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라와 함께 앉기 위해서 무릎을 많이 구부려야 했다. 하지만 번호순은 담임이 아이들 이름을 외우는 기간에만 유효할 뿐 그 뒤의 자리 배정은 순전히 선생님의 권한이다. 담임이 권한을 남용해 아이들을 성적순대로 앉히는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 P11

소라가 물었다.
"작은유진이가 그 일∙∙∙∙∙∙." - P15

일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문과 뉴스에 나오고 우리는 경찰서에도 가야 했으니까. 나는 입을다물었다. - P15

"대답은 어제 이미 했잖아. 난 아니라고!"
난 뒷말을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 P27

뭐 한다고 하지? 아, 뭐 한다고 하지? 가수 팬 카페에서노닥거리는 중이라고 할 수는 없다. - P34

"소설가가 되려면 개나 소나 다 되는 대학생보다 슈퍼마켓에서 배달하는 게 더 멋지지 않겠냐? 오토바이 타고 배달다니며 세상 경험을 하는 거지." - P39

내가 다니는 학원은 곳곳에 분원이 있다. 건우도 그 학원에 다니는지 몰랐다. 나는 전교 1등으로도 모자라 하필그 학원에 다니는 작은유진이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날 자랑스러워하는 건우에게 그 유진이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 P47

"도대체 어떤 여자가 한용운한테 배신을 때려서 이런 시를 쓰게 했나 몰라. 까짓것 여자가 떠난다고 하면 쿨하게 보내 줄 것이지 이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며 시는 써서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주냐!" - P64

"지금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아도 커서 후유증이 나타날수도 있대. 늘 조마조마해." - P71

아, 내게도 언제 다쳤는지 기억나지 않는 무릎의 흉터 같은게 아니었다. 기억을 떠올리자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불쾌해져 나는 진저리를 쳤다.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쾌감이었다. 엄마가 말한 후유증이란 게 이런건가? - P73

우리 가족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퍼즐 판이 있다. 그 퍼즐판 속 내 모습 조각은 늘 불안정해 보인다. 그래서 퍼즐 판이 조금만 흔들려도 가장 먼저 튕겨 나갈 것 같다. 그 안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 내게주어진 자리의 모양이 그렇다. 공부 잘하고, 어른들에게 순종하며 예의 바른. - P83

기본 과목은 날마다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해 놓아야 한다.
국어 자습서를 펼쳤다. 지문으로 나온 소설을 읽는데 ‘성‘,
‘폭‘, ‘력‘자가 볼드체로 도드라졌다. - P89

"벌써부터 저 모양들이니 나중에 우리가 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마음 단단히 먹고 있어야지. 안 그래, 여보?" - P93

"유진아, 이거 수리해 줄 테니 너 쓸래?"
액정 한쪽이 깨진 구닥다리 휴대폰이었다. - P105

하지만 엄마가 건우네 집을 부러워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이런 말 하긴 이르지만 나중에 만일 건우와 결혼하게 된다면 엄마가 지금 부러워하는 모든 게 내 것이 된다. 그런의미에서 엄마가 내게 휴대폰을 사 준 건 가치 있는 데 투자를 한 거다. 난 엄마를 끌어안았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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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와 나는 열기에 달궈진 시월에서 아이스커피를석 잔이나 마셨다. 세 번째 잔은 공짜였다. 단골을 위한서비스라고 했다. 커다란 선풍기 두 대가 소음을 내며돌아갔다. 헬리콥터를 탄 기분이었다. - P112

시커멓게 타고 바싹 말랐던 할머니가 답했다.
얼마 후에 할머니가 쓰러져 입원하셨는데 이미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할머니는 입원하고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 P114

기다려보자. - P117

니나에게 결별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미소나 눈동자, 목소리를 기억에서 말살시켜버리는 일이었다. 그건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P119

이상한 건 엄마야.
그렇게 말해버렸다. - P120

하나도 슬프지 않아. 너는 괜찮을 거니까. 괜찮아야하니까. - P121

상처에 딱지가 생기지 않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어. 희수야. 내가 너에게 딱지가 생기지 않는 상처를준적이 있니? - P122

짹짹짹.
새가 운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 P126

니나에게 답장이 왔다.
딱 한 줄이었다.
나는 새가 울 때 함께 울어본 적이 있어요. - P129

학생들,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버스는 점점머리 희끗한 사람들의 차지가 됐다. 그들은 늘 창 너머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살면서 봤던 수없이 많은 풍경을일일이 헤아리는 사람들처럼. - P141

아버지, 아버지가 너무 무거워.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 P143

갔다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나는 그런 사람들이대단한 것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가잖아요. 힘들게 갔다가 힘겹게 돌아올 줄 알면서. 타인에게 가는 길도 그런 길 같아요. 힘들게 갔다가 힘겹게 돌아오는 거. - P146

내 삶이 내게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자유로워진다. - P154

주말에 눈이 온대요.
금요일마다 승호 씨에게 문자가 온다. 틀린 일기예보가 전부지만, 나는 그 한 줄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이어쓰는 상상을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창문을 열고 냄새를맡는다. 차고 축축한 공기. 정말 눈이 올지도 모르겠다. - P156

동경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삶이자여기에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하나의 세계처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혜린을 통해 알았다. 페른베. 먼 곳에 가닿고 싶어 하는 마음. - P158

소설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생이라고 믿게됐다. 아직 만나지 못한 혹은 놓치고 돌아선 나와 당신이라고.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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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을 듣는 내내 내가 얼마나 갈등했는지 전희수는 모를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가 물고기가 되는상상을 하며 들었다. 내가 그 물고기를 죽일까 봐 겁났다. 소설이란 게 뭘까. 거짓말인데 진짜 같고, 진짜 같은데 다 거짓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 안에 진짜 희수의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나는 희수라면 물고기가 된 아버지를 위해 어항 청소를 하고, 물고기 밥을 제때 주며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언젠가그 어항을 깨버렸을까? - P105

니나의 질문에 모두 웃었다. 행복한 핵심은 없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문제를 복잡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며, 이 이야기의교훈은 장거리 연애는 하지 말자, 사랑할 때는 뜨겁게하자, 라고 정리해줬다. 우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는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핵심에 가깝다고 말했다. - P110

니나는 내가 들은 말들을 어떻게든 내보내야 한다고했다. 쌓아두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고. 껍데기 같은말을 품고 살면 내 속이 쓰레기장이 되어버린다고.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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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한번 더 살폈다. 큰 짐은 미리 부쳤고 이 밖에 필요해지는 것들은 그때그때 단에게 부탁하면 된다. - P235

다 같이 가시는구나. 좋으시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 P236

할머니 머리가 나보다 까마네.
바다 보러 가니까. - P238

유일하게 내가 잘했다고 여기는 일을 부정하는 단의 얼굴을나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이어가려다 멈추고 이내 잘한 선택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남편을 만난 일도, 단과 현을 낳은 일도. - P243

부탁했잖니. 그거 하나. 고작 그거 하나.
어차피 헤매봐야 섬 안이지. - P247

단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단의 소설에서 나는 항상 죽어있거나 부재중이었다. 반대로 죽은 남편은 살아 있었다. 단이그건 픽션이라고, 소설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한마디 더 하고 말았다. - P249

그때 바람 한 점이 불어왔다. 돌층계 주변에 흩어져 있던 붉은 껍질이 나비처럼 살랑거린다. - P258

고소하다. 더 올라가야 해. 숨이 차오른다. 천천히, 천천히 다올라왔는데 여전히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릴 텐데. 내곁에 있던 따듯한 것.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바다만 보고 돌아갈게. 곧 갈게. - P264

망설이는 사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노래자랑만은 피하고 싶어 소영은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축구라고 해봐야 테이블 게임기였다. 소영과 동시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 P268

"그것만 부탁할게."
돈을 보내면서 누나가 항상 덧붙이는 말이었다. - P276

"제가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서요." - P281

딸이 함께 있어 감사하다.
세끼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도 - P283

"어떤 상처든 회복되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통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마도 그때가 제일 아프겠죠. 보이지않는다고 상처가 다 나은 건 아니니까요."
" - P291

십일월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그들이 자신할 수 있는 미래란 그것뿐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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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이 빠진 채 팔딱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남아 있는 소소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시계와 나침반, 수첩들, 설탕, 차와 과자 그리고 다정한 어밀리아가 만들어 준 과일 잼 단지.
그것들을 보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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