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실패하러 온 거예요 여기. - P165

"그런데 서재지기님은 어쩌다 춘천까지 와서 서재를 차리게 된거예요?" - P164

한 달에 적어도 두어 번씩은 이 막국수 집에 들르는데 비단 음식맛 때문만은 아니다. 이 가게만의 정서와 주파수가 맞았기 때문이다. 옛집을 리모델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쓰고 있어서 마치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을 찾은 기분이 든다. 춥지 않은 계절에는 너른마당에 놓인 식탁에서 막국수를 후루룩 먹고 가기도 하고, 손님이 많은 날에는 가게 안방에서 먹는 호사도 누린다. 안방에는 사람이 사는 흔적, 이를테면 손톱깎이와 화장품 같은 실생활용품부터 옷장과이불장까지 그대로 놓여 있다. 마치 지나가다 들른 시골 가정집에서한 그릇 융숭하게 대접받는 기분으로 옛날식 막국수를 먹을 수 있으니 명백히 호사라 할 만하다. - P173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산이든아니든 모종이었든 묘목이었든 크게상관없었다. 담쟁이들은 예외 없이 자기 화분의 크기만큼 자랐다.
가장 작은 화분에 심은 녀석들은 생산지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두 뼘남짓조차 자라지 못했고 조금 더 큰 화분에 심은 녀석은 무릎 높이만큼은 자라났다. 그리고 땅을 깊게 파서 일군 화단의 담쟁이들은 종류에 관계없이 울타리를 몇 바퀴 휘휘 감을 정도로 컸다. 땅속 깊은곳의 양분과 기운을 흠뻑 빨아들여서일까. 어쨌든 담쟁이들은 자신을 감싸안은 세계의 크기, 꼭 그만큼씩 자랐다. - P178

대들보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도 언젠가는 저기 새겨질 거라 상상한다. 서재를 찾아주는 이들이 한 번쯤은 올려다보았을 뭉근한 시선까지도 불현듯 마음이 단단해진다. - P185

다른 한 액자는 존 레논 사진과 그의 말을 담은 종이 포스터다. 쓰인 문구는 이렇다.
"내가 다섯 살 때 엄마는 행복이 삶의 열쇠라고 늘 일러주었다. 내가 학교에 갔을 때 그들은 내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행복‘이라고 적어내렸다. 그들은 나더러 ‘숙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요‘라고말했다." - P187

봄을 이름에 품은 이 도시에서 아홉 달을 보내면서 가장 발달한 몸의 기능이 있다면 그건 계절을 느끼는 감각세포일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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