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아름다운 전태일.

이제야 봤다. 올해가 전태일 50주기라는 홍보 문구들을 보고 들으면서 ‘왜 여태 읽지 않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더 커졌다. 저자의 필력에 전태일의 삶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흔들었던 6, 70년대 평화시장에서 혹사당하는 여공들의 모습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태일은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다. 당시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다지만 그중에서도 힘든 삶을 살았더라. 배우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매를 맡으며 살았던 어머니는 죽도록 일하며 가정을 책임졌고, 남편의 폭력을 피해 어린 자녀들과 생이별 하기를 수시로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태일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꾸준하게 하기 어려웠고 구걸하기 일쑤였다. 그런 순간에도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서 빌어먹고 있는 어린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책 곳곳에 나온다.

그는 16세 때 노동지옥으로 불리던 평화시장의 보조 일꾼으로 취업한다. 정식으로 일할 곳이 생기고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신분이 되어 전보다 조금은 안정적인 위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억울한 일이 벌어지는 현장인지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19세기 영국에서 어린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십수 시간의 강도 높은 고통받던 노동 현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던 일이 판박이처럼 일어나는 곳이었다. 전태일은 놀랍게도 본인도 괴롭고 뛰쳐나가고 싶었던 자신보다 어리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장시간, 혹사를 이기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에게 약까지 먹여가며 강제로 일을 시켰던 기업주를 향하여 울분을 품었다.

자신도 고통을 받는 중에 어린 소녀들의 고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분통을 터뜨리던 그에게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다가왔다. 법대생을 대상으로 쓰인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끼고 살았다. 이해하기 어려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고 한다. 애잔하면서도 내가 부끄러워지는 한 문장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태일의 일기를 군데군데 인용한다. 그중에서도 전태일의 신앙을 보여주는 면면이 있었다. 고생하는 아이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표현, 십자가 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보수적인 목사인 내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두고 사는 것 같았다. 감히 내가 평가하는 것이 부끄럽고 숨고 싶을 정도였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211)

전태일은 노동운동을 조직하다가 결국엔 자신의 작은 몸을 던지기로 작정하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당연한 말이었지만 모두가 무시하거나 억누르고 있었던 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의 죽음에 빚지게 되었다. 그가 불어넣은 생명력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도 하루 몇 사람씩이나 죽어 나가는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현장이 많지만, 그러한 현실이 옳지 못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전태일은 그의 죽음으로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야 이 책을 읽어 부끄러웠고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 말씀을 믿기에 그의 죽음에 내가 빚졌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었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실패할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 혹시 나처럼 마음에 부담만 갖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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