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가 잔혹하고 비열한 인물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도덕적 문둥병자의 전형으로서 그가 겸비한 잔인성과 익살스러움은 극도로 비참한 내면세계를 드러낼 뿐 결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변덕스럽다. (•••) 그의 고백은 시종일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지만 그렇다고 악마처럼 교활하게 저지른 온갖 죄악이 사면되지는 않는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점잖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이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므로 우리는 저자를 혐오하면서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가가 소설 첫머리에 붙인 가상의 편집자의 해설 중 일부이다. 이 시국에(!)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한 것을 한 번에 다 읽어낼 때까지 이 소설에만 집중하게 한 것은 화자의 ‘무모할 정도의 솔직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재는 역겹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작가인가 보다. 작품에서 작가를 유추해내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지만. 마음이 아릿하다. 화자의 적나라한 솔직함 때문이 아니라 작품 속에도 이 작품에 대한 해설과 찬사 어디에도 ‘진짜 롤리타’는 없다. 롤리타의 열두 살 어린 마음은 예술지상주의자들에겐 보이지도, 보려고 하지도, 아니 그냥 아예 없는 것이다. 자기들의 젊음을 환기하고 재경험할 수 있게 하는 열두 살 님펫의 육체만이 찬탄과 숭배와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마음은 몸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다친 몸에 다치지 않을 마음이란 없다. 가엾은 롤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