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믿음˝도 행동이고 따라서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신앙˝은 파스칼의 논박처럼 그 행동의 결과가 가져올 잠재적 득실을 평가하여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행동이 아니다. 신앙은 결국 위험회피용 혹은 수익창출용 보험을 선택하듯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접한 기독교가 복음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는 (그리고 어쩌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교란 게 복음주의밖에 없는 것 같다. 여하튼 나는 논리적으로 당연히(혹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졌었던 ˝신앙˝을 폐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이 살면서 어떤 일을 실행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지만, 그가 성공할 확률은 최소한이다. 그럼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다. 파스칼의 도박은 비록 성공 가능성이 적다 해도 선택할 상황이 오면 위험을 택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것은 많다.
파스칼의 이 개념은 로메르의 영화에서처럼 개인적 관계에 대한 실존적 결정이 아니라 신학과 관련이 있었다. 계몽주의적 인간 파스칼에게 신의 존재를 믿을지 말지 결정하는 문제는 중요했다. 그가 성공할 확률은 아주 적다. 그럼에도 누군가 신의 존재를 믿기로 결정할 경우, 그가 옳았다면 엄청난 보상을 받을 것이고 틀렸다 해도 실제로 손해 보는 것은 없다. 다른 한편 믿지 않는다고 결정할 경우에는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실제적 이득은 없으나 (영원한 형벌과 같은)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옳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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