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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양장) ㅣ 믿음의 글들 176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 루이스. 홍성사
“악마가 있는가?” 일단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정말 없는가?”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악마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아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다보면 악마가 멀리 있지 않고 나와 너무 가까이 있고 익숙해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태도, 행동이나 습관들이 인위적인 것이고 조작된 것이고 내가 속아서 그랬다는 사실에 괜히 부끄러울 수도 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편지형식으로 되어있다.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환자(신자)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조언하고 가끔은 호통도 치는 서른 한 편의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에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익숙한 사랑, 기도, 겸손 등에 대한 내용들이 등장하지만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뒤틀려 있다. 스크루테이프는 가능하면 사람들이 이런 덕목들에 대해서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비틀고, 왜곡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방법이 사람들을 속이기에 더 좋은 방법이다. 진짜와 흡사한 가짜를 만들어 유혹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세 가지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 그런 주옥같은 내용들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것이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45p
“환자는 어떤 교제권에 속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게야. 이건 단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데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고.” 64p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하는 데 있다.” 105p
이 외에도 루이스는 기독교 전통이 다루는 핵심 덕목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오용되는지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순전한 기독교>가 탁월한 변증으로 기독교를 소개했다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기독교의 덕목들이 어떤 식으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풍자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풍자는 신앙인을 반성하게 만들 뿐 아니라 기독교가 오랜 시간 가르쳐온 내용들이 쉽게 무시될 수 없는 것임을 강력하게 논증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루이스는 이 책에서도 전혀 새로운 내용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기독교인조차 몰라보고 오해했던 기독교의 가치를 드러내고 분명하게 소개했다. 루이스의 탁월함이 어떤 것인지를 잘 드러낸 이 책은 아마도 순전한 기독교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