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전체 41장 중 3분의 1이 넘은 16장까지 도대체 사건이 없군 하면서 미적대다가
어젯밤 잠들기 전 몇 페이지 더 읽어 놓자고 들었다가 나머지 3분의 2를 두 시간만에 읽어제꼈다. 읽는 동안 눈이 피곤하고 계속 감기면서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스물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처음 읽었을 때 기분이 이랬었을지.
그때는 지금보다 물론 겪은 것도 없고 생각도 좁고 보수적인 기독교의 영향에 확실히 붙들려 있던 때여서, 살기 위해선 절대 물어선 안될 질문과 그에 대한 신성모독적 대답을 하고 있는 듯한, 그 책의 내용을 다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불에 타버릴 것 같은(!), 그런 콩닥거림으로 읽어내렸던 책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었다.. 광야에서의 예수와 아하스페르츠의 대화는 아직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고서 재생할 수가 없다.

지금은 물론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한국의 대부분의 보수적 기독교 교회에서 가르치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인간 개개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있는 너무나 많은 고통과 내 삶의 찌질한 나날들을 신앙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다가, 그만 가랑이가 찢어져 버린 것이다.. 
(내 그릇이 고만했던 게다. )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신목사의 신앙의 진실'은 나를 떨게 했다..

이 소설은 '신목사의 신앙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를 묻고 있다. 집요하게. 
나같은 '의심 많은 크리스천' (사실 이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이 공감각적이거나 모순 형용이지만)은, 신목사와 이대위를 따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고통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라고 감히 생각한다..
아니, 진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현재 대형교회들이 매우 종종 자주 보이는, 예수의 이름을 내세운 비상식적인, (그래서 예수의 이름에 X칠을 하는) 작태를 생각하면, 진정한 신앙의 모습과 그것이 세우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이 소설에서 신목사 외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은 군의관인 민대령이었다.
스무명의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를 두고 퇴각하면서, 다음에 도착하게 될 중공 혹은 북한의 의사에게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 편지를 남기고 (그가 진짜 의사라면 내 편지를 읽고 심정을 이해할 거요), 퇴각하다가 다시 지프를 돌렸던 (그래서 아마도 환자 곁으로 돌아갔을) 사람이다.. 의사라면..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래야 하는 것일까. 단순한 직업적 헌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겠지. 어떤 측은지심이 어차피 사망이 임박한 중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돌리도록 한 것일까.

마지막 연표에 보니 작가인 김은국 자신의 번역으로도 출판된 적이 있더군.
도정일 님의 번역도 읽는 데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었지만 작가 자신의 번역이 어떨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