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총새에 불이 붙듯 - 말씀으로 형성된 하나님의 길에 관한 대화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복있는사람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내가 읽은 신앙서적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소중한 책이다. 우리의 신앙이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내려야 함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제목이나 “다윗의 삶에는 기적이 없었다.” 는 책 표지에 있던 강렬한 문구까지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책을 읽은 이후로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한 길 가는 순례자>와 같은 책들, 그의 유일한 주석이었던 <사무엘서 강해>, 그의 평생의 역작 <메세지> 성경, <현실, 하나님의 세계>와 같은 그의 신학 책들, <유진 피터슨>과 같은 자전적 책까지 참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의 설교를 접해본 기억이 없다. 실제로 그가 설교를 출판한 적이 없었던 것인지 설교집이 나왔으나 내가 읽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읽은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설교집’이었다. 물론 그동안 쏟아낸 수많은 책들이 그가 해왔던 설교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가 했던 많은 설교들이 그의 책들에 스며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살 때부터 약간은 설레었고 하루에 한 편씩, 약 두 달 동안 흥미진진한 소설책 읽듯이 읽었고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처럼 마음의 귀를 크게 열고 하루에 설교 한 편씩 천천히 읽었다.
이 책에는 모세, 다윗, 이사야, 솔로몬, 베드로, 바울, 요한과 함께하는 마흔 아홉 편의 설교가 있다. 그동안 그의 책들에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시 살아난 성경의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보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렇게 살아난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성도들에게 가져가는 목회자 유진 피터슨을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설교, 한 문장, 한 문장 사이에는 목회자로서의 저자가 성경과 성도들 사이를 오가며 어떻게 다리를 놓았는지, 그 다리를 놓기 위해 얼마나 수고 했는지, 그리고 그 다리 놓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그의 호흡이 묻어있다.
그의 다른 책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성경을 사랑했고 묵상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설교 곳곳에 자신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얼마나 존중하는 지를 직접 표현한다. 각 설교에서 성경을 개론식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특정 주제가 ‘전체 성경’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전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설교들에는 절대적으로 성경 이야기가 많지만 성경 자체에 대한 강조도 적지 않다. 성경 속을 휘저으며 성도들이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다. 동시에 성도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순간순간 본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설교가 온통 성경 이야기, 성경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성도들, 성도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평생의 관심은 ‘하나님’이었지만 동시에 ‘일상’이었다. ‘성도들의 일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오만 가지 일상을 살아가는 성도들 개개인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자리라는 것을 일깨운다. ‘사랑’, ‘기도’, ‘공동체’, ‘용서’ 등의 주제를 강조하고 무엇보다 성도들의 ‘말’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말이 판에 박힌 ‘종교’적인 수사로 굳어져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을 먹으라>, <비유로 말하라>와 같은 책에서 저자의 생각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설교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듣고 기다리는 삶, 주의하고 흠모하는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성령께서 숨을 불어넣으셔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형성하시도록 시간과 공간을 비워 놓는 이 삶을 교회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우리의 습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깊이 박힌 길입니다....이 반복이 지루해져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지속될 무엇을 위한 길을 내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한 삶 안에 우리의 삶을 두는 행위이고, 창조와 구원의 영광에 굳건하게 우리를 두는 행위입니다. 신실하고 지적이고 경외에 찬 예배는 우리를 진짜와 계속 접하게 해줍니다. 아멘.”
30년간 한 교회에서 꾸준하게 설교하며 그가 소망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다. 20세기 후반 미국이라는 배경 아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형성하기 위한 공동체 만들기.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 보면 문득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목사, 뭘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성경에 뿌리 내린 깊이 있는 설교를 즐길 수 있었던 즐거움도 컸지만 목회자란 성경과 성도들 사이를 오가며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란 걸 다시 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정한 회중을 대상으로 한 설교라 그 뉘앙스를 살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오랜 시간 유진 피터슨의 글을 번역해온 양혜원 선생의 번역이라 그런지 어떤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지만 특히 목회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목사의 정체성, 목회라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목회자라면 이 설교들을 통해 분명 중요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