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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3년 5월
평점 :

정도언의 『프로이트의 의자』는 심리학은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 준다.
그만큼 이해하기 쉬운 예시가 가득하고,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 해주 듯, 꾸밈 없고 편안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라는 도구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일상적인 말로 설명한다.
정신분석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만든 학문이자 치료 방법이다. 정신분석은 우리가 평소 숨기거나 잘 몰랐던 생각을 말로 꺼내 보게 하고, 그 말을 통해 마음의 구조와 문제를 살피도록 돕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해답을 주입받는 느낌보다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정신분석의 출발은 자유연상이다. 카우치(누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긴 소파)에 누워, 떠오르는 것을 가리지 않고 말한다. 중요한 말만 골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모두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흐름을 해석하여 알려 준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려면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해도 될까?” 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만, 그 망설임을 넘어 뱉은 모든 말들이 분석의 영양분이 된다. 이 지점에서 정신분석은 보통의 상담과 다르다. 단순히 이렇게 해 보라는 조언보다는, 내 말 속에 숨어 있던 마음의 신호를 드러내서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왜 이런 방식이 필요할까?
우리는 생각처럼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마음도 몸처럼 아플 수 있고, 아프면 먼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들여다봐야 치료가 시작된다. 정신분석은 그때 마음을 가까이서 확대해 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이 돋보기로 보면, 프로이트가 말한 마음의 세 층, 의식·전의식·무의식이 보인다.
특히 무의식은 큰 지하창고와 같다. 말하기 어려운 욕망, 공격성, 부끄러운 기억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평소에는 단단한 문이 그 내용을 막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술기운 같은 틈이 생기면 문이 잠시 열리며 그 내용이 불쑥 위로 올라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말로 풀어내는 정신분석의 방식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또 마음을 움직이는 세 힘인 이드·자아·초자아로 설명했다.
이드는 “지금 당장 원해!”라고 말하는 충동, 초자아는 양심과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목소리, 자아는 그 사이에서 현실을 보며 타협을 찾아 주는 중재자다. 자아가 단단할수록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선택할 힘이 생긴다. 책이 계속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자아의 근력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생각보다 감정에 가깝다. 먼저 소속감이 그렇다. 우리가 메시지를 보내고, 모임에 나가고, SNS로 안부를 묻는 이유에는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다는 마음, 그 속에서 안전함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음으로 자존심이 연료가 된다. 건강한 자존심은 나를 지키게 하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게 만든다. 반대로 자존심이 약하면 다른 사람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관계가 흔들리기 쉽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동력은 자기실현이다. 결과만 조급하게 쫓기보다,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잠재력을 펼치려는 태도가 진짜 성장을 만든다. 이때 부족함과 불만은 반드시 나쁜 감정이 아니다. 잘 사용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 된다. 다만 불만을 동력으로 삼았다면, 작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으로 끝까지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소속감·자존심·자기실현이 차례로 맞물릴 때, 우리는 감정에 끌려다니는 대신 감정을 에너지로 바꾸어 삶을 움직일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욕동은 우리를 움직이는 기본 에너지다. 그는 욕동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리비도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배우고 만들고 싶게 하는 끌림의 힘이다.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로, 경계를 세우고 부당함에 맞서 밀어붙이게 하는 밀어내는 힘, 즉 공격성을 포함한 에너지다. 여기서 공격성은 곧바로 폭력이라는 뜻이 아니다. 잘못 쓰이면 타인을 상하게 하지만, 제대로 쓰이면 “여긴 내 선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함이 되고,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이 된다.
이 두 에너지는 일상에서 늘 섞여 나타난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게 만드는 의욕은 리비도의 얼굴이고, 마감이 다가올 때 끝까지 버티며 완성하도록 밀어주는 힘은 타나토스의 건강한 사용이다. 친구가 선을 넘었을 때 그건 불편해라고 말하는 것도 공격성을 좋은 방향으로 쓴 예다.
이렇게 보면, 욕동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연료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먼저 유머가 도움이 된다.
팽팽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농담 한마디는 답답한 에너지를 말로 풀어 긴장을 낮춘다.
단, 상대를 비꼬거나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농담은 오히려 상처를 남기니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승화가 있다. 화나 초조함처럼 거친 에너지를 운동, 그림, 글쓰기, 공부 같은 건설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경계 세우기가 필요하다. 말하기의 순서를 “사실 → 느낌 → 요청”으로 잡으면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도 할 말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제 자료가 수정되지 않았더라(사실). 그래서 부담이 컸어(느낌). 오늘 저녁 7시까지 초안만이라도 공유해 줄래?(요청)”처럼 말하는 것이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마음의 자동 기능이다.
— 억압: 불편한 욕망을 무의식에 꾹 눌러 담기
— 합리화/지적화: 감정을 직접 보지 않으려고 그럴듯한 이유나 지적 활동으로 덮기
— 동일화/이상화: 누군가를 과하게 따르고 떠받들다가, 시간이 지나 실망하는 흐름
— 승화: 거친 충동을 바람직한 행동으로 바꾸기(예: 운동, 예술, 공부로 에너지 쓰기)
청소년기에 자주 보이는 행동화, 부정, 전치 같은 미성숙한 방어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어른이 될수록 유머·승화 같은 성숙한 방식으로 바꿔 가야 한다.
이것도 결국 자아의 힘과 연결된다.
이제 이 렌즈를 들고 감정들을 보자.
이 책은 불안, 공황, 공포, 우울, 분노, 좌절, 망설임/열등감, 시기/질투를 차례로 다룬다.
- 불안/공황/공포: 불안은 “위험할지도 몰라”라는 경보음이다. 피하면 잠깐 편하지만 더 커진다.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 없이 적거나 말해 보면, 불안을 키우는 무의식의 장면이 드러난다. 공황은 과도한 불안의 폭발이므로, 우선 호흡을 가다듬고, 두려운 상황에 아주 작은 단위로 가까이 가는 연습이 도움 된다. 공포도 마찬가지다. 아예 안 가기가 아니라 조금씩 가까이 가기가 해답이다. 이렇게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 자아의 근력이 붙는다.
- 우울: 우울은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억지로 금방 괜찮아져야 해라고 밀어붙이기보다,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너무 엄격한 초자아가 나를 때리고 있는지 점검한다.
과한 자기비난을 현실적인 자기이해로 바꾸면, 작은 행동(짧은 산책, 한 끼 식사, 한 줄 기록)을 시작할 힘이 생긴다.
- 분노: 분노는 내 경계가 침해됐다는 신호다. 그대로 터뜨리면 관계가 무너진다.
이 책은 말하기의 간단한 순서를 알려 준다. 사실 → 느낌 → 요청.
“그때 약속 시간이 지났어(사실). 그래서 속상하고 화가 났어(느낌). 다음엔 늦으면 미리 알려 줘(요청).”
이렇게 하면 공격성의 에너지를 관계 회복에 쓰게 된다. 유머·승화를 곁들이면 더 좋다.
- 좌절: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막막함이다. 좌절을 자아를 키우는 체력훈련으로 보면 버틸 힘이 생긴다. 목표를 잘게 나누고, 과정 중심으로 가면 결과가 늦어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핵심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다음 행동이다.
- 망설임/열등감: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는 왜곡된 기준이 키운다. 완벽 대신 현실적인 기준을 세우고, 롤모델을 좋아하되 결점까지 함께 보자. 그러면 남의 성공이 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나의 학습 계획이 된다.
- 시기/질투: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신호다. 이 에너지를 승화로 돌려 학습·연습·작은 실천으로 연결하면, 비교의 독이 동력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연상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면,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가 보이고, 내가 매일 쓰는 방어기제와 어린 시절의 애착이 지금의 감정과 행동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가 쌓이면 자아가 힘을 얻고, 과하게 엄격한 초자아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낮아지며, 충동적인 이드의 에너지는 유머와 승화로 건강하게 돌릴 수 있다. 그래서 불안·우울·분노 같은 감정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신호가 된다.
핵심은 순서다. 이해가 먼저, 변화는 그다음. 변화가 작아 보여도 오늘의 선택을 바꿀 만큼 충분하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의자』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의 삶에서 더 오래 작동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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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입니다. 자아는 중재자입니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입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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