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1 - 엘파바와 글린다, 개정판 위키드 1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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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왔구나. 뮤지컬 공연에 맞추어.

'개정판'이라고 나오면 구판과 뭐가 달라졌는지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냐?

표지만 달라졌는지, 번역을 손을 봤는지, 손을 봤으면 어떻게 봤는지 대조표까진 바라지 않는다고 쳐도.

그리고 만일 표지만 바뀐 거라면 그걸 개정판이라고 불러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릴없이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하고 살짝 심사가 뒤틀려서 한 마디.

 

그건 그렇고 아래는 내가 '구판'을 읽고 201011월에 블로그에 써놨던 것이다.

드디어 위키드를 다 읽었다.

올초부터 아마도 읽기 시작했을테니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기 전에 원작을 읽어 둬야겠다는 생각으로), 거의 1년이 걸린 셈이다!

(그 때 얼마나 준비를 열심히 했었냐 하면, <위키드>를 읽기 전에 <오즈의 마법사>도 새로 읽었었다.)

 

하여튼 첫 권은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맨초반의 유리 부는 터틀 하트 이야기가 좀 지겨웠고, 초록색 피부에다가 이빨을 모조리 가지고 태어난 데다가 심술궂기까지 한 아기 엘파바에게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그 부분을 넘어가서 갈린다-글린다와 시즈가 나오면서부터는 좀 진도가 나갔었던 것 같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뮤지컬의 줄거리, 그리고 아버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오즈의 마법사>와 이것저것 끼워맞춰 보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1부인 '엘파바와 글린다'는 대충 뮤지컬의 줄거리와 느슨하게 맞아가면서, 피에로의 죽음과 엘파바의 피신으로 끝난다.

위기는 2권 초에 다시 찾아왔다. 1권 끝으로부터 7년이 흐른 후 피에로의 나라를 찾아 사막을 건너는 이야기부터 시작되는데, 아무튼 사막은 또 무지하게 지겹게 여겨졌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사막을 다 건너 피에로의 왕국인 이르자키성에 도달하는데.. .. 여긴 정말 힘들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 고성에서, 오랜 고난 끝에 더욱 폐쇄적이고 모가 난 엘파바와 자신이 친 유리벽 안에서 꼼짝도 않으려는 사리마 (피에로의 아내)와의 끝도 없이 변죽만 울리는 대화를 보고 있자니.. 페이지 수로는 몇 장 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아무튼 끈적이듯 흐르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나는 그냥 유럽 여행을 했고, 런던에서 <뮤지컬 위키드>를 보았으며, 책은 책장에서 조용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뮤지컬 위키드>의 사운드 트랙을 다시 듣고 다니면서 (특히 'Defying gravity''For good') 문득 엘파바와 글린다의 진짜(?)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집어들었고 3일 동안 밤에 읽어서 덮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역시 책은 읽을 때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위키드>를 처음 잡았을 때, 나는 병원을 그만 두면서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그걸 또 보스에게 설명해야 했고, 그러면서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고, 매일 해내야 하는 일과는 여전히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한마디로 피폐한 상태였다 (돌이켜 보니 그랬네.. 지난 일이다.. 휴우..). 그래서 아마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는 활극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어떤 책도 읽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 외에는 크게 마음 쓰이는 것이 없는 상태.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번에 주욱 읽어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광고띠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엎는 초록색 마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원작 소설에 대한 소개글이라면, 완전 낚시 문구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뮤지컬 위키드>에는 '유쾌''감동'이란 단어가 어울리지만소설 <위키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줄을 북북 긁는 불안함 뿐이고, 감동은 커녕 짜증스런 안타까움만 한바닥 깔린다. 뭐 어느 쪽이나 카타르시스로 가는 길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세상에 이런 여주인공은, 없다. 이렇게 비극적으로 태어난, 이렇게 팍팍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래서 이렇게 가시투성이인 분노로 가득찬 성정을 가지게 된, 한마디로 (시즈 시절과 피에로와의 사랑의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온기라고는 약에 쓸려고 찾아도 없는 그런 여주인공. 독자가 절대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여주인공. 한 술 더 떠서, 책날개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에는 '<위키드>가 성공한 이유는 엘파바가 선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 엘파바가 '선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그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맞았던 가혹한 환경과 고난이 그녀를 점점 더 가혹한 성정의 소유자로 만들어갔고, 그녀는 진짜 사악해진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 냉소하고 있었고, 분명 괴로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분명엘파바가 원한 것은 '선함', '선해지는 것'이 아니었다사실 엘파바는 자신이 사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비록 냉소적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이 붙여준 별명 아닌 별명, '서쪽의 사악한 마녀'라고 부르긴 했지만). 엘파바가 원한 것은 자유 의지, 누구에게도 조종 당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유 의지와, '죄와 비난의 계약을 넘어선, 몸값을 치르는 것이 전부인 오래된 계약'이었다. ['(권력과 복종, 지배와 피지배로 인해) 너무나 끔찍해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응시하며, 무지와 순진함 덕분에 이 깨뜨릴 수 없는 죄와 비난의 계약 밑에 언제나 더 건전한 방법으로 묶고 풀 수 있는 오래된 계약이 있다고 믿으면서, 몸값을 치르는 고대의 관례를 따른다면, 우리가 늘 우리의 수치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2p275)]. 그러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권력과 복종, 지배와 피지배는 또한 죄와 비난의 계약을 만든다. 그녀는 자유의지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마법사에게 대항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에로를 잃는 ''를 짓게 되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피에르의 아내인 사리마를 찾는다. 그러나 사리마에게는 그럴 의지도 용기도 없었고 (유리벽 속에서 엘파바가 정말로 누구인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법사가 그녀를 죽임으로써 엘파바의 용서를 차단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사리마의 딸로 마법사에게 잡혀있는 노르를 구하려고 (그래서 그것으로 '빚 청산'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용서'를 구하러 온 도로시 앞에서 '죄와 비난의 계약'에 꽁꽁 묶여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아래는 불에 붙고, 위쪽은 정화의 물을 뒤집어 쓴 채 당황하며 죽는다. 그녀의 자유의지는 결국은 죄와 비난의 계약에 묶인 의지였지, '누구에게도 조종 당하지 않는' 자유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읽는 내내 '엘파바, 꼭 그렇게 살아야 했어?'라고 혀를 찼다. 짜증도 내고. 네사로즈의 구두를 가져간 도로시를 쫓으면서 마녀는 '그 모든 노력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노르를 버릴 수도 있다. 리르를 자유롭게 놓아 줄 수도 있다. 유모를 버릴 수도 있다. 도로시를 놓아줄 수도 있다. 구두를 포기할 수도 있다'(2p269)라고 생각해 보지만, 때맞춰 '바람이 몰아쳐 마녀의 왼쪽 옆구리를 거세게 떠밀었'기 때문에 그냥 간다. 자신의 길이라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전의 역사와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역사의 영원성의 일부로 이미 예정된'(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붙인 인용문의 일부) 길을 간 것이다. 엘파바도 어쩔 수 없었다.


<위키드>는 그 보다 백년 쯤 전에 씌여진 <오즈의 마법사>의 패러디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전혀 다른 작품이고, 또한 <뮤지컬 위키드>와도 전혀 다르다. <뮤지컬 위키드>의 결론이 더 맘에 든다. 자유의지니, 죄와 비난을 떠난 관계니 하는 건 다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허수아비'로라도 살려서, 모든 공은 친구인 글린다에게 맡기고 숨어 버리기로 한 결정이. 다시 런던이나 뉴욕에 간다면, <뮤지컬 위키드>를 보겠다. 어떤 의미에서 <뮤지컬 위키드>는 진짜 엘파바를 위한 진혼곡이다.

 


 

밑줄 긋기

(1권을 읽을 때는 밑줄 그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래의 밑줄은 모두 2권에서.)


"내 말을 잘 듣고 단단히 기억해 두어라. 별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별에도, 다른 어느 것에도 없다. 어느 것도 네 운명을 지배하지 못한다."

(p37)

-- 이건 그저 주문에 지나지 않아.


엘피는 아버지를 곁눈질해 보았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무능한 남자로 보였다. ... 언제나 사건의 언저리에서 어색하게 쭈뼛거리기만 하고,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반응하는데 급급하고, 현재를 움직이는 대신 과거를 슬퍼하고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인물. (p 171)


"... 자기 입으로 사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치고 진짜 악인은 없어." 보크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경계해야 할 상대는 자기들이 선량하다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착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지." "네사로즈처럼 말이야." 밀라가 이죽거렸다. (p235)


"악에 대한 진실은 여러분이 말한 것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야. 당신들은 악의 한쪽 면, 즉 인간적인 면만 발견했어. 영속적인 면은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니면 그 반대이든가. 옛날 속담 같은 거지. 껍데기 속의 용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 보려고 껍데기를 깨는 순간 용은 더 이상 껍데기 속에 없을 테니까. 악의 본질은 비밀스러움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어."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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