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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ㅣ 믿음의 글들 189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 홍성사
이번에 읽은 루이스의 책은 <고통의 문제>였다. 책을 펴기도 전에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우선 들었던 느낌은 반감이다. 4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신정론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변호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도 답하기 쉽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런 느낌과 동시에 ‘루이스라면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예기치 못한 기쁨>,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차례로 읽으면서 기독교 전통 교리들을 전혀 새롭게 전달하는 그의 능력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이 책 역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들어온 고통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는 이 책에서도 앞에서 말했던 책들과 주제만 ‘고통’으로 달라졌을 뿐 기독교가 오랜 시간 주장해왔던 것을 다시 끄집어낸다. ‘다시 끄집어낸다’는 표현이 적당해 보이는데 각 챕터의 제목들 – 하나님의 전능함, 하나님의 선함, 인간의 약함, 인간의 타락, 지옥, 천국 – 을 보면 더욱 그렇다. 기독교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소제목들만 보고 어떤 내용이 전개 될지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루이스는 그들의 상상대로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라는 기독교의 옛 교리”를 변증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어쩌면 딱딱하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이 옛날 교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오래된 옷을 리폼하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처럼, 내부를 청소하고 외부를 깨끗하게 손질하여 거의 새것처럼 사용하는 리퍼 가전처럼 루이스의 표현들은 고통에 대한 오래된 교리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준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여행길에 기분 좋은 여관에 들러 원기를 회복하게 해 주시지만, 그 여관들을 우리 집으로 착각하게 만드시지는 않습니다.”와 같은 표현들은 이 책에서 알려진 꽤나 유명한 문장들이라 할 수 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수천 년 동안 성도들은 고통과 관련하여 비슷한 고백을 이어왔다. 고통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다. 이러한 고백과 가르침에는 오랜 시간 쌓여 온 두께라는 것이 있다. 루이스의 치밀한 변증과 생생한 전달은 오랜 시간 교회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고백하고 가르쳐온 ‘의미론적 두께’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나는 이 책이 가진 최고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에는 분명 역설이 존재한다. 가난이 청산되어야 할 것이지만 동시에 가난한 자는 복되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서 고통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에는 분명 일말의 진리가 담겨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나 때문에, 그리고 너 때문에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과 사고 때문에 더욱 괴로운 일들이 많이 쌓이고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고통의 문제>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이 질문에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포기하기 힘든 답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은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