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제 안의 결핍이 충족되는 순간에 확신으로 온다. 딸보다 더 딸처럼 굴었던 수경의 살가운 행동이 영실에게 확실한믿음의 증표가 되었던 것처럼. - P336

지금껏 나는 으스스한 감각 속에 독자를 몰아세운 채 홀연히 떠나는 백온유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들은 백온유 소설세계의 커다란 분기점이자,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 P340

알면서도 속아주는 마음으로, 다시 손가락을 걸게 하는, 깨진믿음의 조각에 얼굴을 비춰보는 인물들도 그렇게 다시 약속할것이다. 여전히 실패하면서도, 간절히 믿고 싶어하며. 그러다어느 날, 기적과 같은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 - P345

사람과 시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쏟았던 노력을 떠올려본다. 나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가치를 지키며 살겠다는 각오는 수시로 무너지고 어느새 또다시 사람을 의식하고 과거에구애받고 소문에 연연하고 있다. 이렇게 두리번거리며 살다가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발견하면 빤히 응시한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과 시대를 감당하는지 궁금하기에. - P348

아마도 소설은 기만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한 이들을 위한 게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그들을 위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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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김지완의 얼굴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고 낯익은 동시에 낯설었다. 나은우는 이제 변해갈김지완의 얼굴을 알 수 없다. - P33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한 시기를 가졌다는 것에는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시기가 있어. 그것은 과거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까? 죽지 않은것에는 생기가 있고 살아 있는 냄새가 났다. 아픔은 사람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 P36

스물세 살의 나은우는 나은우만의 슬픔을 이해받고 싶어 안달이었다. 언어와 방식을 찾아다닌 건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이제 이해가 돼? 이제 좀 돼? 그런 안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스물아홉 살의 나은우는 나은우만의 슬픔이 나은우만의 슬픔으로 간직되기를 바랐다. 이해도 오해도 싫다. 그저 그대로, 내안에 있는 것 그대로, 발설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김지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38

이요는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냥, 또 훔칠 거 없나 하고. - P52

이요한테 자신이 있어 보이나 보다.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네아니, 확실히 있어.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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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요리야." - P17

"아 그럼요. 당연하죠. 저 할아버지랑 밥 먹는 거 좋아했어요."
고모는 여전히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시선으로 그를 뚫어지게쳐다봤다. 그가 일부러 쾌활하게 대답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옛일을 기억하며 웃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 P19

대답은 시아버지가 했다.
"그래, 이제 제사를 치르도록 하자." - P21

조용히 넘어갔으면 했는데, 그 바람에 시부모님이 나를 쳐다봤다. 정말 눈치도 없지. 물론 고모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멋쩍게 대답했다. - P25

누구일까.
당신이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순간, 할머니가 내게 숟가락을 던졌다. - P29

그래서 나는 외사촌들에게 대답했던 것이다. 너희들과 가지 않겠다고 엄마를 슬프게 한 다른 식구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나는 엄마 편이니까. 우리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으니까. 나만은 엄마를 절대 미워하면 안 된다고 - P37

어둠 속에서 나는 대답했다.
"개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참...... 시시하지? - P42

다 옛날 일이다. - P45

화가 난 게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말에 엄마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 P59

"응. 그런데?"
"지금・・・・・・ 무슨 계절인지 알아?"
"얘가 왜 이래 진짜." - P65

나는 웃었다. 할머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차를 빠르게 몰았다. - P73

"악귀다. 악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년, 그년이 없는 날 귀한 해콩을 삶는 거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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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완전히 틀릴 수 있어. - P22

오로지 알맞은가. 그것이 중요했다. 너는 완전히틀릴 수 있어,와 너는 틀렸어,는 낮과 밤만큼 달랐다. 알맞지 않은 단어는 따가웠고 잘 들어맞는 단어는 부드러웠다 - P22

너는 관심 없으니까 말 안 했지. 가고 싶으면 같이 갈래? 근데 너 맨날 안 된다고 하잖아. - P24

그때마다 엉뚱한 것으로 서운했던 마음이 다 풀어진 것도 나은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서운한 마음 따위는 김지완과 함께하는 다른 시간으로 깨끗이 지워졌다. 진짜로 깨끗하게는 아니지만. - P25

멋없어.
그 말을. - P27

나은우도 김지완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은우는 김지완이 일러준 대로, 나은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알 것도 같은 사이에, 김지완을 졸업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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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결별에도 훈련이되어 능숙해진다. 자꾸 버림을 받다 보면 충격도더 큰 수용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능력을물리학에서는 ‘탄성résilience‘이라고 부른다. - P48

하지만 때때로, 결별은 파괴적이다. 붕괴가위협적으로 닥쳐오는 것이다. - P49

눈앞에서 완결되는 재앙을 바라본다는 것.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 우리 이야기의결말을 지켜본다는 것, 우리 없이 이미 쓰인 다른이야기의 시작을 본다는 것.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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