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는 적당히 포근하게 몸을 짓누르는 모래의 무게를느끼며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은 점점 다양한 걸 팔기 시작했으니까. - P34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던 의주의 말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수레는 레일에서 이탈하거나 뒤집혀 책임감 없는 행복은 위험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러운 거야.‘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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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여야 했다.(50쪽)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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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실패하러 온 거예요 여기. - P165

"그런데 서재지기님은 어쩌다 춘천까지 와서 서재를 차리게 된거예요?" - P164

한 달에 적어도 두어 번씩은 이 막국수 집에 들르는데 비단 음식맛 때문만은 아니다. 이 가게만의 정서와 주파수가 맞았기 때문이다. 옛집을 리모델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쓰고 있어서 마치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을 찾은 기분이 든다. 춥지 않은 계절에는 너른마당에 놓인 식탁에서 막국수를 후루룩 먹고 가기도 하고, 손님이 많은 날에는 가게 안방에서 먹는 호사도 누린다. 안방에는 사람이 사는 흔적, 이를테면 손톱깎이와 화장품 같은 실생활용품부터 옷장과이불장까지 그대로 놓여 있다. 마치 지나가다 들른 시골 가정집에서한 그릇 융숭하게 대접받는 기분으로 옛날식 막국수를 먹을 수 있으니 명백히 호사라 할 만하다. - P173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산이든아니든 모종이었든 묘목이었든 크게상관없었다. 담쟁이들은 예외 없이 자기 화분의 크기만큼 자랐다.
가장 작은 화분에 심은 녀석들은 생산지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두 뼘남짓조차 자라지 못했고 조금 더 큰 화분에 심은 녀석은 무릎 높이만큼은 자라났다. 그리고 땅을 깊게 파서 일군 화단의 담쟁이들은 종류에 관계없이 울타리를 몇 바퀴 휘휘 감을 정도로 컸다. 땅속 깊은곳의 양분과 기운을 흠뻑 빨아들여서일까. 어쨌든 담쟁이들은 자신을 감싸안은 세계의 크기, 꼭 그만큼씩 자랐다. - P178

대들보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도 언젠가는 저기 새겨질 거라 상상한다. 서재를 찾아주는 이들이 한 번쯤은 올려다보았을 뭉근한 시선까지도 불현듯 마음이 단단해진다. - P185

다른 한 액자는 존 레논 사진과 그의 말을 담은 종이 포스터다. 쓰인 문구는 이렇다.
"내가 다섯 살 때 엄마는 행복이 삶의 열쇠라고 늘 일러주었다. 내가 학교에 갔을 때 그들은 내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행복‘이라고 적어내렸다. 그들은 나더러 ‘숙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요‘라고말했다." - P187

봄을 이름에 품은 이 도시에서 아홉 달을 보내면서 가장 발달한 몸의 기능이 있다면 그건 계절을 느끼는 감각세포일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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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 중년의 재미없는 삶이 어떤 맥주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간 내가 마셔본 맥주 중에서 맛있다고생각한 맥주들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영화와 연결되는 이야기도 좀 있을 것이다. - P11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나는 술자리에서 맥주만 마실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뻔히 소주가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상대는 내 눈치를 보며 ‘소주 안 드시죠? 맥주 드실래요?"라는 표정을 짓는다. - P23

좋아하는 맥주 스타일을 궁리하다 보니 내가 그간접한 맥주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 P31

어쩌면 극장에서 영화 속 특정 장면의 서브텍스트를 혼자 이해하고 과시하듯 발작적으로 웃는 밉상 관객처럼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자랑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자랑이랄 것도 없지만 혹시 자랑으로 느껴진다면, 수십 년간 보편적인 팝송을 몰라 긴 수난을 당해왔으니 이정도는 귀엽게 봐주길 바랄 뿐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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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섬망증세는 수술이 막 끝난 상황에서 어시스턴트에게 ‘회의에 늦을 것 같아‘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양팔에 링거를 꽂은 상태로 몸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오타도 많았습니다만. 메시지를 받은 사람도 입원 중인 제가 이른 아침에 갑작스레 연락을 해서 놀랐다고 하더군요. - P19

우리의 뇌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것을 이토록 방대하게축적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P21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들 합니다. 시간이라는 직선위에 작품의 시작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제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 P27

딱히 다른 사람들의 인지를 바꾸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삼을 마음도 없고, 담담하게 스스로 만들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 P39

인간의 수명이 80세에서 90세까지 길어진 것은 기껏해야 최근 30~40년 사이의 일입니다. - P45

생물학계나, 철학계에서 ‘동물에게 감정이 있는가?‘ 하는 논의를 하곤 하는데, 만약 제게 묻는다면 단 한마디로일축해버릴 것입니다. "웃기지들 말라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 P65

그러니 달리 말해, 이렇게 투어를 돌며 관객들 앞에서수십 번의 공연을 하다 보면 점점 연주의 질이 달라집니다.
유럽 각지를 돌고 11월 말에는 영국 런던에 있는 카도간 홀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900석 남짓의 결코 크지 않은공연장이었지만 이 밤의 연주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P69

참고로 친분이 있던 가네코 기미 씨의 가집 《풀의 분수》(草町分際)에 따르면 젊은 시절 엄마는 어린 제 손을 이끌고여성 중심 평화활동단체인 ‘풀씨회‘(草実会)의 반전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도 저는 철들기 전부터 어머니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아왔는지 모릅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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