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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저항이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4월
평점 :
주일=안식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말씀과 교회의 전통을 따라 지키고 있는 주일에는 안식일의 측면이 분명 강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주일에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주일에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일에 다른 성도들과 말씀으로 교제하고, 식탁에서 교제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여러 가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어느 날보다 풍성하다!
교회 내에서 누리는 예배와 교제 뿐 아니라, 주일을 지키는 것을 성도 개개인의 삶과 연결해 보아도, 좀 더 확장해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안식을 취한다는 점에서)주일을 지킬 때, 나와 우리에게 무수한 유익이 뒤 따른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성도들이 주일을 지키는 모습들도 역시 많이 변했다. 바쁘게 일하지 않고서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러한 세상에서 분리될 수 없는 성도들이, 그나마 주일에 겨우 누릴 수 있었던 안식을 빼앗긴 것은 성도나, 교회나, 심지어 사회에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과 여러 저서를 통해서 현대 자본주의 세상을 향하여 거침없이 선지자적 발언을 했다. ‘안식일은 저항이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경을 보는 탁월한 통찰을 바탕으로 성도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 저항하는 것임을 힘주어 주장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의 제목이 안식일과 첫째 계명. 6장의 제목이 안식일과 열째 계명이다. 제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십계명과 안식일 준수의 관계를 통하여 글의 논지를 이끌어 간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이 쉴 뿐 아니라, 불안(2장)과 강요(3장), 배타주의(4장)와 과중한 일(5장)에 치여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이웃’을 드러나게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이고, 모든 결론으로 첫째 계명과 열째 계명을 안식일 준수와 관련하여 해석한 부분이다.
“첫째 계명이 거부하는 우상숭배와 열째 계명이 거부하는 탐심을 동일시하는 것은 거의 우연이자, 사람들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것이다. 우상 숭배와 탐심이라는 두 가지를 동일시한 이유는 이 둘 모두가 실체를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안식일은 두 가지를 모두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상품을 예배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상품을 추구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그러나 안식일은 그저 거부에 그치지 않는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이웃이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라는 실체를 꾸준히 훈련받은 대로, 눈으로 볼 수 있게, 구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안식일이 없는 실존은 우리 뜻대로 살아 나갈 궁리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상품이 쌓여 있고, 우리는 그 상품들 앞에 엎드려 절한다. 그러나 상품은 우리 손을 잡아 주지 못한다.(그러나 우리 주님은 나의 오른 손을 붙들어 주신다! 시편 73편 23절)”
얇은 책이지만, 버릴 게 없는 책이었다. 안식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할 수 있겠지만, 철저하게 바쁘게 돌아가는 경제중심의 사회에 안식이 갖는 ‘저항’적인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술술 읽히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세상이 주는 불안과 강요, 배타주의, 내일 해야 할 일에 묻혀 안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브루그만은 이러한 혈실에 처한 우리에게 용기를 가지고 저항하라고 도전한다. 안식을 위해서도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참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라면 저자의 도전에 적극 동의하며 안식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