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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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체성 -'내'가 '너'가 아니고 '나'이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특정한 '나'라는 사람의 경우에는 첫째는 나의 이름, 둘째는 남들에게 거의 보여 주지 않는 특이하게 생긴 신체의 어떤 부분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둘 다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남은 것이 그것밖에 없다 해도 절대 고르지 않았을, 그런 것들이다. 나조차도 종잡을 수 없이 폐쇄성과 적극성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유가 이렇게 싫어하는 것들을 결코 떼어 버릴 수 없는 나의 일부로 붙여서 살아야만 했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름이다. 신체 부분이야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름은 그렇지 않다. 이름은 내가 누군가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맨 먼저 주고 받아야하는 것이기에 결코 도망칠 수 없다. 그런데 이름이 이상하다면? 남자인데 이름이 주로 여자에게 많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름이 좋지 못한 뜻의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거나, 발음하기 어려워서 한두 번 말해서는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해 여러번 반복해야 한다거나, 아주 드물어서 리스트에서 매번 가장 먼저 눈에 띄거나 한다면? 그런 이름은 불려지고, 그 때문에 기껍지 않은 시선의 대상이 될 때마다 이름 주인(갖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떠맡고 주인 역할까지 해야 하는 불쌍한 주인)의 마음과 인격에 세상에 대한 은밀한 공격성을 심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개명을 할 생각이 없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이 이름은 내 기억에는 없는, 두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사흘 동안 꼬박 고민을 하시면서 옥편의 거의 모든 한자를 뒤져서 골라주신 것이기 때문이고, 지금은 서른 해 이상의 나의 인생과 밀착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코 좋아할 순 없지만 나의 '정체성'의 일부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체념을 넘어 냉소적으로 내 이름으로 남들 앞에서 먼저 우스갯 소리를 할 경지(!)에 이르렀다.  

이 책은 네이버 <오늘의 책>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괴상한 이름 (이 소설에서는 '고골리')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이 이 책을 단숨에 주문하게 한 이유였다. 그렇게 해 놓고도 오랫동안 읽지 않은 책들 틈에 끼어있다가, 발자크 다음 고골의 중단편선을 읽은 후, 고골(리)을 아예 주인공 이름으로 하는 이 소설로 넘어왔다.  

주인공인 고골리 강굴리는 인도인-미국인 2세로, 가정에서는 미국을 늘 타국으로, 인도를 집으로 생각하는 부모님의 영향 하에 있지만 미국의 공립학교를 다니면서는 미국인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체득하게 되고, 결국은 어느 쪽에도 얼마쯤은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있는 한국인-미국인 2세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이다.  

고골리 강굴리에게 인도인-미국인 2세라는 것 외에 불편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골리'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사회적으로 불릴 인도식 이름을 짓기 전에 아명으로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으로, 고골리의 아버지 아쇼크는 10대후반-20대초반에 엄청난 기차 사고에서 요행으로 목숨을 건졌으며, 그 때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작가 고골리를 삶의 안내자,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 고골리의 진짜 (사회적) 이름은 인도에서 편지로 대서양을 건너오다가 분실되고, 아명과 (사회적) 본명의 구분에 무관심한 미국의 문화 때문에 그의 이름은 그만 고골리로 확정되고 만다. 철이 들어서 학교에 다니게 된 고골리는 자신의 이름이 뜬금 없고 (아버지의 열차사고 경험을 몰랐기 때문에), 특이한데다가, 성인지 이름인지를 묻는 질문이 항상 따라오고,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진짜 러시아 작가 고골의 삶 (완벽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강박관념에 결국 마지막 원고를 다 불태우고 먹기를 거부하다가 의사에 의해 욕조를 가득 채운 고깃국물에 담궈지지지만 결국 아사해 버린 이)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완전히 질려 버리고, 열 여덟 살 때, 대학입학 허가서를 받아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는 이름을 니킬 (잃어버린 할머니의 이름 대신 아버지가 주려고 했었던 사회적 이름)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자신을 언제나 니킬이라고만 소개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낀다.  

이제 고골리-니킬의 정체성은 더 복잡해진다. 열 여덟 살까지 고골리로 살아온 삶을 아는 사람이 열 여덦 이후 니킬에게는 없는,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 간에 단절이 생기고, '고골리'라는 이름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슴에만 담긴 비밀처럼 변해 버렸던 것이다. 니킬로써 그는 학업을 지속하고 건축사가 되고 남들 하듯 연애도 하고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지만, 여전히 인도인 (태생이기에 자신의 일부란 걸 부인할 수 없으나 그 문화는 언제나 낯설게 느끼는)과 미국인 (그 문화대로 교육받고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태생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주변인으로밖에 머물 수 없는) 사이에서 부유하며 산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오랫 동안 살던 미국의 집을 팔아서 자신의 방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가 그가 아직 고골리였을 때 선물한, 그렇지만 그는 표지조차 들춰보지 않은 채 그냥 책꽂이에 꽂아 둔 고골리의 단편선을 발견하고 속표지에 쓴 아버지의 글을 보게 된다. 소설은 거기에서 끝나지만, 고골리가 그 때 무엇을 느꼈을지 독자가 함께 느끼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고골리는 결국은 자신이 한번도 '고골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기에는 아버지의 삶과 그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으며, 그것은 또한 이름을 바꾸거나 그대로 두는 것 이상의 의미로 그의 삶의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역자의 소개나 책 뒷표지에 실린 문구대로 작가는 '이름이나 문화적 배경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어떤 연관을 맺는가?'라는 주제를, '사물을 묘사하는 섬세한 눈과 내밀한 욕망'과 '자신만만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조용조용 치밀하게 풀어가고 있다. 고골리는 세번의 연애를 하게 되는데, 상대 여성의 입은 옷은 물론 걸친 스타일, 읽는 책, 먹는 것까지 꼼꼼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이런 묘사로 눈 앞에서 그녀들을 떠올리기를 바라는 것 같을 정도이다. 물론 고골리에 대해서도 각 상대에 따라 옷차림이 어떻게 바뀌는지, 태도는 어떤지가 여지없이 꼼꼼히 묘사된다. 요컨대 각 인물에게 코드처럼 각각 옷과 책과 요리와 포도주가 따라다니고, 특히 세번째 여자이자 니킬과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게 되는 모슈미의 경우는, 역시 인도인-미국인 2세로서 다른 문화로의 적극적인 도피를 선택한 이였기에 이런 취향으로만 묘사되는 느낌이다.  

작가가 자신의 주제를 위해 이런 식의 인물 서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대부분 지겨웠다. 나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외래어 (또는 외국어)로 자세히 묘사하는 문장이 싫다. 상표가 붙으면 짜증 지대로다. 나는 또한 요리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고, 무몇 줄씩이나 자세히 묘사된 걸 아무리 읽어봐야 무슨 요리인지 대부분 감도 잡지 못했다. 작가는 이름과 문화적 배경과 '취향'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 주고 싶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취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마 그런 데 대한 무관심이 나의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취향만 걷어내고 보면 나와 똑같은 인간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것을 먹고 어떤 책을 읽는지에 대한 묘사가 과연 재밌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 책은 내게는 그야말로 미하일 엔데가 <끝없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바스티안의 입을 빌려 싫어한다고 말한 책, 즉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 '현실에서도 이미 지겹도록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이었다.  

게다가 번역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루클린에서 남편과 고양이 노마와 함께 살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하는' 역자 소개에서 약간 속이 뒤틀렸는데 (도대체 역자 소개에 이런 건 왜 들어가 있는지. 그게 번역의 질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문장이 크게 서걱거리는 것은 없어도 몇몇 단어의 선택이 확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가장 심한것은 '고골리'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영어 원서에도 주인공 이름은 'Gogol'인데 이걸 왜 '고골리'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고골 강굴리'와 '고골리 강굴리'는 우리말 어감이 다르다. -리가 무슨 각운을 이루는 것 같아서 더욱 괴상한 이름처럼 느껴진다 (역자의 의도가 그것이었다고 해도 이상하다. 이건 고유 명사니 그냥 옮겨 줘야지). 그리고 '수능시험'이라든가 (아마 SAT겠지? 물론 그걸 우리말로 그대로 풀어쓰면 수학능력시험 - 수능시험 쯤 되겠지만 우리나라 수능시험과는 다른 것이다), '너와집'이라든가 (이건 우리나라에서 붉은 소나무 껍질로 지붕을 해서 덮은 특정한 형태의 집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아점' (이건 심지어는 표준어도 아니고 거의 우스갯 소리처럼 쓰이는 말이다. 메뉴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는 영어의 'brunch'와는 다른 말이다) 까지.  

아마 내가 이전에 사건으로 꽉찬, 작가가 독자를 밀어 부치는 소설을 죽 읽어와서 갑자기 내 이야기를 조근조근 하는 것과 같은 이런 소설에 적응을 잘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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