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개념은 저자와 독자 사이의 공통적인 어떤 것을 포함한다. 무엇인가가 이해된다는것은 독자와 저자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해는
"저자의 입장에 자기 자신을 놓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21 - P244

해석학은 전체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만일 두 방식 중 하나만 사용할 경우 어떤 일이일어날까? 슐라이어마허의 언급에 따르면 예감적 방법만을 따를 경우 "애매모호함에 머물게 될 것이다. 비교적 방법만을 사용한다면 현학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 P247

 슐라이어마허는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러려면 텍스트 저자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동시에 언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완전한 지식이란 불가능하다" (p. 100), 따라서 이해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정이다.
(신앙에 이르는 일과도 비슷하다).
- P251

희한한 사실은 같은 시기에 사우스웰과 노팅엄의 초대 주교를 역임한조지 리딩(George Ridding)이 성직자들을 위한 장황한 회고담을 준비하고있었는데, 그 속에서 주교는 딜타이의 논점과도 유사하게 타자처럼 느끼고사고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는 개념을 정식화했다는점이다. 하지만 딜타이와 리딩은 둘 다 "타인의 감성을 자신의 것으로 측정하는 일 만큼이나 자아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강조했다. 에른스트 폭스와 만프레드 메츠거(Manfred Metzger)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경험을 절대 "추체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딜타이의 주장처럼 이런 목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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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평‘ 의 대표자들이 무조건 합리주의의 계승자인 것은 아니다. 또한 신앙고백적 정통주의 학자들이 무조건 초자연주의의 계승자인 것도 아니다. 양 진영은 모두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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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를 위시한 안디옥 학파가 일차적으로 성경의 저자나기록자의 목적과 의도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주로 독자와 독자에게 미치는 텍스트의 효과에 집중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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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와 고든 피(Gordon Fee)와 나는 더 넓은 컨텍스트를 관망하는 이러한 방법론을 지지한다. 45 도드는 바울과 다른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면서 자신들 고유의 컨텍스트로 옮겨와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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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교 내에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한 가지 해석의 방법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일찍이 1세기부터 (아니면 더 이른 시기부터) 히브리어 성경의 해석에 관한 여러 쟁점들이 떠올랐으나 이 쟁점들은 보편적으로 승인되는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현재에도 보편적 승인을 요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대교는 한 번도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나타난 적이 없다. 현대 유대교는 자치하고라도 랍비 유대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교, 쿰란 공동체(사해 사본을 만들어낸 공동체), 소위 묵시적 유대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볼 때특히 그러하다. 랍비 유대교 또한 단일한 그룹이 아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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