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 교리처럼 탈신화화라는 우리의 시도는 모든 거짓 안전장치를 파괴해버린다.…진짜 안전은 모든 안전장치를 버림으로써만 발견되는 것이다."

보수적인 동료들이 신약의 신뢰성을 "변호할 때, 불트만은 사람들이 가짜안전에 의지하지 못하도록 "회의주의의 불길을 활활 지피는 것을 자신의소명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이 신학자의 역사적 회의주의는 탈신화화의 기획과 일관성을 가지게 된다. 불트만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없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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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개념은 저자와 독자 사이의 공통적인 어떤 것을 포함한다. 무엇인가가 이해된다는것은 독자와 저자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해는
"저자의 입장에 자기 자신을 놓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21 - P244

해석학은 전체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만일 두 방식 중 하나만 사용할 경우 어떤 일이일어날까? 슐라이어마허의 언급에 따르면 예감적 방법만을 따를 경우 "애매모호함에 머물게 될 것이다. 비교적 방법만을 사용한다면 현학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 P247

 슐라이어마허는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러려면 텍스트 저자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동시에 언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완전한 지식이란 불가능하다" (p. 100), 따라서 이해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정이다.
(신앙에 이르는 일과도 비슷하다).
- P251

희한한 사실은 같은 시기에 사우스웰과 노팅엄의 초대 주교를 역임한조지 리딩(George Ridding)이 성직자들을 위한 장황한 회고담을 준비하고있었는데, 그 속에서 주교는 딜타이의 논점과도 유사하게 타자처럼 느끼고사고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는 개념을 정식화했다는점이다. 하지만 딜타이와 리딩은 둘 다 "타인의 감성을 자신의 것으로 측정하는 일 만큼이나 자아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강조했다. 에른스트 폭스와 만프레드 메츠거(Manfred Metzger)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경험을 절대 "추체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딜타이의 주장처럼 이런 목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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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평‘ 의 대표자들이 무조건 합리주의의 계승자인 것은 아니다. 또한 신앙고백적 정통주의 학자들이 무조건 초자연주의의 계승자인 것도 아니다. 양 진영은 모두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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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를 위시한 안디옥 학파가 일차적으로 성경의 저자나기록자의 목적과 의도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주로 독자와 독자에게 미치는 텍스트의 효과에 집중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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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와 고든 피(Gordon Fee)와 나는 더 넓은 컨텍스트를 관망하는 이러한 방법론을 지지한다. 45 도드는 바울과 다른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면서 자신들 고유의 컨텍스트로 옮겨와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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