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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마음 공부 - 소란과 번뇌를 다스려줄 2500년 도덕경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윌마 / 2025년 11월
평점 :

책 띠지에 적힌 “물은 애쓰지 않아도 결국 바다에 이른다.” 이 한 문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래도 강하게 쥐면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더 빨리 흘러내리기 마련인데,
오히려 힘을 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간다면 해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오래 머릿속에 남는 문장이었다.
예쁜 표지도 눈길을 끌었는데, 공중에서 정지 비행을 하는 듯한 작은 새가 보인다.
녹색, 파랑, 붉은빛이 섞인 새는 벌새처럼 보인다. 그 옆의 꽃은 난초를 닮았다.
난초와 벌새라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초는 과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향으로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존재다.
벌새는 아주 작지만 한곳에 머물며 쉼 없이 날갯짓해 균형을 잃지 않는 새다.
노자가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하며,
물처럼 낮은 자리에서 억지로 힘을 쓰지 않고도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난초와 벌새의 모습은 이 책이 말하는 태도와 잘 포개진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법,
힘을 앞세우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흐름과 하나가 되는 법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것 같다.
『노자의 마음 공부』를 읽기 직전까지, 나는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된다며,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뒤처지지 않아야 된다며 강하게 스스로를 압박했다. 관계에서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사실 그게 성실하게 사는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노자의 말과 그것을 풀어내는 문장을 읽다 보니 그게 성장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방식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소사과욕(少私寡欲)”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노자는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효성과 자애가 돌아오고, 교묘함을 끊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진다”고 말한 뒤, “가공되지 않은 본디의 소박함을 지키며,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이 대목을 무위의 맥락에서 풀어낸다. 인과 의는 사람이 만들어낸 도덕 원리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움에서 멀어진다고 말한다. 어짊과 의로움조차도 배워서 익힌 지혜일 뿐, 자연 그대로의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고 권했다.
여기서 말하는 ‘소(少)’는 물들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박(樸)’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가리킨다.
겉으로 보기에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깎이지 않은 가능성과 힘이 남아 있다.
무위는 바로 그 꾸미지 않은 있음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 안의 욕심은 언제나 자연의 그러함을 조금씩 초과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고 싶고, 실제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어짊과 의로움조차 자연의 소박함에 견주면 보잘것없다는 말이 이 대목에서 더 실감 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쌓아 올린 것들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덧댄 말들, 성실해 보이기 위해 만든 과한 일정, 인정받고 싶어서 붙여 온 각종 타이틀들.
그게 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이었고, 그 욕심이 커질수록 내 안의 소박함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사과욕은 욕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자연스러운 나를 초과하는 순간을 조심하라는 경계처럼 보인다. 이 말은 좋아 보이는 나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 조금 더 가까워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도 이 책에서 새로 배웠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약지승강(弱之勝强)”, “대직약굴(大直若屈)” 같은 말들이 책 속에서 여러 번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며, 큰 곧음은 오히려 굽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멋있는 문장 정도로 읽고 넘어갔는데, 이 말을 다시 접하니 내가 믿어 온 강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주었다.
그동안 강하다는 건 악착같이 끝까지 버티고, 절대 꺾이지 않는 태도가 강함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물은 단단하게 굳어 있지 않아서 부딪히면 깨지는 법이 없고, 닿는 대로 모양을 바꾸면서도 결국 자기 갈 길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약하다는 말이 더 이상 무기력 하거나 패배의 의미가 아니라, 굳이 맞서 싸우지 않고도 버텨낼 수 있는 유연함을 뜻한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물처럼 산다는 건 그저 되는 대로 살자는 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꾸면서도 속으로는 흐름을 이어가는 상태에 가깝다.
누가 봐도 반듯하고 흠 잡을 데 없는 ‘곧음’이 아니라, 겉으로는 조금 굽어 보이고 남들보다 느려 보여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삶이다. 예전에는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이제는 조금 굽어도 괜찮고,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이 문장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 대목을 곱씹다 보니, 눈에 띄게 강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처럼, 필요할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그러나 자기가 흘러갈 바다만은 잊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닮고 싶은 ‘강함’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다.
“행어대도(行於大道)”라는 말처럼, 굳이 특별한 길만 찾지 않고 큰길을 걷듯 단순하게 살아도 된다는 구절도 마음에 남았다. 내 인생만은 뭔가 거창하고 드라마틱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으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던 평범한 하루가 예전만큼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진 삶이 아니라, 그저 나다운 속도로 걸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책 속에는 “도법자연(道法自然)”, “도상무명(道常無名)”, “무명지박(無名之樸)”, “복귀어박(復歸於樸)” 같은 말들이 나온다. 도는 자연을 본받고, 도는 늘 이름이 없으며, 이름 붙지 않은 통나무 같은 질박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구절들을 따라 읽으면서 괜히 뭐든 설명하고 포장하려 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잘 보이고 싶어서 덧붙였던 말들,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붙인 수식들, 나를 과하게 정의하려 했던 습관들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 정의와 수식들 속에서 나는 점점 또렷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흐릿해지고 있었다. 무엇이 나인지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잠시 그 모든 이름과 설명을 걷어 낸 자리에서 남는 것을 지켜보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노자가 말하는 ‘소박함으로 돌아간다’는 건, 새로운 이름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필요 없던 이름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나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天下皆知美之為美 斯惡已)”라는 문장도 오래 남았다.
노자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순간, 이미 추한 것도 함께 생긴다고 말한다.
선한 것을 가리키는 순간, 선하지 않은 것도 함께 생긴다고 말한다.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앞과 뒤, 어렵고 쉬움도 모두 서로를 기준 삼을 때 비로소 나뉜다.
우리가 이름 붙이고 비교하는 순간, 둘은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도를 따르는 사람은 굳이 앞장서서 모든 것을 재고 나누고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남을 도와도 내가 했다는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이 오래 간다고 노자는 말한다.
이 말을 곱씹다보니, 남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나를 재던 시간이 떠올렸다.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잣대를 그대로 가져와 나를 비교하느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습과 내가 편안한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구절이 내게 남긴 것은, 세상이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름 사이에 나를 세워 두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삶에서 조금씩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과 기준에 매달리기보다, 비교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애자승의(愛者勝之)”, “자지자명(自知者明)”, “자고능용(自固能用)”, “기자불립(其者不立)” 같은 구절들은 관계와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뜻,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밝다는 뜻,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 자기만 세우려 하면 오래 서 있지 못한다는 뜻. 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관계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잃어버렸는지, 또 언제 나만 앞세웠는지 하나둘 떠올랐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은 이 책에서 특히 다르게 다가온 말이다. 그동안은 ‘늦게 성공해도 괜찮다’는 위로 문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장석주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그 속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큰 그릇은 빨리 만들 수 없다. 천천히 두드리고, 깎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해야 겨우 형태를 갖춘다. 돌이켜 보면, 내가 나를 조급하게 몰아세웠던 시간 대부분은, 그릇이 아직 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아주 천천히 허락해 보려고 한다.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疏而不失)”도 잊기 어려운 문장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 보여도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지금 내 인생이 조금 엉킨 것 같고 빗나간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이 완전히 틀어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나를 완전히 놓아버린 게 아니라면, 나는 아직 그물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절망하지 말고, 조금은 삶을 믿어봐도 좋겠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듭 느낀 건, 말이 많을수록 오히려 진실에서 멀어질 때가 많다는 점이다.
“희언자연(希言自然)”이라는 말처럼, 말이 적을수록 더 자연스럽다.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도 마음에 남았다. 작은 생선을 굽듯이 삶을 다루라는 뜻.
너무 세게 뒤집거나, 너무 자주 건드리면 금세 부서진다는 말이다.
내 하루와 관계, 마음도 그런 것 같다. 필요 이상으로 흔들어대기보다, 살피며 천천히 익혀야 비로소 제 맛이 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한 줄은 결국 이것이었다.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
노자의 말과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을 주며 살고 있나?”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 보려고 하다 보니, 내려놓아도 되는 것, 다시 붙잡아야 하는 것, 아직 잘 모르겠는 것들이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내게 가르쳐 준 건 욕심과 힘을 통째로 버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나를 소모시키는 욕심과 나를 지켜 주는 욕심을 가려 보라는 것, 억지로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가며 버티게 하는 힘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무수히 많은 순간에 흔들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굳이 악착같이 버티지 않아도 된다고, 부러지지 않기 위해 세게 버티기보다 휘면서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쪽이 더 오래 간다고. 애쓰지 않아도 바다에 이르는 물처럼, 조금 힘을 빼고 흘러가도 결국 도착할 곳에는 도착한다고 말이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믿고 싶다.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는 대신, 도법자연(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최선의 움직임을 찾는 것)의 마음으로 내 흐름을 믿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도(道)에, 지금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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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서평단 @boramchan.everyday'을 통해,
'윌마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소사과욕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백성이 효성과 자애를 되찾고, 교묘함을 끊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진다. 이 세 가지로는 무위를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라야 할 말을 덧붙인다. 가공되지 않은 본디의 소박함을 지키며, 사사로움을 누르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적게 하라 - <도덕경> 19장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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