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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공동생활 ㅣ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1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성도의 공동생활. 본회퍼. 복있는사람
본회퍼의 책들이 새롭게 번역이 되어 나왔다고 해서 온라인 서점을 통해 한 번 훑어보았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책의 디자인! 이렇게 책이 예쁘게 나올 수도 있나 싶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다 1960년대 문익환 목사님께서 번역했던 ‘신도의 공동생활’ 서문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강력하고 매력적인 소개가 있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처음에는 ‘…이다’ 식의 문장으로 옮겨 보았다. 그런데 차츰 그 내용이 너무나 간곡한 권면이라고 느끼게 되면서, 나는 이것을 편지체로 옮기고 싶어졌다.... 사실 이 책은 핑겐발데에 있는 지하 신학교의 학생들과의 공동생활의 결실이요, 그들을 통해서 전 세계 교회를 향하여 주는 극히 구체적이고도 간곡한 권면의 말씀이다” 믿을 만한 분이 이 정도까지 멋진 소개를 하는데, 하루 빨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익환 목사님의 말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간절한 권면이기에 요약도 경어체로 해보았다.
성도의 교제 – 성도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반드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모인 공동체라면 서로의 약하고 악한 모습에 실망할지라도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든든하게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통해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가운데 공동체에 주어진 약속을 붙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붙들며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 있는 지체들을 지배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합니다. 모두가 전체 교회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어떠한 차별의 논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가능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모든 공동생활의 존폐가 달려 있습니다.
함께 있는 날 – 우리는 하루의 아침을 공동(가족) 기도회로 모일 수 있습니다. 특히 시편을 통해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기도하는 법,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지, 어떻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지에 대해서 익힐 수 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함께 성경을 읽습니다. 이때 해당 본문을 성경의 전체라는 맥락 아래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무한한 내적 관계들 속에서 예수님의 증거가 좀 더 명료해지기 때문이고, 그렇게 전체로서의 성경을 연속해서 읽어 나갈 때, 우리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속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성경읽기에 이어 공동 찬송과 공동의 기도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함께 찬송하고 공동의 간구를 반복하면서 개인주의적인 기도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공동의 기도회가 끝나면 우리는 식탁교제를 통해 주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축제와도 같은데, 안식일을 회상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식탁 교제가 나만의 양식이 아니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라도 떡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 중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하루는 기도와 노동이라는 이중적인 일로 특징지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두 각각이 별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고유한 권리를 확보하는 곳에서 기도와 노동이 서로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하루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하루의 모든 생활에 질서와 규율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저녁 기도의 자리는 공동의 중보기도를 위한 자리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모든 불의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홀로 있는 날 –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정신 요양소가 아닙니다. 자기 도피를 위해 공동체를 찾는 사람은 공동체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왜곡시킵니다.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를 주의해야 하고, 반대로 성도의 교제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있으며 침묵을 배울 수 있는데, 이때의 침묵은 전적으로 말씀을 기다리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침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기도, 특히 중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원수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은혜받은 죄인의 얼굴로 변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주의할 것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과 (특히 목사라면) 적지 않은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섬김 –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마다 불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에 대항하여 진지를 구축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강자와 약자가 생긴다는 것인데, 이러한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한 악한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혀를 훈련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비할 나위 없이 소중한 형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의 소중함을 발견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다양하다는 사실도 발견합니다. 어느 지체라도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지체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고 기꺼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고, 타인의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섬김이 어렵지만, 약자는 교만을, 강자는 무관심을 경계하며 구체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섬길 때에만 우리의 모든 말들이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 고백과 성찬 – 경건한 자로서 교제만 하고 경건하지 않은 죄인으로서 교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완전히 고독한 외톨이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우리의 죄를 서로에게 고백할 때, 성도의 교제로 가는 돌파가 이루어지고, 십자가로 가는 돌파를 이룰 수 있고, 새 생명으로 가는 돌파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상대에게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죄고백은 아주 좋은 성찬의 준비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들과 화해하고, 은혜를 영접하고, 용서와 새 생명을 누립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기쁨은 완전해집니다. 말씀 아래 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은 성례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한 천재 신학자로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태도로 말하기 보다는 성도들과 함께 경험했을 구체적이면서도 따뜻한 조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어지러운 세상 중에 참된 교회, 공동체를 추구하며 그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본회퍼였기에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어느 하나 버릴 문장이 없었다.
요약에서도 나타나지만, 그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모인 모임으로서 서로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이 아닌, 오직 섬기는 공동체다. 특히 본회퍼는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함께 생활할 때 알게 되는 소소한 일들을 돕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권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공동체를 섬겼고, 그리스도를 섬겨왔기에 짧은 말들에도 힘이 느껴졌다. 특히 공동체성을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죄 고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퍽 인상적이었다. 죄 고백 역시 철저하게 개인의 경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철저하게 용서받은 죄인들의 모임이며,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모임이라 주장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시간들이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부끄러운 교회들 가운데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사유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구기 위하여 분투했던 본회퍼의 책이다. 목숨을 바쳐가며 불의에 항거했던 본회퍼, 그의 진짜 관심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명저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도의 공동생활>은 강영안 교수님의 소개처럼, 한국의 교회들이 부끄러운 모습들을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 진지하게,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읽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