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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여성의 모성 경험과 재구성
백소영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3년 5월
평점 :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 여성의 모성 경험과 재구성>
이 책 리뷰를 써보려고 자판을 몇 번이나 두들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른다. 잘 써보고 싶은데 쓸 때마다 뭔가 억지스러웠다. 아내를 많이 공감하고, 여자들의 상황을 그나마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 같다.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멋지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엄마 되기’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공감이나 쓸데없는 수식어들은 가능하면 다 빼고 간단한 책 소개와 느낀 점 정도만 써보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기독교 사회 윤리학자인 백소영이다. 무교회주의로 대한 학위를 받았고, 근래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많은 대중강연을 하는 진보성향의 학자다. 개신교를 믿고 있고 중산층에 속하는(속한다고 생각하는) 180명의 엄마들을 심층 면접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뒤틀린 ‘모성 경험’에 대해 서술하고 그렇게 부정적인 모성 경험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똑같은 ‘엄마’라고 불리지만 그 모성의 경험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이러한 경험들을 흥미롭게 분류했다. ‘모성 결여형 – 난 신이 실수한 엄마예요’, ‘자격 미달형 – 미안하다, 사랑한다’, ‘자유 부인형 – 난 이런 것 못할 뿐이고’, ‘무한 책임형 –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천상 소명형 – 엄마라는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 ‘지상 명령형 – 그리스도의 가정만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이를 통해 자기혐오로부터 무한 책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괴롭게 사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부분은 철저하게 심층 면접한 내용들과 저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보고 들으며 간접 경험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술술 넘어갔다. 내 아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정말 생생했다.
저자는 이러한 모성 경험들을 만들어 낸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가장 먼저 ‘모성’이라는 개념부터 다루는데 제목부터 도전적이다. ‘모성, 운명인가? 기획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의표를 찌른다. 모성은 엄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낳아지고 낳은 경험이 있는 모든 생명체는 공통의 능력”을 가진다. “모성은 신적 질서가 아닌 문화적 구성”의 측면을 분명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지금 엄마들이 경험하는 ‘모성’은 생득적이면서도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혼합물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모성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감정과 행동이고, 무엇이 ‘인공적으로 덧 입혀진’ 것들인지 예리하게 나누는 것은 어렵겠지만, ‘유교적 전제’, ‘기독교적 신념’, ‘현대적 제도 장치’ 등으로 현재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결론 부분에서는 대안을 제시한다. ‘공적 육아’, ‘탈 성화된 육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가족과 마을과 국가가, 엄마만이 아닌 아빠가 ‘함께’ 육아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철저하게 성별 분업으로 이분되어 있는 노동과 사랑을 공동체적 삶 안에서 통합하자”고 말한다. 개인 혹은 가정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로부터 사회 전체가 ‘서로’와 ‘함께’라는 의식을 가질 수만 있다면 시도해 볼 수 있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는 것을 외국과 국내의 몇몇 사례들을 제시한다. 끝으로 저자는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는 개인적 소망을 보여주며 시대를 거스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눈다.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사이>는 이미 많은 엄마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상상과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어디 가서 괴롭다고 하소연하기도 힘들었는데, 다른 많은 엄마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이러한 모성의 경험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로 뒤틀린 것이라 말해주니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10년 전, 20년 전처럼 육아를 ‘집에서 아기나 보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들 안에서는 그런 수준의 생각들이 소명과 같은 거룩한 말들로 포장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가치가 있고, 앞으로도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강력하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