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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 - 주석 스님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주석 지음 / 담앤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아등바등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분이 조금 가라 앉고 있는 시점에 집안 문제까지 겹쳐 머릿속은 복잡하고 스트레스도 쌓였다.
그때 우연히 『주석 스님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 순간들』을 읽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딱 맞게 찾아온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뒤엉킨 마음을 다독여 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스님이 조용히 써 내려간 일기 같은 소박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책의 초반에서 스님은 위로가 되는 음식을 이야기한다.
꽁꽁 언 항아리에서 막 꺼낸 얼음 박힌 동치미, 여름날 할머니가 된장을 풀어 설렁설렁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 시험 보러 가는 아침마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 이 음식들은 그저 추억 속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친 마음을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고 스님은 말한다. 우리에게도 힘들 때 문득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다. 사실 그 음식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간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학창 시절, 밥을 나누는 일을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여겨서 함부로 누구와 밥을 먹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지금도 의무적으로 어울려야 하는 식사 자리는 조금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따뜻한 음식을 볼 때 누구와든 그 온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마음까지 서늘해지는 때, 마음 끓이지 말고 냄비에 따뜻한 찌개를 한 번 끓여 먹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사람을 향한 스님의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힘 나눠 갖기”에서 스님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돌아본다.
내가 더 옳다는 힘, 내가 더 잘 안다는 힘, 내 말이 무조건 맞다는 고집 같은 것들.
수행자라고 해서 이런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힘을 조금씩 빼 보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내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의 말을 들어 보면, 그제야 상대의 아픔이 들리기 시작한다.
내 손의 힘을 조금 빼고 상대의 손을 잡아 보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이 전해진다.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를 품고 쌓여 오래 버티는 돌담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힘을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남는다.
스님이 운영하는 ‘쿠무다(KUmuda)’라는 공간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이곳은 전통적인 사찰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종교 시설을 이렇게 열어 두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의 책임이 아닐까라고 스님은 말한다. 절이 기도만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들러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스님은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소개했는데, 정작 소개받은 사람은 별로라고 느끼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 스님은 그 이유를 “업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와 그 사람은 비슷한 업의 틀을 가지고 있어 잘 맞지만, 다른 사람과는 그 틀이 잘 맞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상대를 내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할 때 관계는 서서히 틀어지고 멀어진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이해’와 ‘거리 두기’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자의 글을 인용하며,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을 살면서 완벽하게 맞는 사람과 상황은 거의 없고, 우리는 맞추어 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님은 ‘오해’에서 숫자 몇 개를 덜어내고 ‘이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고 제안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 번 숨을 고른 뒤 상대를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조금씩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가르침”에서는 양관 선사와 말썽 많은 양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두가 양자를 쫓아내자고 말할 때, 양관 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에 짚신 끈을 매어 주다가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을 본 양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을 바꾸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스님은, 때로는 소리 높여 비난하는 말보다, 말없이 지켜보는 눈빛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연민할 때, 굳어 있던 마음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게 된다.
스님은 벽에 걸린 그림도 앉아서 볼 때, 서서 볼 때, 누워서 볼 때가 다르고, 내가 가진 고정된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선입견을 품은 채 사람을 대하면, 상대가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해도 그 선입견의 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카르마가 계속 쌓이고, 그 카르마가 또 다른 카르마를 만들어 결국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엔 좋은 마음이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까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인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순간 지나간다.” 라는 말이었다.
지금 현실이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불행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문장은 작은 숨 구멍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어둠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지나가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결국 지나간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너무 깊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짧은 문장을 가슴속에 새겨 두는 사람들도 많았으면 한다.
스님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낭중지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같은 한자 성어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튀어나오고,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하며, 어떤 권력도 십 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여러 장면에서 되새기게 한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에 가깝다. 힘든 시간도, 억울한 순간도, 부끄러운 실패도 결국은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과 직접 쓴 시들이 함께 엮여 있는 산문집이다.
책 곳곳에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해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고, 말은 한 번 더 삼켜 보고 내보내야 하며, 섣불리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로 스님은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를 말한다.
나만 깨닫는 길이 아니라, 나도 깨닫고 상대도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삶, 나와 타자가 함께 성숙해지는 삶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한 번 정해진 대로 굳어 있는 그림이 아니라,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 계속해서 모양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간 일에 마음을 너무 끓이기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따뜻한 찌개 한 냄비를 끓여 먹는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삶 전체가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서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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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앤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필가엄수(必加嚴守)하라.’는 말은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의 입을 엄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부처님과 조사(祖師)스님(불교에서 법맥을 잇는 중요한 승려)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성인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런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는 눈을 뜨면서 시작해 눈 감을 때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말로 인해서 생겨나는 문제를 겪고 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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