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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열린 책들
책을 보고 크게 웃어 본 게 얼마만인지! 제목부터 통통 튀어 샀는데, 재밌게 읽었다. 100세 생일을 맞은 알란 칼손이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탈주하면서 생긴 일화들과 그가 살아온 100년 동안 이룩한 역사적 과업(??!!!!)들을 이야기한다. 처음엔 이 노인이 그동안 살아온 정형화된 삶에 지루함을 느껴 처음으로 일탈을 하는가 보다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사람은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도 창문을 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다소 섭섭하기도 했지만....그저 이런 사람을 책으로만 2주 정도 만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즐겁더라.
정치와 종교라면 질색하는 이 노인이 가는 길에는 고정관념,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워낙 이 사람이 그런 류의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했고, 그런 류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신념이나 종교에 대해서 과연 중립적일 수 있겠냐만, 저자는 알란 칼손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종교와 이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못하는 지를 꼬집는다. 배꼽 잡을 만큼 웃기는 장면도 나오지만, 워낙 무거운 주제가 이면에 흐르고 있기에 마냥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인용 되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자는 이 말씀들 역시 종교와 이념에 매여 사람들을 돌로 치는 세상, 그리하여 너무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사는 사람들을 에둘러 비꼬고, 비판하고, 애처롭게 하는데 사용한다. 뭐....부인하기 어려웠다.
그 뿐 아니라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 지나치게 낙천적인 모습,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나를 수없이 뜨끔하게 할 뿐 아니라, 주인공을 부럽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 정치와 종교라면 치를 떠는 이 100세 노인과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80세의 여인이 손을 꽉 잡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손을 잡고, 더욱 꽉 잡는 두 노인의 모습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관계? 세상이 아닐까 싶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손을 꽉 잡는 두 노인.
혼자서는 누구도 살 수 없는 세상, 저자는 알란 칼손을 통해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있고, 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고, 한 번쯤 창문을 넘어보고 싶단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하나 읽고 이 정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최소 본전 생각은 안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