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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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제목부터 특이하다. 그리고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도 죽지 않는 날이 무려 7개월이나 지속되면서 그 사회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사업가들은 사업가대로, 가정은 각 가정대로 죽음의 중지가 일어난 이후로 저마다 큰 문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 중에서도 경제적인 타격을 받은 장의사들과 보험회사들, 갑자기 환자가 늘어나서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 사람들이 죽지 않으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교회들의 모습은 작가의 조롱 대상이 된다. 가정에서도 문제는 심각했다. 죽지 않는 부모로 인하여 고뇌하고, 결국엔 여전히 죽음이 활동하는 이웃나라의 국경을 부모를 데리고 몰래 침범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이러한 일들을 대행해주기 위하여 마피아가 조직적으로 개입하기까지 한다. 죽음이 중지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돈과 권력 앞에 너무나 나약한 자신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변명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7개월이 지난 후에 갑자기 죽음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그래도 죽음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활동하는 자신 때문에 당황스럽지 않게 하려고 언제부터 활동하겠다고 사전 공지도 하고, 그 날 이후로 개별적으로 1주일 전에 죽음의 편지를 전달해주는 친절?을 베풀어주기까지 한다. 죽음이 활동을 멈추었을 때 난리가 났던 그 나라는 정상이 되었을까? 처음엔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게다가 죽음이 활동을 멈추었을 때 심각한 불안에 휩싸이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던 교회는 죽음이 활동을 재개한 것을 크게 기뻐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동안 자신들의 처지를 보살펴 달라는 집단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는 이유로 말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저자의 사상적인 배경이 공산주의에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과 자본가들, 그리고 종교집단에 날카로운 조소를 날리는 것이 아닌 가 싶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갑자기 반전을 이룬다. 죽음이 활동을 멈추면서 혼란스러워진 사회, 죽음이 활동을 하면서 두려움에 떠는 사회를 이야기 하다가, 저자는 죽음의 편지를 반송시킨 한 개인에게 이야기를 집중한다. 죽음은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인 50대 남성에게 반복해서 죽음의 편지를 보내지만 계속해서 반송이 되어서 오는데.... 죽음은 결국 그 남자에게 다가가고, 직접 행동하려 한다. 그러다 그의 연주를 듣고, 그와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함께 한다. 이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저자가 이 사람을 통해서 너무나도 죽음을 가까이 하고 있는 평범한 개인에 대한 묘사를 하는 것 같았다. 사회, 국가, 종교기관들이 죽음이 활동을 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방면에 한 개인은 죽음을 그토록 가까이 데리고 있으면서도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을 잠들게 할 정도로 한 사람의 일상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혼란한 사회 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된 생의 능력이라는 것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싶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그렇게 통찰력이 번뜩이고, 재미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의 평가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사회를 풍자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그리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울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도 다 알 수 없고, 온전히 다룰 수도 없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이 있는 현실이라도 피하고 싶은 주제다. 거장의 소설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저자가 조롱하는 세상에 대해서 공감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나름 흥미롭게 읽었다. 적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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