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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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때로는 뜨끔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위로받고, 평안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두 가지 정도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책을 읽으면서 참 멋진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분의 글을 더 많이 읽고 싶어졌다.

소박한 개인주의자.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는데 편안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물신 느껴진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적당하게 그을 줄 알아서 함부로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서 ‘적당한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이 떠올랐는데, 찾아보니 스스로를 ‘소박한 개인주의자’라고 하셨던 적이 있더라. 선을 긋는다 해서 무시하거나 무관심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글을 읽다 보면 공감을 넘어서 저자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질만 추구하는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이 글 곳곳에 묻어있다. 사람됨이 무엇인지, 사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고난, 아름다운 고향, 애정 어린 관찰과 솔직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너무나 잘 나타냈다.
“언덕방에 들어가자 곧 살 것 같았던 것은 적당한 무관심 때문이었다...그 적당한 무관심이 숨구멍이 돼주었다. 그렇다고 아주 무관심한 건 아니었다.” 49p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보고 외롭지 않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하는 대답 같아서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59p

“단순한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380p

당차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
오래 전에 박완서의 소설, 수필을 몇몇 읽어보았다. 때가 아니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분의 당참, 패기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70년대, 80년대의 글에서 한참 시대를 앞서있는 통찰과 비판을 볼 수 있다. 가부장적 사회, 물질숭배 문화, 지나친 교육열과 자식 사랑, 전체주의적 사회 등...표지에 있는 한 없이 너그럽고, 순박한 저자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았다. 박완서의 40대, 그야말로 ‘패기가 쩔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칼날을 자신에게도 들이댈 줄 알아서 지식인으로서 얼마나 괴로운지를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게 수다...이웃이 까닯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130p

“이 댁 신부가...아마 어디가 병신임에 틀림없겠는데 어디가 병신인가...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신부가 골은 좀 빈 신부려니 하고 믿고 있다. 뭔가 지독한 열등감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량 공세로 나올 수가 있겠는가” 225p

“이광수...이해할 수는 있어도 용서할 수는 없다. 그가 작가였기에, 침묵만 했어도 독자들에게 감사와 용기를 줄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작가였기 때문에 그를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없는 한 나는 내가 작가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작가라면 마땅히 그 시대의 고민을 앞장서 걸머져야 한다는 엄청난 고난의 운명 때문에 작가라는 이름이 두렵다.” 248p

#박완서 #사랑을무게로안느끼게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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