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력 365 - 전국민 경제 멘토 박정호 교수가 들려주는 하루 한 장 경제수업
박정호 지음 / 이든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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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력 365 – 전국민 경제 멘토 박정호 교수가 들려주는 하루 한 장 경제 수업』은 제목 그대로 “오늘의 경제가 내일의 통찰이 되게 하는” 책이다. 책을 받아 펼쳐보니,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구조가 아니라 책상 위에 세워두고 달력을 넘기듯 매일 한 장씩 보는 일력형 경제 교양서였다. 책상이 아니어도 자주 머무는 공간, 자주 마주치는 자리에 올려두고 그날의 페이지를 한 번 넘기기만 하면 되니 부담이 적다. 그렇게 매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월급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려운 시대, 투자가 일상이 된 시대”라고 규정한다.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바라봐야 하는 시대에 투자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 속에서 다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답이 거창한 투자 스킬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과 신기술, 국제 정세까지 쫓아가야 할 정보는 끝이 없지만, 결국 성과를 만드는 힘은 ‘좋은 습관’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지만 꾸준히 반복되는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철학은 책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홀수 달에는 과거 오늘 실제로 일어난 경제 사건이, 짝수 달에는 경제 사상가와 투자 대가들의 명언이 실려 있다. 과거의 사건은 오늘을 해석하는 기준점이 되고, 명언은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틀어준다. 한쪽에는 ‘사건’이, 다른 한쪽에는 ‘문장’이 놓이며 한 해를 지나는 동안 경제를 ‘흐름’과 ‘생각’이라는 두 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실제로 며칠 동안 책을 탁상에 세워두고 사용해보니, 이 책의 매력은 깊이보다는 ‘리듬’에 있다. 하루 분량은 짧다. 간단한 사건 설명, 짧은 해설, 생각거리 한두 줄이면 끝나는 날도 많다. 하지만 바로 그 덕분에 ‘매일’이라는 약속을 지키기가 쉽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눈앞에 세워진 일력의 글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한 장을 읽게 되고, 그 작은 행동이 반복되며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경제 공부를 위한 별도의 시간을 쪼개기보다, 생활 속으로 슬며시 들어와 버리는 구조다.

내용 역시 단순한 연표가 아니다. 사건이 당시 시장과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간단히 짚어 주고, 명언 페이지에서는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같은 투자자부터 다양한 경제 사상가와 경영자들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어떤 날은 내 상황과 딱 맞아 마음에 오래 남고, 어떤 날은 크게 와닿지 않는 문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왜 오늘은 이 말에 반응하지 않을까?”를 돌아보게 해서 결국 나를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꾸준히 펼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경제 뉴스를 보는 눈이다. 예전에는 기사 제목만 훑고 지나가곤 했는데, 이제는 책에서 다뤄진 과거의 사건과 자연스럽게 이어서 생각하게 된다. “그때도 금리 인상이 심리를 이렇게 흔들었지. 지금과 어떤 점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같은 질문이 떠오르면서, 숫자와 그래프만 보이던 경제가 사람들의 선택과 심리가 얽힌 이야기로 느껴진다.

물론 한계도 있다. 하루 한 장이라는 형식 때문에 어떤 날은 “조금만 더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구체적인 투자 전략이나 치밀한 실전 노하우를 기대한다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정답을 알려주는 교과서가 아니라, 생각의 스위치를 켜주는 일종의 “알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이 공부와 판단을 대신해주지는 않지만, 오늘 무엇을 더 찾아볼지, 어떤 키워드를 더 깊이 들여다볼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방식도 각자 만들 수 있다. 그날의 사건이나 문장을 읽고 관련 뉴스나 자료를 찾아보거나, 마음에 남는 문장을 따로 적어 두는 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한 달이 끝날 때 인상 깊었던 페이지만 모아보면 그 달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한 단어들이 드러난다. 금리, 인플레이션, 실업률일 때도 있고, 심리, 기대, 버블일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경제를 읽는 일은 세상의 불안과 기회를 읽는 동시에, 그때그때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박정호 저자는 여러 경제 교양서와 강연으로 이미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다른 책들이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경제 개론서라면, 『경제 일력 365』는 한 해 동안 곁을 지키는 동행자에 가깝다. 설명이 과도하게 전문적이지 않아 경제·투자 입문자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경제는 결국 습관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실제로 체험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두꺼운 이론서를 펼칠 여유는 없지만 경제 감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꽤 현실적인 선택이다. 책상 한쪽에 조용히 세워 두고 “오늘도 한 장 넘겼다”는 소소한 성취를 쌓다 보면, 경제와의 거리는 분명 조금씩 좁혀진다.

나에게 『경제 일력 365』는 경제를 어렵게 느끼던 내가,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작은 반복을 통해 점점 경제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부담 없이 습관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이야기를 접하게 해주는, 친절한 입문서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경제 분야의 책들을 한 걸음 더 편안하게, 그리고 조금 더 자주 찾아 읽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든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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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보는 기술 - 역술가 박성준이 알려주는 사주, 관상, 풍수의 모든 것
박성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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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보는 기술』은 사주·관상·풍수를 바탕으로 운의 흐름을 읽는 법을 일상 속 눈높이에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성준은 이전에 무속인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그때부터 차갑게 웃지도 않으면서 할 말은 또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에 남기도 했다. 요즘에는 강남, 이수지 같은 유튜브 채널에도 종종 나오는데, 화면 속에서 늘 같은 톤으로 담담하게 팩트를 말하는 모습이 꽤 기억에 남는다. 방송, 상담, 풍수 컨설팅 현장에서 30년 넘게 활동해 온 사람답게, 사주나 관상을 그냥 운세 풀이가 아니라 사람과 상황을 읽어내는 기술처럼 설명해 주는 점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책의 초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운이 좋아질 때 나타나는 변화와 신호’ 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 부분이었다. 저자는 흔히 말하는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이 오기 직전 오히려 시련이 끼어드는 현상)’를 운의 교체기인 ‘교운기’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운이 바뀌는 시점에는 주변 사람들이 먼저 달라진다고 한다. 새로운 멘토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반대로 인연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퇴사·이혼처럼 환경이 재배치되는 일도 모두 새 운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읽어 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감각이 달라지는 변화인데, 예전 같으면 불안했을 일을 담담히 넘기고, 갑자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거나, 집을 정리하고, 돈을 쓰는 기준이 바뀌는 등의 변화가 그 신호라고 한다.

저자는 『삼명통회』를 인용하며, 이런 큰 변화는 대개 10년 단위의 대운이 바뀌는 전환기에 몰려 있으며,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를 연도별로 기록해보면 비슷한 숫자의 나이대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조언한다. 명리의 십성은 성향을 이해하는 간편한 도구로 소개되는데, 비견은 자존심, 겁재는 경쟁심, 식신은 분석력, 상관은 표현력 등으로 풀어주어 독자가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손쉽게 짚어볼 수 있다.

돈과 관계를 엮어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 있다. 명리에서 ‘재성’은 돈뿐 아니라 소유·연애·인연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라, 남성의 경제운과 연애운이 동시에 움직이는 이유를 이 흐름으로 설명한다. 지갑 속 지폐를 가지런히 관리하는 남자는 대체로 사람도 소중히 대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반대로 돈을 구겨 넣고 다니는 사람은 관계에서도 가벼울 수 있다는 저자의 생활감 넘치는 예시가 인상적이다.

관상 파트에서는 『마의상법』의 “觀人之貌, 先看氣色 관인지모, 선간기색 = 사람을 볼 때는 먼저 기색을 보라)는 구절을 앞세워, 첫인상을 관찰하는 방식부터 귀상·부상·악상·빈천상·고상·수상·요상·위상 등 여덟 가지 상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보다 마음의 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육천상(六賤相,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남 험담을 일삼는 자, 아부에 능한 자 등)을 통해 태도와 말버릇이 결국 그 사람의 ‘진짜 관상’임을 강조한다. 표정이 전부가 아니며 잘 웃는 사람이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고, 무표정한 사람이 반드시 차가운 것도 아니라는 대목은 사람을 볼 때의 관점을 다시 세워 준다.

후반부에서는 작은 변화에서 큰 결과를 읽어내는 견미지저(見微知著)의 태도를 소개하며 전조를 읽는 힘의 중요성을 말한다. 운이 좋지 않을 때는 무리한 도전보다 공부·독서·베풂으로 기운을 순환시키는 것이 최선이라 조언한다. 명리에서 재성은 막힌 기운을 터주고 귀인을 불러오는 힘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데, 흉운일수록 나누고 베푸는 게 실질적 해법이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다.

풍수 파트에서는 부자 동네가 왜 산 중턱에 많은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고, 원룸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인테리어 방향을 제시한다. 바람·햇빛·시야·지세의 균형을 이야기하며 집의 크기가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맞추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운명을 보는 기술』은 운명을 바꿔주겠다는 약속 대신, 사람·공간·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스스로 흐름을 읽는 감각을 키워주는 책이다. 사주·관상·풍수를 믿는 정도를 떠나 내 삶의 패턴을 한 번쯤 점검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다.


'페이지2북스/포레스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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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火旣濟卦 수화기제괘 · 『주역』
이미 이룬 일에 집착하지 말고
새 시작을 준비하라.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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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좀 아는 특별반 아이들 나무클래식 12
설흔 지음, 인디고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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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감 먼저]

이 책은 처음부터 약간의 혼란을 준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를 쓴 작가가 실제 저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때문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동공지진)

서문에 있는 내용이 이 책의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인지,

정말 사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거다. 내가 삻에 찌들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건가?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더 의문이 들었던 걸 애필로그에서도 프롤로그의 연장선에서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럼 진실이었던 건가. 나를 알쏭달쏭하게 했던 책이다.

[본문 리뷰]

별관 특별반 공지가 떨어지면서, 교장이 ‘죄인’이라고 지목한 다섯 학생이 별관 301호에 모여 앉는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벌점과 벌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선생은 첫마디로 방향을 바꾼다. 이 수업은 누구를 심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약용의 실수를 함께 살펴보며 각자 자신의 습관과 실수를 돌아보는 자리라고 말한다. 위인의 업적을 줄줄이 외우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 정약용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무엇을 후회했는지를 따라가며 “나는 어떤가”를 생각해 보자는 제안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곧 교실은 질문과 토론이 오가는 공간이 된다. 한 학생이 “왜 하필 정약용입니까?”라고 묻자, 선생은 “정약용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특별반 학생들은 토끼·하이에나·까마귀·올빼미·나무늘보 같은 동물 별명으로 불리며 각자의 성격을 드러낸다. 하이에나가 빈정대는 말로 수업 흐름을 깨도, 선생은 큰소리로 혼내기보다 차분히 개념을 바로잡는 쪽을 선택한다. 궁금한 게 많지만 늘 망설이는 토끼에게는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손을 들 용기를 북돋운다. 이 반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생긴다. 열심히 토론하되 서로의 감정은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이다. 그래서 이 교실에서는 날 선 질문이나 비아냥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 뒤에 금방 실수를 인정하고 짧게 사과하며 다시 대화를 이어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수업이 깊어질수록 아이들은 ‘행간 읽기’를 배우게 된다. 선생과 학생들은 정조가 내린 교지를 함께 읽으며, 겉으로 보이는 문장뿐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뜻을 짚어 본다. 교지에는 “기이한 것에 힘쓰며 새로운 것을 구하였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있다”는 표현과 함께 정약용을 금정 찰방으로 내려보내라는 명이 적혀 있다. 아이들은 곧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왜 ‘천주교’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을까?”

선생은 당시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서 민감한 금기였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글씨를 똑바로 쓰라고 여러 차례 명했는데, 정약용은 여전히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다. 그래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라는 표현에는 왕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태도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선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약용이 실제로는 천주교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정조가 교지에서 ‘천주교’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를, 정조가 그를 아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조는 정약용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죄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진짜 이유인 천주교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이유인 ‘기이한 것에 힘썼다’, ‘서체를 고치지 않았다’를 내세워 좌천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겉으로는 서체와 태도를 문제 삼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정약용을 지키려는 정조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선생은 글을 읽을 때 적힌 문장만 보고 끝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왜 하필 이 단어를 골랐는지, 무엇을 일부러 빼고 말했는지, 그 행간과 맥락,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언어의 탐정이 되라”는 주문을 건넨다. 정조의 글뿐 아니라 앞으로 읽게 될 정약용의 글도 이런 태도로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알려 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약용의 내면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흔들렸고 말이 울었다”로 시작되는 대목에서, 정약용은 과거 급제의 들뜬 마음과 관직에서의 허영 속에서 어느새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수오(守吾)―나를 지킨다”라는 한마디가 바람을 타고 귀를 파고든다. 그는 임금에게 회초리를 맞은 일을 단순한 벌이 아니라 자신을 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돌아가면 서재의 이름을 ‘수오’라고 짓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가자, 길이 멀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이야기를 움직이는 심장처럼 계속 뛰어, 이 소설이 위대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라 실수 속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곧 ‘나를 지키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선생이 제목을 붙인 여섯 편의 글은 모두 정약용이 남긴 반성문이다. ‘함부로 뱉은 말 한마디’는 말이나 글 한 줄이 다른 사람의 명예와 불행을 바꿀 수 있으니 입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혼자 잘난 체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병’은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화내고 변명하게 되는 마음을 보여 주며,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개과(改過)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볍고 하찮은 재주’는 남에게 자랑하려고만 쓰는 글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마음의 병’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내 안의 수많은 문제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칼 같은 성격’에서는 남의 흠을 꼬집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너그럽게 보라고 권하고, ‘무조건 돌진하는 버릇’은 노자의 말처럼 겨울 시냇물 건너듯 조심조심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이 글들을 읽는 동안, 궁금한 점을 묻고 잘못 말한 부분을 바로잡으면서 수업은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침소봉대, 오불관언 같은 사자성어도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 정약용의 삶에서 특히 중요한 두 번의 고비, 1795년 금정 찰방으로 좌천된 때와 1801년부터 18년 동안 이어진 유배 시기 역시 이런 반성문과 연결되며, 선생은 이 시기들이 정약용이 자신을 가장 깊이 돌아본 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독서 방식과 토론은 후반부의 글쓰기 과제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500쪽이 넘는 정약용 보고서를 받은 뒤, 그 안에 정리된 여섯 가지 ‘실수증’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겨, 정약용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편지나 조언 형식으로 써 본다. 정조의 눈으로, 고을 백성의 눈으로, 동료 학자의 눈으로, 때로는 가족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정약용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정도로만 감상하는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의 실수와 고민을 내 시선으로 다시 이해해 보는 사람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떤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까, 오늘 밤 내 노트에 무엇을 고쳐 써 볼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게 된다.

이 모든 장면이 모여 전하는 메시지는 크지 않지만 단단하다. 실수는 숨겨야 할 흠이 아니라 고칠 기회라는 것, 잘못을 지워 버리려 하지 말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루틴이 곧 성장의 기술이라는 것,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는 말처럼 질문은 배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틀린 점을 지적하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연습이 결국 말의 온도를 바꾸고,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이 책은 교실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놓는다.

마지막에 남는 단어는 결국 하나다. 수오(守吾), 나를 지킨다는 말이다. 이 책은 완벽을 목표로 삼는 건 애초에 환상에 가깝다고 말해 준다.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진짜 힘은, 완벽을 흉내 내려는 욕심이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고쳐 쓰는 습관, 곧 수오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괜히 펜이 잡힌다. 오늘의 실수 한 가지를 적고, 그 옆에 내가 배운 점을 한 줄로 쓰고, 내일은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해 볼지 작은 행동 하나를 정해 보고 싶어진다. 질문은 배움의 출발이 되고, 사과는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 되고, 고쳐 쓰기는 나를 지키는 연습이 된다. 길이 멀어 보여도 괜찮다. 그 길 전체가 결국 나를 지키는 길, 곧 수오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천천히 깨닫게 해 준다.


'나무를심는사람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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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흔히 그러듯 성찰, 수양, 인간적 색채 등의 미려한 단어들로 포장했습니다만 제 생각에 그런 거창한 표현들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정약용도 여러분처럼 실수했으며 그 실수에 대해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고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가 특별 수업에서 다룰 정약용은 위대한 다산 선생이나 초인 정약용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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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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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프로이트의 의자』는 심리학은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 준다.

그만큼 이해하기 쉬운 예시가 가득하고,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 해주 듯, 꾸밈 없고 편안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라는 도구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일상적인 말로 설명한다.

정신분석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만든 학문이자 치료 방법이다. 정신분석은 우리가 평소 숨기거나 잘 몰랐던 생각을 말로 꺼내 보게 하고, 그 말을 통해 마음의 구조와 문제를 살피도록 돕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해답을 주입받는 느낌보다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정신분석의 출발은 자유연상이다. 카우치(누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긴 소파)에 누워, 떠오르는 것을 가리지 않고 말한다. 중요한 말만 골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모두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흐름을 해석하여 알려 준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려면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해도 될까?” 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만, 그 망설임을 넘어 뱉은 모든 말들이 분석의 영양분이 된다. 이 지점에서 정신분석은 보통의 상담과 다르다. 단순히 이렇게 해 보라는 조언보다는, 내 말 속에 숨어 있던 마음의 신호를 드러내서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왜 이런 방식이 필요할까?

우리는 생각처럼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마음도 몸처럼 아플 수 있고, 아프면 먼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들여다봐야 치료가 시작된다. 정신분석은 그때 마음을 가까이서 확대해 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이 돋보기로 보면, 프로이트가 말한 마음의 세 층, 의식·전의식·무의식이 보인다.

특히 무의식은 큰 지하창고와 같다. 말하기 어려운 욕망, 공격성, 부끄러운 기억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평소에는 단단한 문이 그 내용을 막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술기운 같은 틈이 생기면 문이 잠시 열리며 그 내용이 불쑥 위로 올라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말로 풀어내는 정신분석의 방식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또 마음을 움직이는 세 힘인 이드·자아·초자아로 설명했다.

이드는 “지금 당장 원해!”라고 말하는 충동, 초자아는 양심과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목소리, 자아는 그 사이에서 현실을 보며 타협을 찾아 주는 중재자다. 자아가 단단할수록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선택할 힘이 생긴다. 책이 계속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자아의 근력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생각보다 감정에 가깝다. 먼저 소속감이 그렇다. 우리가 메시지를 보내고, 모임에 나가고, SNS로 안부를 묻는 이유에는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다는 마음, 그 속에서 안전함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음으로 자존심이 연료가 된다. 건강한 자존심은 나를 지키게 하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게 만든다. 반대로 자존심이 약하면 다른 사람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관계가 흔들리기 쉽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동력은 자기실현이다. 결과만 조급하게 쫓기보다,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잠재력을 펼치려는 태도가 진짜 성장을 만든다. 이때 부족함과 불만은 반드시 나쁜 감정이 아니다. 잘 사용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 된다. 다만 불만을 동력으로 삼았다면, 작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으로 끝까지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소속감·자존심·자기실현이 차례로 맞물릴 때, 우리는 감정에 끌려다니는 대신 감정을 에너지로 바꾸어 삶을 움직일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욕동은 우리를 움직이는 기본 에너지다. 그는 욕동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리비도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배우고 만들고 싶게 하는 끌림의 힘이다.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로, 경계를 세우고 부당함에 맞서 밀어붙이게 하는 밀어내는 힘, 즉 공격성을 포함한 에너지다. 여기서 공격성은 곧바로 폭력이라는 뜻이 아니다. 잘못 쓰이면 타인을 상하게 하지만, 제대로 쓰이면 “여긴 내 선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함이 되고,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이 된다.

이 두 에너지는 일상에서 늘 섞여 나타난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게 만드는 의욕은 리비도의 얼굴이고, 마감이 다가올 때 끝까지 버티며 완성하도록 밀어주는 힘은 타나토스의 건강한 사용이다. 친구가 선을 넘었을 때 그건 불편해라고 말하는 것도 공격성을 좋은 방향으로 쓴 예다.

이렇게 보면, 욕동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연료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먼저 유머가 도움이 된다.

팽팽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농담 한마디는 답답한 에너지를 말로 풀어 긴장을 낮춘다.

단, 상대를 비꼬거나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농담은 오히려 상처를 남기니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승화가 있다. 화나 초조함처럼 거친 에너지를 운동, 그림, 글쓰기, 공부 같은 건설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경계 세우기가 필요하다. 말하기의 순서를 “사실 → 느낌 → 요청”으로 잡으면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도 할 말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제 자료가 수정되지 않았더라(사실). 그래서 부담이 컸어(느낌). 오늘 저녁 7시까지 초안만이라도 공유해 줄래?(요청)”처럼 말하는 것이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마음의 자동 기능이다.

— 억압: 불편한 욕망을 무의식에 꾹 눌러 담기

— 합리화/지적화: 감정을 직접 보지 않으려고 그럴듯한 이유나 지적 활동으로 덮기

— 동일화/이상화: 누군가를 과하게 따르고 떠받들다가, 시간이 지나 실망하는 흐름

— 승화: 거친 충동을 바람직한 행동으로 바꾸기(예: 운동, 예술, 공부로 에너지 쓰기)

청소년기에 자주 보이는 행동화, 부정, 전치 같은 미성숙한 방어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어른이 될수록 유머·승화 같은 성숙한 방식으로 바꿔 가야 한다.

이것도 결국 자아의 힘과 연결된다.

이제 이 렌즈를 들고 감정들을 보자.

이 책은 불안, 공황, 공포, 우울, 분노, 좌절, 망설임/열등감, 시기/질투를 차례로 다룬다.

- 불안/공황/공포: 불안은 “위험할지도 몰라”라는 경보음이다. 피하면 잠깐 편하지만 더 커진다.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 없이 적거나 말해 보면, 불안을 키우는 무의식의 장면이 드러난다. 공황은 과도한 불안의 폭발이므로, 우선 호흡을 가다듬고, 두려운 상황에 아주 작은 단위로 가까이 가는 연습이 도움 된다. 공포도 마찬가지다. 아예 안 가기가 아니라 조금씩 가까이 가기가 해답이다. 이렇게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 자아의 근력이 붙는다.

- 우울: 우울은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억지로 금방 괜찮아져야 해라고 밀어붙이기보다,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너무 엄격한 초자아가 나를 때리고 있는지 점검한다.

과한 자기비난을 현실적인 자기이해로 바꾸면, 작은 행동(짧은 산책, 한 끼 식사, 한 줄 기록)을 시작할 힘이 생긴다.

- 분노: 분노는 내 경계가 침해됐다는 신호다. 그대로 터뜨리면 관계가 무너진다.

이 책은 말하기의 간단한 순서를 알려 준다. 사실 → 느낌 → 요청.

“그때 약속 시간이 지났어(사실). 그래서 속상하고 화가 났어(느낌). 다음엔 늦으면 미리 알려 줘(요청).”

이렇게 하면 공격성의 에너지를 관계 회복에 쓰게 된다. 유머·승화를 곁들이면 더 좋다.

- 좌절: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막막함이다. 좌절을 자아를 키우는 체력훈련으로 보면 버틸 힘이 생긴다. 목표를 잘게 나누고, 과정 중심으로 가면 결과가 늦어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핵심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다음 행동이다.

- 망설임/열등감: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는 왜곡된 기준이 키운다. 완벽 대신 현실적인 기준을 세우고, 롤모델을 좋아하되 결점까지 함께 보자. 그러면 남의 성공이 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나의 학습 계획이 된다.

- 시기/질투: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신호다. 이 에너지를 승화로 돌려 학습·연습·작은 실천으로 연결하면, 비교의 독이 동력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연상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면,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가 보이고, 내가 매일 쓰는 방어기제와 어린 시절의 애착이 지금의 감정과 행동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가 쌓이면 자아가 힘을 얻고, 과하게 엄격한 초자아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낮아지며, 충동적인 이드의 에너지는 유머와 승화로 건강하게 돌릴 수 있다. 그래서 불안·우울·분노 같은 감정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신호가 된다.

핵심은 순서다. 이해가 먼저, 변화는 그다음. 변화가 작아 보여도 오늘의 선택을 바꿀 만큼 충분하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의자』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의 삶에서 더 오래 작동하는 책이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입니다. 자아는 중재자입니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입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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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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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인생록을 쓰는 법”

메리 카의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내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와 기술을 요구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인생록 쓰기를 “어떤 면에서 자기 주먹으로 자기를 자빠뜨리는 것”이라 말하고, 특히 제대로 잘 썼을 때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그만큼 쓰는 과정은 고되고 고약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수십 년 동안 그리워했던 시간과 장소가 눈앞에 뚜렷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며, 결국 인생록을 써낸 사람은 깊은 심리적 변화를 겪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런 변화가 그저 드러내기 위한 고백으로 끝나지 않게 길을 안내한다.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 사실을 점검하며 자기 목소리를 찾게 도와 결국 글이 성찰과 품위로 이어지도록 이끈다.

메리 카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기억에 대한 경계심이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강렬한 사건일수록 감정만 또렷하게 남기 쉽다. 그래서 회고록의 첫 기술은 멋지게 쓰기가 아니라 틀리지 않으려 애쓰는 일이다. 날짜와 장소, 인물을 가능한 자료로 교차 확인하고, 불확실한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는 정직함이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집필 중인 원고를 실제 등장인물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개인 기억만으로는 진실에 닿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자격을 묻는다. 요즘 유행하는 내가 느낀 대로가 진실이라는 분위기에 기대어, 기억이 흐릿한 부분을 마음대로 채우거나 멋을 내려고 사건을 보태면 독자와의 신뢰가 무너진다. 회고록의 감동은 모든 걸 다 아는 척할 때가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며 진실에 성실히 다가갈 때 생긴다. 오히려 작가가 자기 한계를 드러내며 진실에 접근하려 애쓰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기억이 흐릿한 대목을 흐릿하게 쓴다고 해서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정직함이 독자의 신뢰를 부르고, 그 신뢰가 곧 감동이 된다. 무엇보다 글을 수십 번 고쳐서야 겨우 드러나는 깊은 진실은 지어낸 장면 위에선 결코 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사실만 적나라하게 적어라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불행을 억지로 욱여넣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회고록은 자극적인 고백을 줄줄이 잇는 글이 아니다. 지난날의 아픔이 돋보이려면 ‘채찍질과 채찍질 사이의 다른 삶’을 반드시 함께 그려야 한다. 희망의 순간을 빼면 고통만 반복되는 이야기라, 잠깐은 자극적이어도 금방 질려 다시 읽지 않게 된다. 쓰는 일 자체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벅찰 수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쓰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힌 뒤, 냄새·촉감·소리 같은 오감으로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초고를 쓰면 잠시 덮어두었다가, “내가 빠뜨린 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이 장면을 어떻게 봤을까?”를 스스로 묻으며 다시 고친다.

복수심으로 쓰려 한다면 멈추고, 치유가 목적이라면 글 대신 상담을 먼저 찾으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회고록은 누군가를 겨냥한 도구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목소리다. 여기서 목소리는 말투나 단어 고르기를 넘어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나의 약점과 허영까지 드러내는 길이다. 잘 쓴 회고록은 현실의 나와 글 속의 내가 닮아 있다.

장점만 보여 주면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진다. 다정함 속의 분노, 자신감 뒤의 불안, 밝음과 함께 있는 절망까지 함께 드러날 때 독자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저자는 명랑하게 미화하는 글은 진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불리한 모습까지 인정하는 솔직함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에 내 기억을 제대로 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인생록 쓰기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우선 장면을 떠올리고 기록한 뒤, 그 장면이 사실인지 하나씩 확인하고,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흔들릴 수 있으니 오감으로 장면을 되살리고, 날짜·사람·장소를 대조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라고 한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존중하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핵심이다. 초고는 잠시 덮어 두었다가 다시 읽으며 내가 빠뜨린 것과 과장한 것을 찾아 바로잡는다. 이렇게 반복하면 과장은 줄고, 신뢰가 생기며,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저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을 쓰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평범하지만 숨기고 싶어 피하던 장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회고록은 특별한 인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억을 의심하고, 거짓을 경계하며, 불행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로 장면을 세울 때, 누구의 삶도 이미 한 편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와 정확, 용기와 품위의 언어로 끝까지 동행한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채손독) @chae_seongmo‘을 통해

'지와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집단이 옳다고 결정한 그림은 어김없이 실제 기억을 지워버린다. 원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기억 천재들만 빼고, 가족 관계와 정치적 선동의 바탕에 깔린 집단 사고의 힘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집단 사고보다 더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있다. 눈앞의 광경을 잘못 판단하는 경향이다. 시인과 음악가 들은 놀랍게도 대화를 그대로 외워버리는 재주가 있지만, 그들조차도 말투를 오해하거나 누가 한 말인지를 잘못 짚는 실수를 한다. 언쟁 중에 "대화로 해결해봐요"라고 말한 것은 크리스가 아니라 나였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크리스의 팔을 홱 뿌리쳤다고 기억한다. 내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며 "대화로 해결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학생도 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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