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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임혜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유명 블로거이자 작가인 저자는 기이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성경에 나오는 여성 관련 구절들을 직접 살아보자는 것. 이 책은 저자가 그 기획을 실제로 실천하면서 겪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한 달에 한 가지 덕목을 정하여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실천들을 시도한다. 제목을 보면 대강 짐작해 볼 수 있다. 온유, 살림, 순종, 용맹, 아름다움, 정숙, 순결, 출산, 복종, 정의, 침묵, 은혜. 제목만 보면 은혜롭기까지 하다. 얼핏 생각하면 성경적 여성에 대한 기존의 주장을 삶으로 체험하고 은혜롭게 간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주장하는 ‘성경적 여성’이란 없다.” 앞의 문장만 본다면 저자의 주장이 지나친 것이 아닌 것인지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성경에는 실제로 여성을 향한 명시적인 요구들이 많으니까. 저자가 황당한 기획을 시도해 본 것이 바로 이러한 합리적인 의구심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성경에 있는 그 요구들이 정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 여성’에 대한 생각(편견)을 강력하게 지지해주는지 혹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지를 꼼꼼하게 따져본다. 일단 저자가 취한 방법은 성경에 나오는 요구들을 문자적으로 실천해 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이 되어보기, 레위기에 나오는 생리 관련 정결법을 실천해 보는 것 까지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실제로 이러한 요구들을 각자의 방식 – 이것이 중요한데 성경을 최대한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 으로 이미 실천하고 있는 몇몇 교회들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실천해 본 성경 구절들이 정말로 기존의 생각들을 지지 해주는지를 여러 자료들과 성경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해석한다. 저자는 이러한 이중, 삼중의 검증을 통하여 남성, 가부장제를 토대로 만들어진 ‘성경적 여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남성 편의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실제로 그것이 작동되는 곳에서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유쾌하게 폭로한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유쾌하게’.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냉소와 욕설만 가득하다면 설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나치게 무겁거나 냉소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 특유의 발랄함으로 각 챕터마다 해당 주제와 관련한 ‘성경적 여성’에 대한 주장들을 반박한다. 이러한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성경으로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현실을 꼬집고 반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물론 이 책은 적당한 선에서 교회 안의 페미니즘을 다룬다. 성경이 명령하는 아름다운 미덕들은 단지 여성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실제로 그런 미덕들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점. 이런 요구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 뿐 아니라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 등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주장들이다. 페미니즘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낙태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데 아마도 복음주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좀 더 용기를 내서 이 부분까지도 이 프로젝트에 넣었으면 어땠을까 했지만....그러면 책이 덜 팔렸을 것 같기도 하고....뭐 이런 생각도 해봤다.
교회 안에는 엄연히 성차별이 존재한다. 교회 밖의 성차별도 문제이지만 교회 안의 성차별은 성경을 근거로 신적 권위를 내세워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줄 선생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선생님이나 가르침들이 처한 상황에 비해 너무나 적다. 이런 시기에 함께 재미있게 읽고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책이 나온 것 같아서 반가웠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