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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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일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이야기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물질로서의 책은 시작 페이지가 있는 만큼 마지막 페이지도 있구나.
아쉽다..기보단 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
아무튼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하니깐 말이다!

 

영화 <네버엔딩스토리> 를 기억하고 있다.
검색해봤더니 1984년 볼프강 피터센 감독으로 만들어진 독일 영화인데 우리나라에선 1988년 여름 개봉되었다고 하는군.
여름방학이나 아니면 휴일이었을 것이며, 동생과 같이 보았었다.
처음엔 <더 플라이>라고, 공간순간이동 기계를 만들던 과학자가 속상한 순간에 술에 취해 자기 자신을 기계에 넣어 순간이동 하는데,
그 기계 안에 파리 한마리가 들어와 있던 것을 몰랐고, 기계는 두 개체를 따로 이동시키지 못하고 둘의 유전자를 뒤섞어 파리-인간으로 이동시킨다. 과학자는 처음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자신이 점점 파리로 변해가면서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제프 골드브럼과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영화였다.
(헉 20년 이상 지났는데도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구나.)
연구 이외의 것에는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아인슈타인처럼 똑같은 옷과 신발을 몇벌씩 갖다 놓고 갈아입을 정도였던 주인공 과학자가 어느 날 감정에 휩싸여 술에 취한 채 아마도 첫 번째이자 오직 한번이었을 계획에 없었던 실험을 통해 괴물로 변해간다는 것.
 인간은 감정 때문에 오로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주 무겁고 멍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서 좀 마음을 밝게 하기 위해 옆 극장에서 하던 <네버엔딩스토리>를 보러 갔었다.
역시 환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팔코 (분명히 우리말 자막은 이 이름이었다)라는 용이 용 같지 않고 그 시절 기술로도 정말 웃기게 보였다는 것과, 끝부분에 어린 여왕과 바스티안이 만나서 그들 손 안에서 환한 씨앗이 싹트는 것을 보는 장면, 그리고 주제가만 기억에 남았지만. 지금까지도 따뜻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더 플라이보다 먼저 봤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동생이랑 같이, 하루에 두 편이나 본 날이 아니었으면 또 기억에 달라졌겠지.)

 

소설을 읽고 보니, 영화는 1부에 해당한다는 것과, 그래서 영화와 소설은 다른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바스티안이 환상세계를 발견하고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는 1부 (즉 영화가 다루는 부분) 보다 어쩌면 환상 세계에서 자신을 완전히 잊었다가 되찾는 바스티안의 여정, 그 안에서 무엇을 소망한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소망의 의미를 묻는 2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부는 오딧세이아나 연금술사, 어스시의 마법사 게드 등 다른 환상 세계의 주인공들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고전이라면 어느 시대에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읽어도 그에 맞는 새로운 경험을 주겠지만, 그래도 읽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10대 후반, 늦어도 20대 초반에는 읽었어야 했다..
그때, 나에게 이야기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을 때.
나와 연결된 환상 세계의 문을 아직 어렴풋이 볼 수 있었을 때.
그러나 지금 삼십대 중반에 와서 많은 것을 소망했었지만 이루어진 것이 있는지는 의문 뿐인, 조용히 현실에 묻혀가기만을 바라는 이 시기에 읽는 것은, 어쩐지 <더 플라이>라는 디스토피아의 인상을 잔뜩 머리에 담고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약간은 씁쓸한 아쉬움이 입 안에 고이는 느낌.

 

바스티안이 자신의 진정한 소망과 가치를, 현실에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던 것에 대한 즉각적인 욕망을 하나 하나 이루면서, 소망을 이룬 후의 상태를 겪으면서 깨닫는다.
즉, 욕망을 이기려면, 그 욕망을 한번쯤 성취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읽는이가 아트레유와 바스티안의 모험에 동참하여 함께 겪어냄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질 즉각적인 욕망을 뒤쫓는 단계를 건너뛸 수 있기를 바라겠지만, 어느 누구의 환상 세계도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물론, 이런 방식으로만 책을 읽는다면,  난 오래 전에 독서를 포기했겠지.
그러나 여전히 책을 찾아다니는 걸 보면, 나 자신의 진실한 소망을 찾는 여정은 어찌 되었든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만족하지 않는 한, 결코 끝은 없겠지.)

 

PS)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다른 이야기의 씨앗들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은 또 어떻게 풀려가고 있을지 궁금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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