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큰맘 먹고 이냐리투 감독에게 "Trust me!"(날 믿어줘요!)라고 말하고, 녹음까지 밀어붙여 최종적으로는 제곡이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비교적 반응이 좋아, 저는영화가 완성된 후 가슴팍에 ‘Trust me‘라는 대사를 적고 그아래에 ‘THE REVENANT Music Team 2015‘라는 문구를 넣은 티셔츠를 만들어 전 스태프에게 나눠주었습니다. - P215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는데, 2019년 초에는 이우환 선생님께 프랑스에서 열리는 선생님의 대규모 회고전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앞서 이우환 선생님은 《async》 작업에 큰 영감을 주신 분이라고 소개한 바 있는데요. 설마 불과 몇 년 후 직접 일을 제안 받을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무척 황송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떠올려가며 제 나름의 ‘모노파‘를 구현해 약한 시간 길이의 곡을 만들었습니다. - P281

집 근처에 구급병원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냉동 트럭이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사망한 환자들의 시신을일시적으로 안치하기 위해서였죠. 그때는 아직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였고 시신으로부터의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병원 안에 놔둘 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사망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조치가 정해질 때까지 우선 다른 장소에 옮겨놓았다가 최종적으로는 화장터에운반했겠죠. - P301

가본 적 없는 나라라 할지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곳에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단순한 이국이 아닙니다. 저에게 일리야는 우크라이나와의 인연을 맺어준 소중한 사람이었고 아직 직접 만난 적조차 없지만 친구라 부를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없는나라의 일은 모른 척해도 되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지만요.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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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영화 <희생〉에서는 타르콥스키에게 커다란 존재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밖의 부분에서 흐르는 퉁소 연주곡은 처음에는 그저 바람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노스텔지아>에서의 가장 큰음악은 물이었습니다. 매우 주의 깊게 설계된 물소리가 곧영화음악인 것이죠. 저는 타르콥스키가 남긴 일곱 편의 작품을 다시 보며, 점점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P227

결국은 이 제목 그대로 작품을 발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히려 이를 역설적으로 풀어, 지금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는 방향성을 갖기로 했죠. 이 작품은 11월초에 일본에서도 공개되었고, 저로서는 드물게 개봉 첫날, 무대인사에 참여했습니다. - P243

그러던 어느 날 ‘코카게‘에서 식사를 하는데 BGM이 자꾸 귀에 거슬리는 거예요. 브라질팝부터 마일스 데이비스같은 재즈 음악까지 마구 뒤섞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너무식상하고 시끄러웠습니다. - P273

비요크는 젊은 재능을 알아보는 예민한 후각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이 사람이다, 싶은 아티스트를 발견하면높은 확률로 이미 그녀가 접촉한 이들이었습니다. 이처럼어딘가 세상의 배후자 같은 면모를 지닌 그녀를 저는 뒤에서 몰래 ‘비요크 누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P279

그들이 불러준 또 다른 노래 중에는 언뜻 듣기에도 찬송가처럼 느껴지는 곡도 있었습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가그러했듯, 그들도 크리스트교에서 유래한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노래하고 있었죠. 최근 일본에서는 모 신흥종교단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15세기이래 아마존의 오지부터 극동의 섬나라까지 온갖 지역에선교사를 파견해 세계를 ‘세뇌‘ 해온 본가 바티칸의 가톨릭교회에 비하면 지배력도 수금 능력도 미미한 정도입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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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부터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본 뒤 12월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수령했다. 20대 중반부터 쉬지 않고 직업 활동을 해왔으나, 40대 후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실습 기간이 있었는데 요양원 일주일, 방문요양과 주간보호센터 일주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 P167

그럼에도 다음 해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한 요양 시설은 규모도 꽤 되고, 신설이라 깨끗했다. 나는 ‘퐁당당‘ (3일에 한 번 출근해서 24시간 일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현장 용어)으로 근무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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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글의 3분의 1이 잘려 나갔던 일을 떠올리며 토마시는 대답했다.
"과장님, 제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P295

"일주일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토마시는 이 말로 그와의 대화를 매듭지었다. - P297

"과장님 말씀이 분명히 맞을 겁니다."
토마시는 불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P296

"소련군 덕분에 난 부자가 됐어!" 그녀는 통화 중에웃음을 터뜨렸고 토마시를 그녀의 새 화실에 초대하면서 토마시가 알던 프라하의 화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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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찾아오는 보람과 즐거움은 이제 일상이 되어 무덤덤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어떻게든해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문해서 30분을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피자를 10시간 넘게 걸려 만들어서 먹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P62

강박과 마찬가지로 자기 최면은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약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과하면독이 되는, 특히 과한 자기 최면으로 만들어진 얄팍한 자존감은마치 모래성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파도같이 반대편에 있는 또다른 현실의 무게를 맞닥뜨리면, 그동안 만들어온 것들이 허상임을 알게 되어 바로 무너져 내리면서 다시 자괴감의 늪으로 빠질가능성이 높죠. - P70

체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너덜거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어떤가락들이 흐트러져 흔들리는 걸 뜻하지만 저는 일없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빈둥거릴 때 쓰곤 합니다. 누가 오늘 뭐했어??" 물으면 ‘음, 그냥 종일 네덜거렸어"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 P79

고백하자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죄책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깨달은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고치기 위해 하던 일을 덮어두고 억지로 하지 않기도했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생기는 현실의 불편함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쌓이는 말도 안 되는 악순환을 겪었죠. 결국 원점으로돌아갔고, 마음이 무거워지기 전에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P87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는, 배고파서 끓였던 라면을 두어 젓가락먹고 그대로 쏟아버린 비닐봉지를 싱크대에 두는 바람에 참기 힘든 악취가 날 정도로 썩어버린 것입니다. 그 냄새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시체가 썩는다고 신고할 것 같아서 대충 챙겨 입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거의 한 달 만에 집을 나왔습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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