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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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랜만에 (사실은 <우부메의 여름> 이 후 근 십 년만에 두 번째) 일본 호러 소설을 읽었다. 호러는 결코 취향이 아니고 “극한의 공포가 온다, 문을 열지 마라” 운운 광고하는 책을 문득 고른 것은 ‘보기왕’ 때문이다. 뭘 보는 왕이라고? 우리말 ‘보기’ 즉 ‘(눈으로) 보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단어였고 ‘왕’도 우리말 ‘왕’과 상관 없었다. 그냥 보기왕은 일본어 단어 ぼぎわん을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귀신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원한 등으로 생겨서 보통 혼자서 돌아다니는데 일본 귀신들은, <우부메의 여름>을 읽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뭔가 아주 집단의 원한으로 똘똘 뭉쳐진 거라서 더 무섭고 괴기스럽고 쉽게 사라질 수도 없는 것 같다. 뭐 우리나라 귀신들의 원한도 따지고 보면 따져보면 더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제도나 관습과 닿아 있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나라 귀신들이여, 왜 뭉치지 않는가?

계속 멋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귀신의 목적은 결국 원한을 해소하는 것이니 관계자 몇 사람 + 지나가던 운 없는 행인 몇몇만 피해를 입고 대체로 끝나게 되는 편인 반면, 집단적 원한과 증오로 뭉쳐진 일본 귀신은 대상을 완전히 특정할 수 없고, 귀신의 대표 원한 사건은 사실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인간들이 극심한 고난 상황에 처하게 되는 한, 몇 번이고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일단 뭐든 집단이 되면 스스로 컨트롤 따위는 없다. 문득 나홍진의<곡성>을 보고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것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의 귀신은 분명 우리나라 토종 귀신은 아니었다!

두어 시간 스르륵 읽히는데 뭐 극한의 공포까지야. <우부메의 여름>보다 훠얼씬 안 무서웠다. 구경하는데, 그것도 글로 쓰여진 걸 보는 건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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