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목표를 바꾸기에 앞서, 먼저 내가 깔아 두고 있는 삶의 배경 이야기를 바꿔 보라는 것이다. 그 배경이 달라지는 순간, 똑같은 목표를 향해 걷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는 마음의 무게와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당신의 가능성에 대하여』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무대 자체가 사실은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이야기의 산물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조건이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알려준다. 결국, 가능성의 우주는 먼 미래의 이상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언제든 조금씩 열릴 수 있는 세계임을 보여준다.


'페이지2북스(포레스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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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모든 것은 서사의 형태로 다가온다. 즉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 낸 하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상황의 핵심은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를 넘어 더 깊은 곳에 있다. 여러 신경과학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대략 다음 순서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우선 인간의 감각은 바깥세상에 관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 내가 자체적으로 감각 모형을 구성하고, 그러고 나서야 인간은 최초로 환경을 의식적으로 경험한다. 즉 우리는 이미 그려져 있는 지도, 이미 전해진 이야기, 가설, 또는 자신만의 해석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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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이 더 멀리 : 현미경과 망원경 이야기 - 2025 수학도서상, 2025 유레카 논픽션 실버상 별빛그림책방
메리 올드 지음, 아드리아 메서브 그림, 이계순 옮김 / 별빛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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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드의 『더 가까이 더 멀리』는 과학사의 두 거장을 한 권에 담아낸 특별한 그림책이다.

망원경으로 우주의 경계를 확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리고 현미경으로 보이지 않던 생명의 세계를 처음 발견한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

한 사람은 ‘멀리’를 보았고, 한 사람은 ‘가까이’를 들여다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책은 1609년 베네치아에서 시작된다.

갈릴레오는 렌즈를 갈고, 조합하고, 다시 계산하며 더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의 노력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을 우주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념이었다.

그는 달의 산과 골짜기, 금성의 위상 변화, 태양의 흑점, 목성의 네 개의 달을 발견한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겼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념을 뒤흔드는 관찰이었다.

1610년 그는 이 관찰을 『별의 전령』에 담아 발표했고, 이는 우주의 판도를 뒤집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발견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흑점은 렌즈의 얼룩일 뿐이다”,

“태양이 움직인다면 왜 매일 해가 뜨고 지는가?”,

“성경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라는 반박들이 쏟아졌다.

결국 그는 재판을 받고 가택 연금 상태에서 생을 마쳤지만, 연구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좁은 방에서, 그는 여전히 계산하고 관찰하고 사유했다.

멀리 있는 세계를 향해 열어둔 그의 시선은 닫히지 않았다.

한편,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에서는 이름 없는 상인이 렌즈 하나를 붙들고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었다.

판 레이우엔훅은 몇 시간이고 유리를 녹이고 갈고,

작은 렌즈의 모양을 조정하며 당시 세상 어디에도 없던 현미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물 한 방울 속에서 인간이 한 번도 본 적 없던 생물들을 발견한다.

수천 수만 개의 작은 점, 움직임, 형태들. 그는 그것들을 ‘아주 작은 동물들’,

즉 애니멀큘이라고 불렀고, 오늘날의 미생물과 세포학의 시작이 되었다.

그는 치아에서 긁어낸 찌꺼기, 고추 물, 빗물, 우유, 혈액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을 직접 들여다보고 기록했으며,

이러한 관찰을 왕립학회에 편지로 보내면서 학자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가 과장한다고 의심했지만, 그가 보여준 작은 세계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판 레이우엔훅은 생을 마칠 때까지 수백 개의 현미경을 만들고, 새로운 생명체를 끝없이 발견해 나갔다.

책은 후반부에서 두 과학자의 발견이 현대과학에 어떤 문을 열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갈릴레오 이후 우리는 인공위성과 우주망원경으로 외계 행성을 관찰하고,

블랙홀과 은하의 구조까지 탐구하게 되었다. 판 레이우엔훅 이후

우리는 세포와 유전자, 바이러스의 존재를 이해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멀리 본 사람과 가까이 본 사람, 방향은 달랐지만 그들이 가르쳐 준 것은 동일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도구와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운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세요. 답을 찾기 위해 멀리 내다보거나 가까이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한 번 더 의심해 보세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가지세요.”

두 과학자의 삶은 바로 이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멀리 혹은 가까이, 질문하고 실험하는 태도 자체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갈릴레오는 멀리 바라봄으로써 인간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했고,

판 레이우엔훅은 가까이 들여다보며 작은 세계 안에 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언제나 관찰 도구와 시선의 한계 안에 있다.

이 책을 읽으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은 정말 사실일까?

내가 보지 못한 세계, 아직 모르는 분야가 훨씬 더 넓고 복잡한데

이미 다 알고 있는 척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용기가 나에게 있나?

이 책이 가르쳐 준 건, 정답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시 묻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점이다.

눈을 조금만 달리 돌리면, 멀리서도·가까이서도 전혀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난다.

나는 이 작고 끊임없는 질문들이 우리 삶을 더 깊게 바라보게 하고,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고 믿게 되었다.

'단단한맘 @gbb_mom' 서평단을 통해,

'별빛책방/카시오페아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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