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문예출판사.

전체 요약

 

랭든 길키 서문

동시대의 저작에는 서문이 필요 없다....60년 전에 집필된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

그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먼저는 사회 제도는 물론 도덕 관습과 규칙이 진보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적 국가, 민주주의적 정치,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관계에서 권력과 부, 지위, 안전을 추구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이 유례없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개인의 도덕적 행위와 집단의 행동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에서 집단의 이익이 불가피하게 지배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낙관주의자등에게 훨씬 더 급진적으로 비춰졌을 것인데, 이성과 종교, 심지어 자유주의적 종교조차도 문화의 다른 영역이 그러하듯 분명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최고의 이성과 가장 진보적인 종교라도 집단 이기주의에 저항했던 것보다 집단 이기주의를 훨씬 더 정당화할 수 있고, 적잖게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이 니버의 역사인식이다. 그는 역사의 의미는 최종적으로 신과 신의 능력, 신의 의로움, 무엇보다 신의 은총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니버는 분명 현실주의자였지만,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의 실재와 목적, 신의 통치 등이 그 의미의 유일한 근거라는 것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이 책을 니버 사상과 격동의 세기에 일어난 사건의 흐름 속에서 읽는다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1장 인간과 사회. 함께 살아가는 법 요약 -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바라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원은 정해져있지만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갖기를 원하는 인간은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밀한 집단을 만들었고,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집단과는 항상 대립과 갈등을 만들었다. 역사는 이러한 집단들 사이에 정의와 평화라는 수준에 이르기 위한 노력들을 기록하는 부질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은 언제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 특히 도덕가들은 이러한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집단의 이기성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과 그것을 극복한 역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집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정의를 추구하되 비폭력적인 강제력을 인정해야 한다.

 

2장 사회생활을 위한 개인의 합리적 원천들 요약 -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지성을 확대함으로 불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정말로 그러한가? 잘못된 전통과 미신들이 제거되어가고 있지만 사회 안에 불의는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성의 힘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정의에 기여하는 것은 맞다. 사회적 조화를 위해 개인의 욕망에 제한을 가하고, 이성이 전체 공동체의 측면에서 개인의 요구나 주장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이 정직하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권력층과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부조리들이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성에 의해 분석대상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성이 동원되는 경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는 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어렵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해관계 앞에서 이성은 철저하게 무력하다. 사람들은 일반의 이익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이익에 대한 이해만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수준 높은 합리성을 획득할 수 없다. 벤담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인간들의 행복의 총합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좋아한다.” 인간의 본성이 이러한데 그러한 인간들의 집단이 점점 커진다고 생각해보라. 이들은 어떤 사회적 제재도 물리칠 수 있다. 이들은 순간적인 충동 및 직접적이고 무반성적인 목적과 연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류의 지성이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발전의 정도가 기술의 진보를 통해 야기된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한 만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3장 사회생활을 위한 개인의 종교적 원천들 요약 - 종교란 절망의 끝에 세워진 희망의 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종교적 희망들은 현대 사회의 아주 복잡하고 정치적인 문제들 앞에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종교가 강조한 거룩함도 그렇다. 오래 전부터 종교는 신성한 거룩함과 세속의 어두운 면을 대조시키기를 즐겨했는데, 이것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인 무관심으로 이끌었다. 또한 동기를 중요시 하는 태도 역시 사회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해롭기까지 하다. 현실에서 종교가 이토록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은 국가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법에 복속할 것을 요구하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이며, 지나치게 감상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도 그렇게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회의 잔인성과 불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순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4장 여러 민족의 도덕성 요약 - 개인이 도덕적이기는 쉽지만 사회가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국가는 이 명제가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많은 이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장밋빛 미래를 섣불리 예견하곤 하지만 동신 수단과 지적 능력의 발전이 국가 간의 도덕성 확립에 기여할 조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공산당이 다수인 나라들이나 민주,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를 수 있으나 둘 다 비도덕적인 것은 매한가지다. 어느 나라에든 국가를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지만 국가는 그런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손쉽게 바꾼다. 안타깝게도 애국심을 인류애로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데 이는 인류 공동체에 대한 충서임이라는 것은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유익을 중요시 하는 인간 본성은 제국주의적 침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누리는 것에 기꺼이 면죄부를 발행한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도 제국주의적인 동기와 야심을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표출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의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선전했을 뿐이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은 개인보다 국가의 경우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현실이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국가에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약간의 실제적인 국제적 공헌을 하는 것뿐이다. 개별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되 보다 보편적 가치가 있는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5장 특권 계급의 윤리적 태도 요약 - 어느 사회에나 사회적 특권의 불평등은 존재했다. 이러한 불평등은 계급을 분열시켰고, 각 계급을 연대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불평등은 현대 사회의 계급을 만드는데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인 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위선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누리는 특권들이 사회 전체의 선을 위해서 정당하다고 포장하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진 특권이 없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까지 하는데 특히 그들의 무능을 자주 언급한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옳지 못한데 특권 계급은 언제나 다른 계급들이 자신들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차단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권력 상실 혹은 약화를 싫어하기 때문인데, 불평등한 권력이 그들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원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한에서 그들의 자원을 분배하거나, 향유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실 그것도 그들이 도덕적 만족감이나 자신의 탁월함과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그들의 권력에 집착하는지는 국제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보여주는 가차 없는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 출신이기에 사회의 정의가 얼마나 절박한지 느끼지 못한다. 흄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두고 정치 현실에는 항상 참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계급적 특권에서 비롯되는 사회 불의를 도덕적 설득이나 설교만으로 치유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6장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윤리적 태도 요약 - 정치적으로 각성된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면 아마도 도덕적 냉소주의와 이상주의적 시각이 결합된 형태가 나타난다. 이러한 생각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평가를 하는 자들과 뚜렷한 대립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그들 사이에도 상당한 혜택을 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다. 계급을 가장 충성해야 할 공동체로 바라보는 이들 사이에서도 특권계급과 그렇지 않은 계급이 나뉘는 모순을 갖는 것이다. 심지어 프롤레타리아를 중요시 하는 러시아에서 (이후 중국) 나타나고 있는 복수의 정치는 너무나 잔인하다. 그들의 생각은 종교적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이상적인데, 그들은 현재 사회에는 보존할 가치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미래에 대해 지나친 낙관적이다..그들의 현실에도 특권과 특권층이 존재하면서 엄청난 불평등이 뒤따르고 있다.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상대 권력이 필요하다.

 

7장 혁명을 통한 정의 요약 - 폭력이나 혁명을 본성상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잘못된 견해에서 비롯된다. 폭력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비폭력은 선하다고 보는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보편적이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간디의 영국 면화 배격 운동은 결과적으로 맨체스터 지방의 어린이들을 영양실조로 몰고 갔다. 또한 가장 친밀한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는 강제적인 수단이 불필요할 수 있으나 집단 간의 조화, 정의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 정치를 위해 윤리를 양보하고 사회적 결속을 위하여 불가피한 수단으로서 강제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비폭력적 강제와 폭력적 강제, 혹은 정부가 사용하는 강제력과 혁명가가 사용하는 강제력 사이에 절대적인 구별을 짓기 어렵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산주의 이론은 생각보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냉혹한 현실론자인 레닌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보기 드문 감상주의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적 이상주의에 있어서 절대주의는 영웅적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지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실 상황에서는 위험천만할 뿐이다. 개인이 아닌 사회가 절대적인 것을 얻고자 달려들면 수백만의 생명과 재산은 하루아침에 위험해진다.

 

8장 정치적 힘에 의한 정의 요약 - 현대 국가들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연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치, 경제 권력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경제 권력은 정치권력보다 앞서고, 정치적 평등주의의 형태와 원리마저도 자신들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런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 교육, 전문지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그것들은 지나치게 의지할만한 것들이 못된다. 이 사회의 중간층 특히 지식인, 교육가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조금만 살펴도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그들도 권력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지식을 사용하고 교육에 이용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경제 권력들의 막강한 힘과 그 이외의 다른 여러 세력들의 힘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단일한 정치 세력은 존재할 수 없다. 합리적인 평등 사회를 추구하는 이상은 좋지만 그와 같은 목표에 점진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9장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의 보존 요약 - 지나친 정치적 현실주의는 현실을 더욱 전쟁 상태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도덕가도 이와 못지않게 위험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대의 모든 사회적 평화에 내재되어 있는 불의와 강제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의와 강제력은 언제나 은밀하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내재되어 있고, 때로는 공공연하기까지 한 불의와 강제력에 대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리력 행사를 기준으로 하여 폭력적인 대응, 비폭력적인 대응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에 장점과 단점이 있고, 폭력을 기준으로 폭력적인 저항이 옳지 못하고 비폭력적인 저항은 옳다는 도덕적 판단은 옳지 않다. 각각의 저항으로 인한 결과는 모두 정신적, 물리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의한 세상에서 분노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인 방법을 통하여 저항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때 도덕적인 이상, 종교적인 감화, 통찰은 사회가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하게 되는 것에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적에게 있는 악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볼 수 있고, 심각한 갈등 중에도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랑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통찰이나 유익들마저 대부분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특권 계급의 전유물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0장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갈등 요약 - 사회의 요구와 양심의 요청 사이에는 여간해서 화합하기 힘든 지속적인 모순과 갈등이 있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고, 개인을 중심에 놓는다면 이타성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덕의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집단들의 관계로 옮겨갈수록 이기적 충동은 사회적 충동을 누르고 득세한다. 아무리 강한 내적 억제도 이기적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집단들 사이에서 강력한 구원을 제공할 만큼 일관되게 이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집단의 이해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개인이 다른 집단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를 할 순 있으나 그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순수한 무욕의 도덕을 집단적 관계에서 실현시켜보려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엄격한 도덕적 훈련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심성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이 늘어나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인간 집단이 완전히 정의롭게 될 수 있다는 환상은 매우 가치 있다. 이것은 맹렬한 환상주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환상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전에 이성이 그것을 파괴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옮긴이의 글 개인들의 비이기성은 국가의 이기성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니버의 전제이자 제 1명제다. 니버의 논조대로 하자면 도덕성과 합리성을 회복함으로써 사회를 구원하자는 말인데, 이는 안일한 논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정말로 놀라운 통찰력과 탁월한 상상력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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