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설이든 스릴러나 추리소설적인 면이 있다면(안 그런 소설이 어디 있나? 소설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사건이 어떤 길을 굴러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따라간다. 그 결과가 궁금해서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는 것이고) 늘 새가슴에 삼 분의 이를 못 넘기고 마지막 장을 들춰 범인이나 결말을 확인한 후에야 나머지를 그나마 차분히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나의 (별로 기껍지 않은) 독서 습관이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단 한 권도 결말을 미리 들춰보지 않았다. 실재 세계에서 경찰들에게 닥치는 사건들이란 현행범으로 잡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미제 사건으로 떨어질 것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는데 이 시리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딱 그렇기 때문이다. 희생자와 범인은 애초에 개인적인 인연이 (거의) 없다. 따라서 용의자 비스무리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은 그저 사건 자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배제하면서 느릿느릿 범인에게 다가갈 뿐이다. 집요함과 끈기. 마치 사건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또는 다리)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듯. 그렇게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은 생활을, 삶을 보여 준다. 50년 전 스웨덴이라는, 시간과 공간 모두 아주 떨어진 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이지만 전혀 낡거나 낯설지 않다. 결국 50년 전이건 스웨덴이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고, 기술은 발전했더라도 생활과 삶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으며 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에서 ‘고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시리즈 역시 고전이다. 나머지 다섯 권들도 얼른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다행히 문학동네라는 큰 출판사가 맡은 거니까 다 나오겠지? 무슨 사정이 생겨 어렵게 된다면 텀블벅 펀딩이라도 하라고 부추기고 싶다...
휴고 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작품이라 해서 시작했는데 두 번째 권과 세 번째 권은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거였다. 그것 참. 오늘 매우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마지막 몇십 페이지를 보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더해 기분이 더 나빠지려고 한다. 쳇.
보통 어떤 작가를 처음 읽을 때 ‘최고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먼저 읽고 처녀작은 읽지 않는 편이다. 나는 결국 작가보다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고 처녀작이란 미숙함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번역 출간된 걸 4, 5, 3 순으로 읽었는데 결국 1, 2도 읽겠다는 예감이 든다... 쳇. ‘추리소설’이라고 태그를 달고 저장해두긴 하는데 이 시리즈는 추리도, 스릴러도 아니고 그저 범죄소설도 아니다. 도시를 날 것으로 보여주는, 쓸쓸한 하드보일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