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 읽어‘냈’지만, 읽는 게 힘들었다. 꾹꾹 누른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데도 분노는 크고 다독이는 희망은 불분명하게 웅얼거리는 것 같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해야만 한다”가 너무 많아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꼭 이렇게까지 따지고 살아야 하나, 의도를 봐주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용서하고 넘어가는 게 나쁜가, 중요한 건 결국 이 난국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안다. 그렇게 좋은 의도니까 좋다고 넘어가기만 한 순간들이 문제들을 더 딱딱하게 만들어 진짜 해결헐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저자는 이 문제를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으려고 집요하고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공감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만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실제 생활에서의 나는 몸이 힘든 것보다 논쟁이나 토론으로 진전하지 못하고 감정만 다치게 되는 말싸움을 피하려 ’의도가 나빴던 것은 아니잖아‘ 라며 돌아서고 만다. 이 책의 논지와는 다소 관련 없는 이야기: 빅5의 한 곳에서 소아혈액종양 전임의로 2년간 일했던 것이 벌써 10여 년 전이다. 저자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어린딸을 돌보게 되면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해서 읽어보자 한 것이었는데 글의 분노의 밀도가 높아 좀 당황스러웠다. 이론이나 막연한 당연으로 생각했던 것을 -실재로 겪은 몸의 글을 통해서지만- 직접 맞닥뜨렸을 때의 당황스러움, 충격이다. 나는 늘 그 어려운 치료(라고 쓰고 고문이라 읽어야 하는 건 아닌가…)를 그냥 견디고 통과하고 울다가도 웃는 아이들에게 감동과 경외감을 느꼈다. 보호자(주로 엄마였는데 그때는 나도 그게 이상하거나 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들도 존경스러웠지만 아이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보다 더 신경쓰지는 않았다. 소아백혈병의 왼치율(5년 무병생존률)은 그 당시에 이미 80% 이상이었지만 뒤집어 말하면 20%의 아이들은 잃게 되는 거다. 고형암의 경우 생존률은 비슷하거나 더 낮았다. 그 2년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을 보냈는지… 한 명도 떠나지 않는 주일이 드물었고 때로 매일 보내기도 했다. 2년 째 가을쯤이었나 신경모세포종이 세 번째 재발한, 만 여섯 살 쯤 산 아이에게 사망을 선고하고 울음이 터졌는데 울고 또 울면서 이러다 뇌수가 다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웃기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게 나의 번아웃이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야속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웬만한 ’멘탈‘을 갖추지 않은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환자는 여럿이고 그렇게 자기를 쪼개주다 보면 결국 누구도 돌볼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