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여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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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버린여자>. 엔도 슈사쿠. 어문학사.

 

<내가 버린 여자><침묵>의 저자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이다. 제목에 어느 정도 드러나듯이 이 책은 버린 남자 요시오카와 버림받은 여자 '미쯔'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요시오카는 대학생이자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는 남자다. 가난하지만 헤겔과 맑스를 운운하며 대학생으로서 폼을 잡으며 산다. 여자 주인공 미쯔도 가난하다. 외적인 조건은 요시오카보다 훨씬 못하다. 힘든 인생이다. 조금 뚱뚱하고 못생겼고,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사랑 많은 여자다. 이 소설은 이들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서로의 인생을 살면서 우연히 서로의 소식을 접하고, 다시 연락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남자가 느끼는 허무, 죄책 등을 잘 묘사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강력한지를 잘 보여준다.

 

요시오카는 돈이 없어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다. 그는 돈도 필요했지만 여자가 필요했다. 연애를 갈망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미쯔를 만나서 지루한 데이트를 한다.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다. 그래도 여자라는 이유로 데이트를 이어간다. 미쯔는 달랐다. 자신이 대학생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을 꾸는 것 같이 행복했다. 그렇게 서로의 다른 시간이 한 사람은 느리게, 한 사람은 빠르게 흘러 결국엔 늦은 밤이 되었다. 여자의 육체를 갈구하던 남자는 강요하다시피 잠자리를 요구하지만, 미쯔는 거절한다. 이때 미쯔는 온 몸으로 저항하다 남자가 어깨에 고질적인 통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외로움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미쯔는 마음을 열어 몸을 주려고 한다. 여차저차 그들의 잠자리는 두 번째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아주 짧고 싱겁게. 안그래도 미쯔가 탐탁치 않았던 요시오카는 잠자리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왜 그렇게 이 짓에 집착을 했는지 괴로워한다. 함께 누워있는 여자가 더러워 보였고, 어서 버리고 싶었다. 그는 미쯔를 버리듯이 했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잊어버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남자는 나쁘지 않은 회사에 취업해서 집안이 괜찮은 상대를 만나 결혼한다. 반면 미쯔의 인생은 점점 괴로워지는데 터키탕, 성인오락실을 전전하다 한센씨 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격리된 병원에 입원하고 크게 절망한다. 감사하게도 몇 달 후 그것이 오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미쯔는 병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녀와 함께 했던 환자들 생각이 그녀를 붙잡았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병원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고,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섬기며 함께 한다. 함께 했던 수녀들이 존경할 만큼, 그녀는 이미 성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는다. 미쯔는 이렇게 험한 인생을 사는 동안 요시오카를 잊지 못했다. 사고를 당하고 며칠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 잠깐 깨어나 요시오카!”를 외치기까지 한다. 미쯔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요시오카는 애써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밀려오는 허전함, 죄책감은 그도 어떻게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엔도 슈사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김승철은 엔도의 문학을 두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이라 부른다. 그의 말처럼 엔도 슈사쿠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침묵>에서 배교 이후에도 신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신앙에 대한 통념을 흔들었다. <내가 버린 여자> 역시 버림받는 사람이 버리는 사람에게 사랑의 흔적을 남기며 구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론 저자는 이 소설에서는 그런 실마리까지만 보여주지만, 이러한 주제를 침묵으로 이어가면서 배교자의 신앙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감동적으로 그린다.) 특히 소설의 처음과 끝에 사랑의 흔적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불쑥불쑥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미쯔를 처음 만나는 순간 주인공이 그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쯔는 그가 원하는 이상형도 아니었다.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할 정도의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녀의 일부 말투에서 어머니 생각이 튀어나온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흔적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으로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자신이 어떻게 통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사랑의 흔적인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무렵, 요시오카가 미쯔의 소식을 접하고 견딜 수 없는 허전함, 죄책감을 느낀 이유가 미쯔가 남긴 흔적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의 흔적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아픔’, ‘아픔과의 연대이다. 미쯔가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갑자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갑자기 어떤 음성이 그녀에게 들린다. “‘책임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이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너의 슬픔을 다른 사람의 슬픔과 결부시키는 거야. 그리고 나의 십자가는 그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그 마지막 말의 의미는 미츠는 잘 몰랐다....” 이 음성은 다시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인생을 한센씨병 환자들과 묶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가장 큰 아픔은 누구도 그들과 함께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미쯔가 그들과 함께 한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러한 미쯔의 이야기를 보면 그녀의 사랑이 요시오카의 마음에 강력한 흔적을 남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사랑이 상대방의 아픔에 연대할 수 있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침묵>이 기독교 신앙과 배교를 통하여 인간의 약함과 신앙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시하려 했다면 <내가 버린 여자>는 우리 주변에서 한 번 쯤은 접해봤을 법한 이야기를 통하여 사랑이 무엇이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나타낸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마음에 진한 울림이 있었다. 이 책을 알기 전에도 사랑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좋아했고, 종종 썼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다시 환기시킬 수 있었다. “버림받은 자가 버린 자를 구원한다는 신앙의 역설을 저자는 두 청춘을 통해 잘 보여줬다. 진지한 주제를 전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이 소설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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