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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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창비.

 

1112,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로 광화문 광장에 100만이 모인 날이었다.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아내와 온 힘을 다해서 나갔다. 종각역에 내려 올라와보니 종로 대로를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스스로 걷기 보단 떠밀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 뿐 아니라 상당수의 아빠, 엄마들이 어린 자녀들과 손잡고, 혹은 안고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그곳에 나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놓거나, 아이를 데리고 나오기 위하여 온갖 준비를 했을 것이고, 지하철을 한, 두 번식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했고, 길바닥에 아이와 함께 앉아 몇 시간씩 있어야 했고, 집에 돌아갈 땐 한 두 시간은 걸어야만 하는 수고까지 각오하며 나온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까지 광장으로 몰아갔을까? 부끄러움, 분노, 슬픔, 절망....이 중에 하나이거나, 이 모두 이거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저자 엄기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파산한 세계라 부른다. 처음엔 너무 나아간 말이 아닌가 싶었지만, 금방 수긍이 갔다. 개인이 혼자서 노력하며 살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바깥이 있어야 하는데, 바깥이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바깥때문에 개인의 존엄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당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저자는 지금, 대한민국을 파산했다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장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그 바깥의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분노했다. 젠틀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저자는 총 3장에 걸쳐 바깥이라는 구조, 시스템이 무너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리셋을 원하는 사람들을 분석하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리셋을 원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리셋을 부르는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빼앗긴 존엄과 안전을 되찾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자기를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세상 가운데 자신을 소진하면서 점점 무기력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악착같이 더 살기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조용히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욱 슬픈 일은 더 이상 소진할 것이 없을 정도로 수고해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비겁해지면서까지 조용하게 된 개인을 두고 이렇게 된 것이 순전히 그들 개인의 문제라 치부한다는 것이다. 부당한 대접을 받고 사는 것도 억울한데, 그렇게 억울하게 된 것도 내 책임이라 하니 절망하거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절망과 분노를 우울한 모습으로, 어떤 이는 과격한 모습으로 나타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상의 리셋을 원한다는 거다.

 

저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세상을 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는 근무 중에 업무와 상관없는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 이때 점주는 잠간 상황을 보는 척 하지만 금방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길 지시하거나, 오히려 손님을 화나게 했으니, 아니 손님이 화가 났으니 사과를 요구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아니오’, ‘싫어요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모욕을 선물하는 조직, 사회. 이런 세상에서 억울하면 성공해야 하고, 성공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분을 삭이고 반강제로 자신과 사회를 긍정하며 이겨보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노오력하면 노오력할수록 자신은 소진되게 되고, 다시 한 번 누군가에게 부정당하고,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곳에 존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을 담보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천인데, 여전히 세상은 그들을 향하여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란 구조에 대하여 질문할 틈을 주지 않고 저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말만 바뀌었을 뿐, 점점 공고해지는 또 다른 신분제이고, 계급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심지어 우리 사회의 일부 특정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더욱 강화 되고 있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다. 그들이 뻔뻔하게 거짓말해도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그들의 안전마저도 위협 한다.

 

무엇인가를 하면 할수록 소진되고, 가만히 있으면 부정당하는 일들을 반복하는 쳇바퀴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제안을 한다. 먼저는 인간의 존엄과 인도주의를 위해 온갖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면 절대로 자연스럽게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구 사회가 엄청난 전쟁과 학살을 경험하며 깨닫게 된 소중한 교훈 아니겠는가? 또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은 먹고사니즘에 잠식된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서로를 기능이 아닌 동료로서, 함께 협력하며 고통을 나누고, 함께 행동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주체로서 인정하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부터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희망을 볼 수 있고, 잃어버린 자유를 조금씩 확장할 수 있다.

 

한 번은 지인이 촛불 시위를 냉소했던 적이 있었다. 이미 광우병 소고기 사태 때,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분도 절망하고, 또 절망해서 이 세상이 아예 망해버리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112, 저녁 630분이 되었을 때, 그곳에 모인 100만이라는 주체들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이 이 세상 바깥, 시스템의 주인이라 착각하는 사람을 향하여 함성을 질렀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쉽게 꺼내지 못했던 아니오를 함께 힘을 모아 뿜어낸 것이었다. 그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분노했고, 너무나 슬펐고, 권력자들로 인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그곳에 나왔던 우리였는데 그 함성 후에 나는 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아 리셋하자고 모인 그곳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다. 잠간일수 있고, 그것마저 하고 마는 것일 수 있지만, 함께 아니오라고 외치니 스스로 바깥의 주인 행세를 했던 사람들이 말을 듣고, 움직였다.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노력하면 그만큼 보상 받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합당하게 존중받는 세상으로 우리가 진입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아니오라는 말로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한 문턱을 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케 보여주고, 진짜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을 건넨다. 아직,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진 나에게 참 기분 좋은 책이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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