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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모든 것이 풍성해진 것 같아 보이는데, 살면 살수록 경제적인 궁핍을 느끼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에 따라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크게 줄었고, 여기저기에 아파트들과 자동차가 넘쳐나고 있고, 옷장과 신발장을 열면 입지 않는 옷들과 신지 않는 신발들이 널려 있다. 자본론이라는 책을 쓴 칼 마르크스는 상상이나 했을지 모르겠다. 세상이 이렇게 부요하게 될 줄을 말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 “상위 1%의 자본가들이 전체 부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 는 구호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수많은 시위대들에 의해 울려 퍼졌다.
굳이 미국까지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쯤은 당장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서 생활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버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굳이 통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뉴스에서 나오는 대졸자 연봉이 3천, 4천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다른 나라에 사는 건 아닌가... 하며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업을 따라 의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농학부로 입학하여 관련 회사에 서른이 넘어 취업을 했다. 늦게 시작한 일이니 만큼 열심히 하고자 했으나, 열심히 할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일들만 생겼다. 착취하는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인격적인 관계들 때문에 저자의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 그러던 중, 저자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부 고발자가 되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자신을 감싸주는 동료 한 명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다.
아. 아니다.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저자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었고, 함께 구석진 시골에서 ‘다루마리’ 빵집을 오픈할 동업자였다. 저자는 막연하게 시골에서 빵집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녀와 결혼을 했고, 자신의 빵집을 갖기 전에 곳곳에서 빵 만드는 일, 경영하는 일을 배워나갔다. 30이 넘어서 두 사람 모두가 커다란 모험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다른 빵집에 들어가 직면한 현실, 그리고 2년 정도의 견습을 마치고 빵집을 마련하려고 했던 순간에도 마주친 현실은 회사에서 겪었던 부조리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빵을 만드는 곳이나, 빵집을 만들기 위하여 돈을 마련하는 모든 순간들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벗어나있지 않았다. 하루 15시간 격무에 시달리며 쥐꼬리만한 월급에 진저리 쳐야 했고, 빵집 오픈을 준비하고,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미국에서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인한 자금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으며 저자는 오히려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자신은 자본주의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 책은 저자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 시골에서 천연누룩과 자연재배로 얻은 쌀로 만든 ‘주종 빵’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그 사업을 통하여 저자는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천연누룩이 발효하는 과정을 보게 되는데, 자본이 그와 같이 잘 썩어져야(부패해야)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으로 소상공인적인 사업, 다시 말해서 각각의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갖는 것과 지역화폐 개념을 소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본이 순환하고 부패해야 천연 누룩균이 발효되는 것처럼 향기로운 냄새를 내고,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중에서도 지역화폐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터라, 저자가 인용하는 ‘엔데의 유언’부분과 이것을 실천하는 중이라는 저자의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이타카 아워(미국의 한 지역 통화 이름)는 우리 지역의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자극하고, 새로운 일자치 창출에 일조한다. 이타카 아워는 우리의 기능, 체력, 도구, 삼림, 들판, 강 등 우리 지역 원래의 자본에 의해 유지 된다....우리는 지역통화라는 발상을 빵집 나름의 모습으로 수정, 발전시켜서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다.”
이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데 사업이 운영이나 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한 사업이 가능한 원인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꼽았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다만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자를 예사로 내서는 가게가 존속할 수 없다. 수입과 지출을 엇비슷하게 맞추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손익 분기점 달성을 이루고 나면 투자한 만큼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렇게 가게는 굴러간다. 이윤 덕에 덩치가 커지지도 않고 손실 탓에 위축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다음날도 변함없이 빵을 구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임대료가 싸다고 해서 사업이 될 거면 모든 사람이 시골에 가서 사업 하면 되겠지. 저자는 당연히 빵집이니 만큼 맛있는 빵이 필수이고, 맛있으면서도 건강에 좋은 고급 빵을 적당한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을 사업이 지속되면서도 지역 경제를 돕는 중요한 요인이라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 만큼 엄청 노력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자신이 자연친화적인 빵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장인정신을 추구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불과 5-6년 정도 빵집을 운영했을 뿐인데, 어떻게 보면 이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기엔 연차가 조금 적어 보인다. 그런데 빵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빵을 좋아하는 어떤 단골 손님의 아버지가 죽는 순간에 이 집의 빵을 먹고 임종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저자의 자랑은 읽으면서도 내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야기, 자신의 빵집 이야기를 나름 조화롭게 구성했고, 저자가 실천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약간 산만한 면이 없지 않게 있기도 하지만...저자가 해당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도 아닐 뿐만 아니라, 빵집을 운영을 하는 것 역시 대가라 불릴 정도의 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러한 구성이 저자의 반짝이는 통찰과 도전하는 마음을 전하기에 적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라는 책으로 ‘소상공인(신뢰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사업)’, ‘휴먼스케일(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사업크기)’에 대한 개념을 접했는데, 이 책은 그 개념들의 적절한 실천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고, 이러한 대안적인 삶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작년에 나왔는데, 시골 혹은 자기사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봤으면 나도 빵집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꾀나 있었을 것 같다. 난 둘다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대안자본주의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볼만한 책이다.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