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뒤에 남는 것들 - 임수희 판사와 함께하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임수희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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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뒤에 남는 것들>. 임수희. 오월의 봄

 

최근 1-2년 사이에 회복적 정의란 말을 종종 듣는다. 방송에서도 본 적이 있고 교회를 섬기는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1974년 캐나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청소년 범죄 문제를 다루던 두 명의 보호 관찰관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 점차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연구와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잘못은 피해를 만든다. 그러므로 처벌이 아닌 피해를 치유하는 회복이 곧 정의다. 회복적 정의는 치유와 화해를 부르는 정의다” (회복적 정의와 관련하여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이란 곳에서 역사, 정의, 연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소개를 하고 있으니 한번 보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kopi.or.kr)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은 회복적 정의를 연구하고 재판과정에서 적용하고자 10년 정도를 꾸준히 노력했던 임수희 판사의 칼럼 모음집이다. 경찰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검찰단계, 재판단계에서 어떻게 적용했는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주고 그것이 갖는 의미, 더 나아가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에 대한 저자의 바람까지를 다룬다.

 

일단 하면 일반 사람들에는 딱딱한 느낌을 준다. 나 말고 다른 유명인들의 재판이라면 모를까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은, 가능한 피하고 싶은 것이 재판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이 치유, 회복을 목표로 하는 형사재판과정을 다룬다 한들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느꼈다. 나하고 이것이 무슨 상관? 뭐 이런 느낌 말이다.

 

책을 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선한 오지랖(?)으로 충만한 저자의 글에 매력이 있었다. 재판도 역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법대로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저는 일단 숨을 한 번 크게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끄덕끄덕하며 천천히 아이 엄마의 마음을 공감해주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괴로웠을지, 걱정되었을지, 불안했을지, 그리고 아이를 돌려받고도 얼마나 화가 났을지, 계속해서 얼마나 불안하고 반복되는 공포를 마주했을지, 그래서 전화도 연락도 아무것도 못 할 만큼 얼마나 두려웠을지, 나아가 얼마나 그 아빠에 대한 원망이들지, 실망스러울지, 앞으로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고 답답할지, 얼마나 좌절스러울지, 고통스러울지……. 그래서 아이 엄마의 얼굴이 굳고 일그러지고 저절로 몸이 피고인석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판사로서 법정에서 잘 보아주고, 잘 들어주고, 잘 알아주어야 했습니다. 34p

 

책을 읽는 내내 눈에 띄었고, 마음을 동하게 했던 것은 단연 저자의 마음 씀씀이였다. 형사사법절차에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는 경찰, 검찰, 사법부의 일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을 응보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것 만큼이나 그 과정까지 오게 된 피의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알아주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저자는 덮어 놓고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회복적 사법이 최고라 말하지도 않는다. 응보적 사법제도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과 필요한 점을 언급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갖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또한 응보적 사법제도가 확립된 상태에서 회복적 사법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피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들은 피해자의 곤경이 아니라 자신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형사절차의 복잡성과 범죄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재판과정으로 인해 자신의 법률적 상황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208p

 

불안정한 조건하에서의 회복적 사법의 적용은, 자칫 피고인의 인권침해로 이어지거나, 피해자가 참여자 지위를 넘어서서 절차를 주도하고 휘두를 위험이 있고 그 결과 종래 형사재판에 의해서라면 국가도 지우지 못할 수준의 과도한 부담이나 처분을 피고인에게 강요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응보사법의 확립이야말로 회복적 사법이 가능한 조건이자 회복적 사법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지요. 249p

 

조금만 주변을 살펴도 송사에 관련되어 싸우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피해자이든, 피의자이든 모두가 괴롭다. 어찌 되었든 재판까지 갔으니 결판이 나야 하는데 끝나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고 판결이 내려져도 그것이 정말로 끝이 나질 않는다. 그 파장이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오래오래 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막장까지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엔 경찰서에, 검찰청에,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얼마나 무섭고 막막할까? 형사사법제도가 갖는 한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 중에, 정작 중요한 나와 상대방의 '관계'나 '피해 회복'이 사라져 버렸을 때 합법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 정말 중요한 것을 다시 짚어주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선 회복적 사법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고 이것의 제도화에 대한 당위성을 쉽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읽다 보니 불가능한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실현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었고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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