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소설이면 (<개미> 저자 것 빼고) 일단 관심을 두는 편인데 이 소설은 역자 때문에도 흥미가 생겼다. 장르소설에서 자주 보던 믿을 만한(!) 역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장르소설일 거라 생각하고 잡았던 건 아니고 뒷표지의 ‘하나의 살인 사건, 서로 다른 기록들’이라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뭔가 라쇼몽적인 것을 기대하고? 그런데 받고 보니 맨부커상 쇼트리스트에 올랐었다네? 급호감으로 역시 깨작깨작 읽던 몇 권의 책을 제쳐두고 읽기 시작해서 단숨에 끝냈다.훌륭한 소설이다! 일단 재밌고, 그래서 잘 읽히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 한숨이 나온다.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이 무엇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독자의 마음에 의심, 그러니까 생각할 거리를 심었다면 그것이 훌륭한 소설이라는 증거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살인사건 보고서의 형식을 빌려 그 시대(19세기 초반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회의 문제를 그저 건조하게 드러내서 어떤 직접적인 고발보다 더 통렬하게 계급과 권력의 불의함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범죄심리학 전문가’의 ‘과학적 지식’이라는 편견이었다. ‘안 봐도 안다, 나는 과학자이고 객관적이니까’ 라니. 배가 고파서 그만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