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 온그림책 26
윤민용 지음, 샤샤미우 그림 / 봄볕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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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조선 시대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1702년의 제주를 마치 여행하듯 따라가게 만드는 따뜻한 역사 그림책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옛 건물과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주 소년 개똥과 이형상이 영천에서 키우던 개 삽사리가 등장해

아이들 눈높이로 조선 시대 제주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안내해 준다는 점이다.

이형상이 제주 목사로 임명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양에 들어 임금께 인사를 올리고,

강진항까지 말을 타고 내려가 다시 배를 타는 여정,

풍랑 때문에 보길도에 오래 머물렀다가 마침내 제주 조천항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1702년이라는 시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섬이라는 이유로 멀고 낯설었던 제주로 향하는 길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제주에 도착한 뒤, 이형상은 제주목 관아 곳곳을 살핀다.

관덕정, 망경루, 연희각, 홍화각, 영주협당 같은 건물들은 단순한 행정 건물이 아니라

당시 제주 사람들이 살아가던 풍경이 스며 있는 장소로 그려진다.

귤밭이 있는 관아의 분위기, 작은 정자 귤림당,

연못가에서 제주 목사들이 쉬고 연회를 열던 우련당의 모습까지 묘사되면서

옛 제주 관아의 일상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이야기 속 개똥과 삽사리의 짧은 대화는 딱딱할 수 있는 역사 내용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대신 질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삽사리가 묻는다.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군사 자원이라 보내는 건 알겠어.

그런데 검정소는 왜 보내는 거야?”

개똥이는 말한다.

“검정소는 제주에서만 키우거든.

서울에서 제사를 지낼 때 꼭 필요한 귀한 재료라서 그래.”

이 짧은 질문과 답만으로도 제주가 조선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는지,

제주의 자연과 자원이 어떻게 국가 제도와 연결되었는지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형상이 한라산에 올라 탐라 전체를 내려다보는 장면도 인상 깊다.

초여름에도 눈이 남아 있는 정상, 그 아래로 펼쳐진 들판과 바다, 오름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뱃길로 닿지 않는 나라가 없다.”

라는 말은 당시 제주가 생각보다 훨씬 열린 세계였음을 깨닫게 한다.

표류와 교류가 잦았던 섬, 외국과의 만남이 일상이었던 제주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그림과 지도들은,

실제 역사 기록물인 《탐라순력도》에서 비롯된 생생한 자료들이다.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에서 보고 들은 풍물과 행정, 백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화공 김남길에게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게 했다.

또한 명필 오시복이 서문과 그림 제목, 글씨를 맡아 완성한 화첩이 바로 《탐라순력도》다.

43면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에는

제주의 자연과 풍속, 관아의 모습, 순력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날짜순 배열이 아니라 이형상이 중요하게 여긴 업무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당시 제주에서 벌어진 여러 행사와 행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록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크다.

이 책은 바로 그 《탐라순력도》를

아이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따뜻한 이야기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300년 전 제주를 함께 걸어보고 듣는 것에 더 가깝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 형상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담겨 있고,

그가 제주에서 어떤 순서로 순력 활동을 했는지

진성(鎭城)과 현성(縣城)을 지도로 정리해 한눈에 보여준다.

이 순력 동선에는, 화북진성, 조천진성, 별방진성, 수산진성, 정의현성, 서귀진성, 대정현성, 모슬진성, 차귀진성, 명월진성, 애월진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 진성과 현성은 당시 제주 해안 방어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형상이 제주를 어떻게 관리하고 돌보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지도를 통해 독자는 ‘탐라를 어떻게 돌아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시각적으로 명확한 이해를 얻게 된다.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고,

역사를 처음 배우는 어린 독자에게는 재미와 배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따뜻한 역사 그림책이다.

읽고 나면 300년 전의 제주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의 장면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다.


'봄볕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제주도에서는 뱃길로 닿지 않는 나라가 없다. 제주목 서북쪽으로 배를 타고 가면 청나라의 등주, 항주가 나오고 남서쪽으로 가면 안남국과 섬라국, 남동쪽으로 가면 여인국이, 정남쪽으로 가면 대유구, 동쪽으로 가면 일본에 닿는다. 거센 풍랑이 치면 제주도 사람들이 이들 나라에 표류하기도 하고, 외국의 뱃사람들이 제주도에 표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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