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설교
앨리스 P. 매슈스 지음, 장혜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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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설교. 엘리스 매슈스. 새물결플러스

 

전도사, 신학교 시절, 많은 학생들에게는 비슷한 자신감이 있다. “나는 설교를 잘한다.” 아마도 누구보다 복음을 뜨거운 마음으로 전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런 자신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기억해보면 설교 실습 때 전도사님들의 설교는 하나같이 대형교회 목사님들을 따라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랬던 갓 같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신대원 1학년에 설교학 수업이 있었기에 어떠한 신학적 고민이나 깊이가 있는 설교나, 청중을 고려한 설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설교에 대한 이러한 인식 설교자는 뜨거운 마음으로 본문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 - 이 기성교회의 설교자들 혹은 상당수의 성도들에게 까지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이른바 교회 언어로 가득한 설교들로 나타나고 있고, 감정을 자극하는 설교를 설교자들이 추구하거나 청중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저자는 <여성을 위한 설교>에서 이러한 인식에 젖어있는 설교자들에게 <강해설교>의 저자 해돈 로빈슨노련한 설교자는 청중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설교를 준비할 때 청중, 특히 절반이 넘는 여성청중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조언이지만, 이 말이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자신이 그동안 교회가 성장해 온 시기에 대해서 "...설교에서 여성에 대한 농담이 일상적일 뿐 아니라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에 유용하다고 간주되던 때..."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설교에서 스포츠 예화가 수시로 등장하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한 언어들이 난무하는 현실도 함께 지적한다. ...룩한 설교시간에 어떻게 이런 일들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고 있을까? 가슴이 뜨겁고, 본문 중심의 설교를 한다고 자부하는 설교자들이라 할지라도 남성중심의 문화, 가부장적인 사회, 교회 분위기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을 듣는 다면 겸손하게 그렇구나...” 인정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닌데...’ 하거나, ‘나는 아내를 좋아 하는데?’ 혹은 여 성도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상대하는데?’ 라는 반응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남성 중심적인 생각들과 언어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결국엔 그러한 설교자들의 생각들이 여성에 대한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그대로 수용, 재생산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에게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설교 중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들을 성도들에게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단호하게 아니다는 답을 한다.(1) 그러면서 설교자들에게 세간에 있는 편견에서 벗어나 엄연히 존재하는 청중으로서의 여성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여성의 경험을 여성으로서 이해하기”, “설교를 여성이 단순히 집단적인 존재가 아님을 이해하기를 시도해 보라 도전한다.

 

이어서 저자는 도덕적 의사 결정을 위한 설교’(2), ‘심리적 온전함을 위한 설교’(3)를 통해 그동안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인 문화에 영향을 받은 여러 편견들과, 그에 근거한 메시지에 노출이 되어 일방적으로 돌봄이라는 가치를 강요받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갈 것을 요구 받아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괴로움을 받아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아예 교회를 나가는 경우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이에 더해서 저자는 설교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계명을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계속 전해야 하겠지만, 너무나 바쁘고 다양해진 삶의 모습과 그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혼자서 돌봄의 역할을 해낼 수 없고,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로는 삶을 버텨낼 수 없는 대다수의 여성들을 감안하여 설교할 것을 주문한다.

 

이어서 저자는 근대로부터 포스트모던의 시대로 지나오면서 많은 여성들 역시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수준이 올라갔고, 인식의 방법도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언급한다.(4, 5) 이러한 현실에서 그동안 침묵 속에서 혹은 그저 수용적인 인식자로서의 영성을 요구 받았던 여성들은 그러한 요구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저 설교만 한다고 해서 더 이상 억지로라도 들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거니와, 이제는 그러한 요구에 순종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된 것이다.(6) 이런 청중을 앞에 두고 설교자들이 남편에게 따뜻하게 대하며, 혹시 실수하더라도 오래 참고,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라고 하는 일방적인 요구는 결코 믿음으로의 부름이 될 수 없다.

 

이 외에도 권력(7), 리더십(8), 정체성과 역할(9)에 대해서 논하며 그동안 잘못 행해져 온 권력과 리더십으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권력과 리더십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그것을 스스로 행하는 것 역시 주저하는 경우가 많음을 이야기해준다. 또한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설교자들이 지나친 소명감을 부여해 왔기 때문에 여성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아 왔음을 말한다. 특히 가정에 대해서 우상 숭배적이라 할 만큼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여 수많은 여성들을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거나, 이급 시민 혹은 도덕적 실패자로 만들었다는 지적을 한다. 혼자 사는 가구가 절반이 넘어가는 형편인데, 설교자는 그러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에 호응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향하여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면서 교회에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10)

 

“....교회는 시한폭탄을 손에 쥐고 있다. 여성은 화가 나 있으며 그 분노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모든 여성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교회는 남성적 관점이 지배하는 곳이다....(교회는) 전체적으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제도처럼 느껴진다....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교회에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설교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청중들이 화가 났다고.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고. 이런 현상은 정말 절망스럽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저자는 기존의 설교자들에게 희망을 걸고 다시 한 번 조언한다. 설교자들이 그동안 고정관념에 갇힌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는지. 혹시라도 여성을 남성의 보조 수단으로서 말하지 않았는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은 존중을 주는지, 자신의 언어가 성차별적인지, 여성을 배려하고 있지 않은지, 청중에 대해서 무지한지를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신을 신고 “1마일을 걸어 보기 전에는 그의 문제와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한다. 대부분의 남성 설교자들이 여성에 대해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설교자들은 여성에 대해서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워낙 바쁘기도 하지만, 자신 만큼은 여성에 대해서 잘 해주거나, 잘 알고 있다고 크게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 신학교 초년생들이 자신은 설교를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수의 여성 청중들이 그렇게 배려 받지 못하는, 아니 적어도 무시당하면서까지 교회를 나오려 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많은 여성 청중들이 화가 나 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습은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이 되었다. 수많은 비혼 여성들 혹은 이혼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가정에 대해서 12주 동안 연속 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혹은 이러한 생각이 왜 틀렸는지에 대해서조차 모르는 설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지에 대해 알기 위하여 무수한 시간을 투자하고, 진지함을 갖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우리의 청중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과도한 소명감으로부터 온 잘못된 생각임에 틀림없다. 존 스토트가 말했던가? 설교는 성경과 청중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것이라고. 그동안 많은 설교자들이 다리를 만들기 전, 그 다리를 놓아야 할 곳이 어떤 땅인지 확인하지 않고 다리 만드는 것에만 너무 집중해 왔던 것 같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모든 설교자들은 교회에는 대다수의 설교자와 같은 남성 뿐 아니라 대다수의 설교자가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겸손하게 공부해야 한다. 누가 말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나도 동감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청중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그동안 남성 설교자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설교하는 많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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