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고래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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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한국소설은 없었다’류의 명성이 자자한 책을 어디 한번 읽어나 봤다. 출간된 지 벌써 15년이나 된 책이다.

읽어보니 과연, 지금까지 이런 한국소설을 본 적이 없다(사실 한국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지 십 년도 넘었기 때문에, 특히 요즘 작가들의 소설은 읽은 게 없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내가 본 적이 없다고 정말 ‘없던’ 소설인 건 아니겠지만). 이 소설 속의 인물들과 같은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엄청난 기골과 힘과 먹성을 자랑하던 순박한 남자가 다친 후 순박하게 먹기만 하다가 1톤(!)이 된다거나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과 결심을 증명하기 위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바치는 남자도 있고 지독한 박색으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엄청난 돈을 긁어 모으지만 한 푼도 못 쓰고 죽은 후 귀신을 자꾸 나타나는 노파에 누가 언니인지 누가 동생인지 자기들도 딱부러지게 말하지 못할 쌍둥이 자매와 아이를 키우는(!) 코끼리까지 나온다. ‘작고 누추한 것은 죄악이다’를 좌우명을 삼고 욕망대로 내달리는 금복이나 아비가 누군지 알 수 없는데 마굿간에서 태어나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받아내는 춘희(뭔가 서사가 성경적...?)는 말할 것도 없고. 잠시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인물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읽는 내내 수시로 짜증이 났다. 글을 너무나 대충 썼다. 그냥 처음 생각나는 대로 막 질러놓고 퇴고란 걸 하지 않은 듯. 대충 쓴 듯한 느낌은 뒤로 갈수록 더 심하다. ‘그것은 OOO의 법칙이었다’도 처음에는 어이가 없더니 나중에는 그냥 흥, 하고 말게 되었다. 거기다 여성 인물들. ‘여자는 남자들에게 가랑이를 벌려줘서 그 댓가로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게 작가의 인식이 아닐까 싶었다. 딱 두 종류의 여자. 남자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싶어하는 여자와 너무나 박색이거나(노파) 멍청해서(춘희)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여자는 물론 인간도 아닌 것 같은 여자. 그래도 주인공 중 하나인 금복은 주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냐고? 작가는 남자가 되지 않으면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없으니 금복을 아예 남자로 변신(!)시켜 버렸다. 이런 소설이 무려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그냥 어이가 없다.

도대체 어떤 이력을 가진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나 궁금해서 약간 웹서핑을 해봤는데 그저 최종학력 고졸에 영화판에서 각본을 쓰고 이 소설 이후 영화를 감독한 적도 있고 그랬다는 것 같다. 비교적 최근의 어떤 인터뷰가 충격이었다. 문학을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어야 문학을 살릴 수 있단다. 도대체 이 작가는 왜 ‘쓰레기’를 잡고 있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쓰레기면 그냥 버려 달라고 하고 싶다. 문학이 밥이고 삶이고 무엇보다 진지한 것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그렇게 문학을 살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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