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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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속도를 내어 부지런히 많이 읽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두 달 동안 열 몇 권을 읽었다. 하라 료의 사와사키 시리즈 전부, 챈들러의 필립 말로 첫 번째인 <빅 슬립>, 존 르 카레의 카를라 3부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오너러블 스쿨보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종이책으로 프랑스 작가 장마리 드 라 로블레스의 브라질 소설(!)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 글리고 세 번째 읽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추돌스).

다 무언가를 써두고 싶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또 막막해서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의 아내처럼 마음 속의 상자에 그냥 넣고 뚜껑을 닫았다…

세 번째 읽는 추돌스가 여전히 가장 맘에 든다. 장편소설인데도 모든 문장이 딱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 맞춰져서 단 한 문장이라도 빠지면 덜한 소설이 될 것 같다. 마지막의 베를린 장벽은 또 먹먹하고. 또 스마일리가 이렇게 못된 작전을 짰다니 카를라릉 찾기 전부터 카를라 저리가라 아닌가 화가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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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혼모노
성해나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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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김기태의 다른 소설들이 궁금해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는데 <일렉트릭 픽션>만큼 산뜻하지 않은 데다가 어쩐지 지루해서 후기가 ’재밌다’로 도배되다시피 해서 찍어놓았던 이 책을 읽었다.

첫 작품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읽을 때만 해도 내가 다른 작가를 읽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김기태의 소설 중 아이돌 그룹이 주된 모티브가 되는 작품이 있어서 더 그랬다. 요즘 작가들은 쓰는 게 비슷한 건가 싶을 정도. 그런데 두 번째 <스무드>에서 그만 ’뻑 갔다’. 아니, 이런 걸, 이렇게, 쓴다고? 이어지는 <혼모노>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까지 거의 숨 쉬는 것도 잊고 읽었다.

오랜만에 쫀쫀하게 잘 짜인, 진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 일곱 편의 소설이 다루는 소재들이 각양각색인데 매우 시의적절하고 세태를 잘 드러내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 소재들을 얼마나 연구했을지 세부적인 것들이 ‘소설’같지 않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결말이다. 아무런 기대가 드러나지 않는, 마치 마침표가 없는 듯한 결말들. 반짝임은 사라지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물론 아니고.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을 때는 소설이 너무 시대와 세태에 딱 달라붙어서 오래 읽히려나 싶었는데 이 소설은 일단 재밌어서 아주 나중에라도 읽힐 것 같다. 묘하게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기가 꺼려진다. 실망할까 봐.

사족) 이상문학상 심사 개요에 서른 편의, 일종의 롱리스트 작품 목록이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심사 어떻게 하신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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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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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몇 년 전 저작권 문제로 다소 소란스러웠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간접적) 여파로 올해부터 주관사와 책의 출판사가 바뀌고 표지도 살짝 바뀌고 책을 사 보니 구성도 바뀌었다. 아무 문제가 없이 20년 전과 똑같은 출판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고 책으로 묶어 냈다고 해도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면 책의 모습이 좀 변하는 것도 당연한데 마치 어제 읽었던 책이 오늘 바뀐 걸 손에 든 듯한 느낌이 잠깐 들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맨 앞에 실린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을 읽으면서 아, 소설도 20년 전과 달라졌구나 싶었다. MZ 페미니스트 딸이 ‘85민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뼈대로, MZ 페미니스트 세대가 ‘85민주‘ 세대를 평가하고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서 새로운 혁명의 방향을 보여준다. 시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85민주‘ 세대와 훨씬 가까운 나의 세대도 이제 지나간 시절의 일부로 역사에 한 발을 담갔구나 싶은 것을 이 한 편의 소설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어서 실려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평론은 ‘소설가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평론가는 20년 전과 똑같구나‘ 싶었다. 머릿속을 이론으로 가득 채워놓고 작품을 이론에 맞추는 건지 이론을 작품에 맞추는 건지 자기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평론이란 건 원래 그런 건지 문장은 왜 또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건지 어떤 문장은 몇 번을 읽어도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걸로 문해력 테스트를 하면 점수가 형편없겠는걸.

이어지는 우수상 수상작들은 충격이 덜 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와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단편소설이라면 이런 것이다‘라는 나의 막연한 감에 잘 들어 맞아서 그럭저럭 편안하게 읽었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도 형식을 그러했으나 나에게는 영 껄끄러운 퀴어가 소재로 전면에 드러나 있어서 조금 불편했고(사족을 달자면,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라 호오好惡, 즉 취향의 문제이므로. 그리고 이 ‘취향‘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가 불편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의 고민이 바로 나처럼 주장하는 사람 때문에 더 힘들고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과 최민우의 <구아나>는 산뜻하다. <구아나>에 삽입된 가상의 단편 애니메이션 ‘구아나‘는 어쩐지 살면서 어떤 국면에서 꺼내볼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유의 경구 뒤에 ‘구아나!‘라고 외치면 될 것 같다.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이 나는 가장 좋았다. ‘저도 일렉트릭 기타를 좋아합니다‘ 한 줄에 담긴, 소심한 우리들이 내주는 작은 마음의 연대. 작가와의 대담도 이 작가의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상은, 이 여섯 편 중에서라면 <그 개와 혁명>에게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대상‘ 씩이나 받으려면 어떤 튀는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그 개와 혁명>에 있다.

다 읽고 난 후 ‘지금, 이 시대의 소설‘과 소설이 그리는 ‘이 시대‘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 생겼다. 예전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상문학상 단편소설의 인물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을 것 같은, 그러니까 20년쯤 후에 읽어도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지금 이 시대와 너무 딱 달라 붙어있다(문지혁과 정기현의 소설은 예외). 그래서 30년 후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 읽으면 이 시대의 ‘세태기‘라는 감상뿐일지도 모르겠다. 바꿔 말하면 30년 후에는 이 소설집을 일종의 ‘역사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지혁의 소설이 다루는 계급의 문제는 언제든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기(같기?) 때문에,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섬세한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와는 결이 다르겠고.

아무튼 잘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이어서 읽고 싶게 하니까 좋은 책, 맞다.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찐 사족)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소설이 절반이다. 이런 건 왜 마음에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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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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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딜레이니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 된 <바벨-17>과 <노바>를 모두 읽었다.

음. 내 타입은 아니다. 뭔가 매우 잘난 (척하는) 작가라는 느낌. 세계는 방대하고 묘사가 현란하며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은 묵직하다. 둘 다 쉬엄쉬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바벨-17>이 읽기에 조금이라도 수월했다. 주인공 한 사람만 쫓아가먄 됐으니까.

<노바>는 처음부터 <모비딕>을 떠올리게 했다. 신체에 커다란 상처가 있으며 하나의 목표에 집착하는 외골수 선장을 세상에 대한 순수한 눈과 호기심을 간직한 소년이 따르게 되면서 선장은 멸망하고 소년은 자란다…

노동에 대한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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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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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사냥, 어업 같은 일에 종사 하는 인구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서, 사람들 대다수는 노동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자는지 같은 방식-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갔어. 애슈턴 클라크는 이런 괴리가 인류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준다고 지적했어. 신석기 시대 혁명 기간 동안 인류가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고, 본인이 선택 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면서 키워온 자제력과 자기 책임 능력을 이 괴리가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 거야. 애슈턴 클라크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래로 그런 위협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어. 애슈턴 클라크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야. 기술 사회가 크게 발전하면 인류의 노동과 인류의 생활 방식은 돈 문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게 돼. 인간은 일을 통해 무언가에 변화를 가하고, 물건을 만들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이쪽에 있던 걸 저쪽으로 옮기면서 살고 싶어 하거든. 노동에 에너지를 쏟아 넣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지 않으면 헛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돼.

만약 애슈턴 클라크가 그 시기가 아니라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 살았으면 오늘날 사람들은 애슈턴 클라크라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거야. 당시 기술은 마침 애슈턴 클라크가 말하는 노동을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거든. 소쿠엣은 플러그와 소켓, 신경 반응 회로, 나아가 인간이 직접적인 신경 연결을 통해 손과 발을 움직여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을 발명했어. 노동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 거야. 주요 산업의 모든 노동은 인간이 ‘직접‘ 기계를 제어하는 일로 세분화됐어. 전에는 한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는 게 가능했어. 아침에 일어나 스위치만 켜놓고 반 나절을 더 자다가 점심에 글자판 몇 개를 확인하고 저녁에 스위치 를 끄고 일을 마치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제는 사람이 직접 공장으로 가서 자기 몸의 소켓에 플러그를 연결해. 왼발을 써서 원재료를 공장에 투입하고, 수만 가지 정밀 부품을 한 손으로 만들어. 다른 손으로 조립을 해서 오른발로 완제품을 내보내고 본인 눈으로 직접 제품을 검수해, 이제 훨씬 만족스러운 노동자가 된 거야. 그런 노동의 속성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은 플러그인 일자리로 전환됐고 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이 됐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클라크는 사회 전체로 따지면 그것도 심리적 이점이 된다고 봤어. 애슈턴 클라크는 인류를 노동하는 인간으로 바꾼 철학자라고들 하지. 이 시스템에서는 인간소외에 따른 정신병 발 발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 노동 변화는 전쟁을 드물다 못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어. 초기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그 후 800년 동안 세계 경제망은 안정됐지. 애슈턴 클라크는 노동자들의 선지자가 됐어. 그래서 요즘도 누가 직업을 바꾸겠다고 하면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하는 거야˝

- 새뮤얼 레이 딜레이니, 공보경 역, <노바>, 폴라북스. pp. 378-381.

*요약을 못하고 이 긴 걸 다 붙이다니.

아무튼. 간디가 현대 세계의 일곱 개의 죄악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노동 없는 건강‘이다. 노동 없이 헬스클럽 같은 데서 만드는 건강을 말하는 걸까 했었다. 여기서는 노동 없이는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만약 이런 시대에 트럼프나 머스크나 삼성의 ’오너’ 같은 슈퍼자본가들을 데려다 놓으면, 그들은 몸에 소켓을 장착하려고 할까? 그들에겐 확실히 자제력과 책임감이 부족한데…

아무튼.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있기를.

#노바 #노동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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