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환대를 복음으로 제시하는 것의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케리그마 자체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런 결과가 만들어지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한 의도로 예수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급진적 환대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한다면, 글쎄요. 사실 급진적 환대를 약속하는 교회들은 마치 그런 환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약속함으로써 결국 언제나 자신을 파멸시키는 미덕의 범주를 암시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 우쭐해하는 곳에서는인간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정사와 권세가 늘 작동합니다.
따라서 정작 필요한 것은 급진적 ‘겸손‘입니다. -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